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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 아침식사…포근하지만 불쾌함이 주목받다

미묘한 아침…메레 오펜하임(Méret Oppenheim)㊦ 

기사입력2019-12-25 1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1936년 프랑스 초현실주의 대표 시인이자 미술이론가인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이 기획한 전시회에서 처음 소개된 모피 아침식사는 런던의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회(International Surrealist Exhibition)’를 거쳐, 같은 해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전시에 초대됐다. ‘환상적 예술과 다다, 초현실주의(Fantastic Art, Dada and Surrealism)’ 전시는 MoMA가 개최한 첫 초현실주의 전시로, 여기에 초대된 오펜하임의 이 작품은 뉴욕의 관객들을 당황케 하면서 큰 화제를 불러 있으켰다.

 

이 전시를 기획한 MoMA의 초대관장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 Jr.)는 전시가 끝나기도 전에 이 작품을 MoMA의 소장품으로 구매하려 했을 정도다. 하지만 미술관 임원들의 반대로 난관에 부딪혔다. 1940년에 다시 한번 구매하도록 설득했지만, 또다시 실패했고, 1946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임원들의 동의로 구매할 수 있었다.

 

이렇게 MoMA가 소장하려고 시도하는 사이에도 이 작품은 화제를 모았다. 미국의 부유한 수집가이자 현대미술품 중개상인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1943년 뉴욕에 금세기 미술화랑(Art of This Century gallery)’을 설립했는데, 그 개관전으로 여성 작가 31인전(Exhibition by 31 Women)’을 개최했고, 오펜하임의 문제작도 전시됐다. 이 전시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은 오펜하임의 모피 아침식사였다.

 

모피 아침식사가 이렇게 감상자를 사로잡는 이유는 뭘까? 이 작품은 성적 함의와 불길함, 부르주아의 편안함, 동물 학대 등의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만레이(Man Ray), ‘메레 오펜하임의 초상’, 1932, 그녀가 19살 때의 사진. MoMA 소장<출처=moma.org>
우선 이 작품은 성적 함의를 분명하게 품고 있다. 찻잔은 입에 닿는 물건인데, 털로 감싼 찻잔에 입을 댄다는 것은 성적인 암시가 다분하다. 이 찻잔 세트는 정물인 동시에 누드 작품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입을 댄다는 것과 털은, 구강 에로티시즘을 연상시키며 여성의 은밀한 부분을 암시하는 듯 느껴진다.

 

더불어 이 작품은 불길함을 심어준다. 차를 담아 마시기 좋도록 딱딱하고 매끄러워야 할 찻잔과 받침, 스푼에 덥수룩하게 털이 나 있는 모습은 까슬까슬한 간지러운 느낌과 함께 불쾌하고 불길한 감정을 갖게 한다. 찻잔 세트는 그것을 구성하는 모피로 인해 기능적 유용성을 산산이 부숴버리고 불길한 촉각적인 감각만을 남겨 놓는다.

 

이러한 불길함은 이전까지 부르주아가 느꼈던 모피코트의 감촉과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동안 모피코트와 같은 부드럽고 포근한 동물의 털에서 느꼈던 감정이 모피 아침식사를 보는 순간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꿈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모피 찻잔 세트는 우리에게 착란을 일으킨다. 낯선 감정은 이성적 사유를 무너트리고, 우리를 혼돈에 빠져들게 한다.

 

또한 모피 아침식사는 차 문화가 지닌 예법을 뒤튼다. 모피는 야생동물 혹은 자연을 상기시키는 반면, 찻잔은 문명과 예절을 상징한다. 자연과 문명의 불편한 결합이 가져온 이 이질적 형상 속에서 문명이 지닌 자연 파괴, 동물 학대 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의 문명생활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동물의 털을 입은(감싼) 찻잔 세트의 등장은 그것의 기이함에 집중하게 만듦으로써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문명적인 행위 속에서 누리던 여유를 빼앗을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동물의 털 채취라는 야만적인 행위를 상기시켰다.

 

오펜하임은 70세 넘어서까지 계속 작품활동을 했지만, 그 시대에 함께 작업했던 다른 남성 예술가만큼 유명해지지 못했다. 단지 젊은 시절 오펜하임은 마르셀 뒤샹, 알베르토 자코메티, 만 레이 등의 뮤즈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제는 여성 작가가 정당하게 평가받는 시대가 됐을까?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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