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이코노미

중견·중소기업 소상공인 매체
2020/12/05(토) 11:59 편집

주요메뉴

메일 페이스북 트위터 프린트
라운지예술을 읽다

작품으로 포장해, 돈에 끌려 다니는 예술을 풍자

우리가 먹는 1억4천만 원짜리 바나나…마우리치오 카텔란㊦ 

기사입력2020-06-21 1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비평의 조건’ 저자)
우리는 예술작품을 사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현대미술 작품은 반드시 사물일 필요가 없다. 카텔란의 코미디언은 바나나라는 사물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벽에 포장용 회색 테이프로 붙인 바나나라는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판매한 것이다.

 

누구나 벽에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코미디언이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카텔란의 작품을 산 사람이 포장용 회색테이프로 바나나를 붙이면 어떨까? 그 작품은 코미디언이라고 할 수 있다. 바나나를 반드시 작가 카텔란이 붙일 필요도 없다. 작가가 판매한 것은 바나나가 아니라, 진품 인증서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진품 인증서를 가진 사람이 바나나를 포장용 회색테이프로 붙이면 그 작품이 바로 카텔란의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이 엄청난 가격으로 판매된 것은 작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유명세가 이 작품값을 높였다. 결국 작가는 눈에 보이는 바나나를 판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작가의 명성과 아이디어를 진품 인증서에 넣어서 비싼 가격에 판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의 진품 인증서를 딱 3개 만들었다. 이 행사에는 작품은 하나였으나, 그것과 상관없이 작품은 진품 인증서 형태로 3개가 있었던 것이다. 그중 2개가 개막하자마자 팔린 것이다.

 

그럼 전시장에서 이 바나나 작품을 먹어버린 행위예술가는 작품을 훼손했으니 그 작품가격을 배상해야 할까? 일반 작품은 그 작품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작품을 훼손하면, 가격을 배상해야 한다. 하지만 코미디언은 아이디어이고, 진품 확인서라는 문서로 판매되기 때문에 전시된 바나나를 먹었다고 작품값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완벽한 하루’, 1999, 포장용 테이프로 벽에 붙인 갤러리스트.<출처=www.perrotin.com>
행위예술가가 바나나를 먹어버리자, 잠시 후 전시 관계자는 바나나는 아이디어일 뿐이고, 행위예술가는 작품을 파괴한 것이 아니다라며, 그 자리에 바로 새로운 바나나를 붙였다고 한다. 바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누군가가 바나나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로 이 작품 전시는 중단됐다.

 

완벽하게 불행했던 완벽한 하루’=카텔란이 테이프로 벽에 붙인 것은 바나나만이 아니다. 사람도 붙인 적이 있다. 그 비운의 주인공은 갤러리를 운영하며 작품 판매하는 갤러리스트 마시모 데 카를로(Massimo De Carlo)였다. 카텔란은 1999년 그를 갤러리 벽에 테이프로 붙였다. 당연히 작가의 제안에 그가 승낙해서 이뤄진 일이었다. 하지만 온종일 벽에 붙어 있던 그는 결국 기절했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는 신세가 됐다. 작가는 이 작업을 완벽한 하루(A Perfect Day)’라고 이름 붙였는데, 갤러리스트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불행한 하루였을 것 같다.

 

카텔란은 작품 판매로 온종일 분주한 갤러리스트에게 완벽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하루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못 움직이게 했다. 이 휴식을 다르게 보면, 갤러리스트에게 작품 판매를 못하게 만들어 예술작품이 돈으로 거래되는 것을 멈추게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멈춰있는 상태가 완벽한 하루라는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니, 복합적인 의미가 함축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카텔란은 돈에 끌려다니는 예술을 풍자하곤 하는데, ‘완벽한 하루가 이러한 작품이다. 14000만원에 판매된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도 마찬가지다. 과일가게에 가면 몇 천원하는 바나나를 예술작품이라고 포장하고. 작가의 명성을 더해 상상을 초월한 가격을 매기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카텔란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도 오늘 14000만원짜리 바나나 작품을 만들어볼까? 카텔란처럼 바나나를 테이프로 벽에 붙이면 그만이다. 붙일 땐 벽지가 상할 수 있으니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벽을 고르는 것 잊지 말 것.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top

객원전문 기자칼럼

 
  • 기업법률
  • 상생법률
  • 공정경제
  • 법률산책
  • 생활세무
  • 상가법
  • 인사급여
  • 4대보험
  • 노동정책
  • 판례리뷰
  • 이제IP
  • 무역실무
  • 알쓸신법
  • 부동산
  • 금융경제
  • 세상이야기
  • 가족여행
  • 예술만세
  • 작가노트
  • 현대미술
  • 시민경제
  • 무역물류
  • 스마트공장
  • 가맹거래
  • 미국문화
  • 중국상인
  • 노동법
  • 신경제
  • CSR
  • 정치경제학
  • 빌딩이야기
  • 민생희망
  • 지적재산권
  • 개인회생
  • 공동체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