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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일상의 숭고함을 아는게 쉬운 일인가

김윤아 작가의 Life is pain.ting…#25. 12월의 기시감 

기사입력2019-12-29 09:00

“2019, 화이트블럭 레지던시에서 나와 부천으로 작업장을 옮겼고, 아이슬란드에서 3~4개월 동안 지냈고, 몇 개의 그룹전을 했고, 돌아와 개인전을 치렀고. 그 때문에 때맞춰 축하해 주지 못한 엄마의 늦은 칠순 생일여행을 계획했고, 작업장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 했고, 채워지지 않는 통장 잔고에 익숙하게 서글펐으며, 잠시 세워둔 차안에서 시동을 끄고 내리려다 말고 그대로 잠들만큼 바빴으며, 치가 떨릴 정도로 게을렀다. 해외 레지던시에서 몇몇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 수려하지 않은 영문으로 여전히 소식을 주고받고, 매거진에 열 두 번의 글을 써 보냈다. 작업적 이상에 다가갈수록 실질적 상실감은 검은 구멍처럼 입을 벌려 툭 하면 발이 빠져 절뚝거렸으나, 그 때마다 어깨를 빌려준 고마운 이들이 있었다. 내년에 생각하고 있는 몇 가지 계획들이 있고, 포기해서 가벼워진 것도 있다. 포기한 것과,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선택의 간극은 아직은 다소 공포스럽다. 2019, 몸무게가 2kg 늘었다. 그건 매우 유감스럽다.”

 

그녀는 항상 바쁘다. 각종 아르바이트와 아이들 수업, 오랜 기간 계속해온 공연 무대설치 일들을 소화시키면서 전시를 쉬지 않고 해오고 있다. 바로 옆 작업실을 쓰며 바라본 그녀는 때로는 본인조차 잘게 썰어 쓰는 하루 일정을 소화시키지 못한 채로 초저녁 그림자처럼 아울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올해 재단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지원금을 받아 내내 개인전을 준비 했던 그녀의 전시가 시언:시대의 언어/한석경이라는 타이틀로 며칠 전에 오픈했다.

 

이북 분이셨던 그녀의 할아버지가 평생 동안 켜켜이 기록한 각종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는 화곡동과 DMZ에 위치한 문화예술공간통을 준비된 차량으로 이동하며 관람하는 전시형태로 그녀는 준비기간 내내 두 장소를 이동하며 전시를 준비해 왔다. 지난 달 개인전을 마친 나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철수하고 용달을 불러 옮기다 말고 카톡을 보냈다.

 

밥은?”

 

사실 그녀의 밥이 궁금했던 게 아니다. ‘(실질적 생활)에 구멍이 너무 크게 나지 않게 하고 다니느냐는 이 말과 진배없다. “아직 못 먹었다. 일 끝나고 먹을 생각이다라고 대답이 왔다. 비교적 큰 지원금이었음에도 전시를 꾸리며 돈이 모자라 아르바이트로 비용을 메꿔야 했던 그녀는 틈틈이 돈을 벌어야 했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나. 그 전시비용이라는 것과, 그 전시를 통해 작가가 얻을 수 있는 부대 수입이라는 것과, 매체적 특성과 작업의 내용상 시장성을 쉽게 띨 수 없는 작품을 하는 작가들의 존속과, 더 나아가서는 상품이 아닌 예술의 생존 문제가 말이다.

 

누군가는 지들이 좋아서 하는 예술. 그게 밥 먹여 주냐라는 일차원적 말들을 내뱉기도 하지만, 예술이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하고 문화, 정치, 패션, 음악은 물론 과학기술에까지 모티브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필자는 시쳇말로 뼈가 아직은 젊어서 그런지 밥 정도(씩이나)는 뒤로 미루고 있다.

 

그녀는 18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고 총 소요액이 2400만원이었다. 지원금 사용처는 제작비, 작품준비 재료비, 영상제작, 편집, 보정, 출력비, 사운드 원고 및 녹음, 믹싱, 녹음실 대관비, 사진촬영 및 아카이빙 비용, 현장 매니지먼트 비용, 공간임차료, 차량 대차비, 도록 디자인 및 발간비로 1800만원 그리고 추가 재료비, 진행비용, 리서치를 위한 유류비, 제작비, 용역비로 600만원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그녀의 전시장에서 본 예상 부대 수입은 앞으로 발간될 도록 판매금액 정도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시다시피, 전시도록을 누가 그리 많이 사나. 유명한 작가여야 그나마 팔리지. 사실, 그녀는 그런 이유로 전시도록을 무료로 배포하려 했었지만 스태프들의 만류로 판매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 부분에 대해 그녀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렇다.

 

스태프들은 이런 일들을 계속 하던 애들이니까 수가 빨랐지. 근데 난 계속 그 생각을 했어요. 만원 넘으면 누가 사. 그럼 내가 이 300권을 다 끌어안고 살 텐데. 그럼 난 어떡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더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게 내게 중요한 게 아닌가. 그렇다면 왜 작업의 이미지를 무료로 배포하면서까지 나는 내 이미지를 보여주려 하는가에 도달하게 되니까 너무 구질구질한 거야.”

