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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권력의 경험을 희망 메시지로 작품에 투영

유한과 무한의 틈, 환상과 현실 사이…이반 나바로㊦ 

기사입력2020-02-23 1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비평의 조건’ 저자)
이반 나바로는 빛의 제한에 의한 억압과 통제뿐만 아니라, 통행금지에 의한 집안에서의 고립을 경험했다. 일반적으로 빛은 희망과 자유 등을 의미하지만 빛을 제한했을 때 억압과 통제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외부와 내부를 분리하는 벽 혹은 천장, 바닥 등은 대상을 내부의 공간에 억압하고 고립시키는 상징처럼 여겨진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와 희망의 메시지

 

벽을 넘어서한계나 통제를 벗어나 자유를 찾으라는 의미의 관용구로 쓰이는 것처럼 벽이나 천장 등은 일반적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부정적 의미로 여겨진다. 하지만 벽과 천장, 바닥 등이 만들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내부를 억압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외부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즉 통제나 억압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보호가 그 근원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작가가 경험한 통행금지는 자유의 억압이며 통제인 것이 분명하다.


이반 나바로의 힘은 그러한 억압과 통제 속에서도 희망을 만드는 데 있다. ‘벽이 폭력으로부터 선을 긋고 보호하는 힘을 가진 것(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백색 조명으로 만든 울타리 작품 현대 울타리(2011)’를 만든 것으로 알 수 있듯이, 그는 단순히 고정적인 사고방식에 빠져 있지 않다.

 

이반 나바로, ‘무제(쌍둥이 빌딩)’의 한쪽 작품 내부<출처=ctpress.kaist.ac.kr>
뒤집어서 생각하는 사유의 유연함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제한된 공간, 밀폐된 공간에서 일반 거울과 일방 투시 거울, 그리고 그 안에 조명을 배치해 무한 반복의 투사 이미지를 만들어 블랙홀과 같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공간을 창조한다.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빛=자유, =억압 등과 같은 고정된 생각을 넘어섰기 때문이리라.

 

그에게 빛은 억압과 통제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벽과 같은 자유를 제한하는 사물이 외부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를 지키는 사물일 수도 있다. 고정관념에 묶여있지 않은 이반은 독재권력에 의한 자유를 박탈당한 경험을 매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작품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테러의 시대에 쓰인 추념사무제(쌍둥이 빌딩)’

 

이반 나바로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슬픈 작품은 무제(쌍둥이 빌딩, 2011)’이다. 미디어시티서울2016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서울시립미술관, 2016)’테러의 시대:9·11 테러 이후 예술(영국 대영제국 전쟁박물관, 2017~2018)’ 등에서 전시된 바 있는 이 작품은 높이가 20cm가 채 안 되는(정확히는 19.5cm) 두 개의 검은 정사각형 라이트 박스 형태를 띠고 있다.

 

무제(쌍둥이 빌딩)’라는 제목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업은 2001년에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을 추념하며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업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던 세계무역센터의 부재를 드러내는 듯 바닥에 낮게 놓여 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세계무역센터의 형상 부재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반 나바로의 작품 전시 광경<출처=www.kasmingallery.com>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자주 선보인 거울과 일방 투시 거울, 조명을 사용한 무한 투사 반복 이미지를 통해 세계무역센터만큼 긴, 어쩌면 그보다 더 긴, 무한한 깊이의 착시 구조물을 보여준다. 감상자는 이 두 개의 낮은 높이의 검은 정사각형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아래로 무한히 뻗어 있는 공간에서 아찔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곧이어 실재 공간으로 눈을 돌려 그 아찔함이 착시임을 재차 확인한다.

 

위로 천국에 닿을 듯 솟아 있는 구조물이 아니라, 아래로 암흑에 묻히듯 파여 있는 구조물. 실재가 아닌, 착시. 무한히 확장된 공간이지만, 갇혀 있는 공간. 밝은 빛이 존재하지만, 그 끝에 존재하는 칠흑 같은 어둠. 아찔함과 안정감. ‘무제(쌍둥이 빌딩)’는 상반된 특성들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작업이다.

 

이러한 특성은 이반 나바로가 빛과 벽의 이중적 의미를 작품에 포함했듯이 테러라는 어두운 과거와 현실적인 상실의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여전히 놓을 수 없는 미래를 향한 작은 희망을 동시에 선보이는 것이리라.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희생자와 희생자의 가족이 느낄 암울한 슬픔을 우리 모두 함께 느끼고, 그 안에서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려 했던 건 아닐까? 너무 과한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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