 

작품 철수를 끝낸 텅빈 전시장에 뒤늦게 도착한 달팽이 한마리가 서성이고 있다.<사진제공=김윤아 작가>

 

우리는 소위 이런 식으로 나누어 곧 잘 얘기한다. 페어용 작가미술관용 작가’.

 

페어용 작가는 말 그대로 아트페어에서 팔리는 작가들이고, 미술관용 작가는 아주 유명해 지기 전까지는 시장에서 팔리기 힘든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다. 이를테면 영상, 설치, 대형조각 등 콜렉터가 개인소장 하기 어려운 매체나 규모의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다. 몇몇 화랑이나 미술관에서 아티스트 피를 주고 전시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 역시 소위 말하는 유명한작가여야 가능한 일이다.

 

젊은 작가들은 재단에서 일년에 한번 뜨는 지원금 정책에 지원해서 창작지원금이나, 개인전 기금 등을 받아 전시를 꾸려 나가는데 그 조차 문이 좁아 경쟁률이 심하다 보니 지원금 사냥꾼이라는 말까지 생겨난지 이미 오래다. 필자 역시 몇 년 전 개인전 지원금을 받아 전시를 꾸렸고, 그 덕분에 해보고 싶던 몇 가지 작업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기쁨을 맛보았으나 후에 처리해야 하는 각종 영수증 처리 과정이 문제였다. 전시장 근처 골목 구멍가게에서 용달 아저씨에게 사드린 담배 두갑과 캔 커피 한 개, 생수 한통을 사드린 11700원 짜리 영수증을 빠뜨렸다가, 그 가게가 없어지면서 일 년을 (영수증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있다.

 

작업이 지원금 공모를 통해서 이어지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대부분의 작가들이 투잡, 쓰리잡에 이제는 유튜브 방송에까지 열을 올리며 작업에 필요한 수입을 벌어들이려 뛰어들고 있다.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하루 이틀도 아닌데 그날따라 처음 깊고 어두운 심해를 들여다 본 사람처럼 공포감에 휩싸여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때 그녀가 입을 뗐다.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상을 받은 이후 그 다음에 받은 작가가 한국에 초청되면서 그걸 인터뷰 하는 영상을 찍었잖아. 그는 평생 건물 청소원 일을 하면서 중간중간 글을 써서 살았던 작가래. 예술가들은 이런 현실을 개탄하고, 일반시민들은 어차피 너 좋아하는 거니까 하는건데 뭘 그러느냐. 이러다가 맨부커상을 받고 나니까 갑자기 막 숭배? 같은 걸 하더래. 알지? 숭고한 예술가의 삶. 이러면서. 그래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한켠 이해가 된다고. 사람들이 자기를 딱하게 보더래. 청소하면서 글 써왔다고. 근데 이제는 다행이다. 앞으로는 글만 써도 되니까라고 말하면서. 근데 그 작가는 자기는 청소하는 거 좋다고. 반복과 일상의 경험에서 오는 희열이 있다는 거야. 자기를 바보같이 만들고, 그러면 갑자기 좋은 냄새가 나기 때문에 그 행위가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말을 하더라고. 예술가의 삶을 응원하기는 하지만 고통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이제 좀 꾸역꾸역 받아들이려고 해.”

 

반짝이기 위해 반짝일 수 없는 일 같아. 끊임없이 피부에 돋는 반짝임을 칼로 벅벅 밀어버리는 것 같지 않아? 아까운 껍질들. 주름이 좀 자글자글해 지는 나이가 되면 좀 반짝이고 있으려나.”

 

내가 말했고, “머리카락이 반짝 일거야라고 그녀가 대답했다. 그 말에 피식 웃는 사이 머릿속에선 지난 몇 년이 포물선을 그으며 지났다.

 

필자는 한국에 돌아와 생업과 작업의 균형에서 늘 발목을 지근거려야 했다. 작업은 그만의 물리적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물리적 시간을 내어주지 못해 늦은 밤 일이 끝나고 나면 필연성에 매달려 작업을 이어갔기에 늘 허기에 시달렸고, 긴 고민 끝에 전업으로 전향했다. 사람 죽으란 법은 없다는 말이 이래서인지, 운 좋게도 이렇게 저렇게 버텨 오면서 몇 번의 지원금도 받고 전시를 이어올 수 있었다.

 

잔뼈가 제법 굵은 그녀는 앞으로도 작업을 잘 이어갈 것이다. 반복과 일상의 숭고함을 알아가기까지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나오세요!”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드니 용달 아저씨가 짐을 다 올렸다며 앞에 서 계셨다. 돈을 지불하고 먼저 출발하시라고 한 후 텅 빈 전시장으로 내려갔다. 말끔히 치워진 전시장은 이제 에폭시 바닥에 매트한 흰 벽만 남았다. 작업들이 싹 빠진 텅 빈 공간은 발자국 소리마저 울리며 귀에 따라 붙는 느낌이 들어 나는 뒤를 돌아 아래를 바라보았다.

 

. 이 텅 빈 공간이 가장 말이 많은 곳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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