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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급병가제 도입, 몸 아프면 쉴 권리 보장하자

영세사업장 노동자란 이유로 휴식권까지 차별을 받아서야… 

기사입력2020-06-29 10:23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29일 현재 쿠팡 경기도 부천물류센터와 유관한 코로나19 확진자가 150명을 넘었고, 물류센터가 한달 째 폐쇄된 상태다. 고양물류센터도 지난달 28일 확진자 발생 직후 문을 닫았다가, 지난 12일 2주일만에 재가동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덕평물류센터에서 터졌다. 지난 24일 확진자가 발생한 덕평물류센터에는 2000명이상이 근무해, 또다른 집단감염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방역당국은 부천물류센터 집단감염 사태 원인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일하는 작업환경과 함께 개인방역 수칙 미준수를 꼽았다. 5대 핵심수칙 중 제1수칙(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을 지킬 수 없었던 조직문화가 코로나19 확진자 양산에 일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화’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물류센터의 경우 컨베이어벨트 작업방식에 교대제 근무형태가 더해져, 즉시 대체인력이 없으면 노동자는 작업장을 떠날 수 없다.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돼, 하루라도 쉬기 위해서는 다른 교대조 노동자에게 자신의 일을 떠넘겨야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이들의 고용형태는 불안정한 비정규직신분이다. 2년만 버티면 정규직으로 바꿔주는 쿠팡의 ‘고용관행’,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는 애당초 지킬 수 없는 수칙이었다.

부천물류센터의 노동조건과 조직문화가 그랬다. 부천에 이어 고양물류센터에서 집단감염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게, 천운이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쿠팡과 동일·유사한 노동조건과 조직문화를 가진 사업장이 셀 수 없을 만큼 전국에 널렸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쿠팡 부천물류센터 집단감염 사태가 전국 어디서든 하시라도 재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업장발 집단감염 사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코로나19 감염 의심자의 작업장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쿠팡은 물론이고 노동자 대다수는 아파도 쉬지 못한다. 이유 불문하고 결근 자체를 색안경 끼고 보는 조직문화도 문제지만, 무노동 무임금에 따른 임금삭감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유급병가제를 도입해 질병·부상을 이유로 쉴 경우 임금을 보전해준다면,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는 노동자의 작업장 출입을 막을 수 있다. 또 몸이 아픈 노동자에게 휴식을 부여함으로써 건강한 노동력을 보존하고, 결과적으로 사업장의 생산성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아울러 장시간노동에 따른 산업재해, 쿠팡 물류센터 폐쇄 등과 같은 사회적 비용 또한 줄일 수 있다.

마침 상병수당(유급병가) 도입여부가 30일 마감 시한인 노사정대표자회의의 핵심 쟁점 중 하나로 부상했다. 코로나19 감염병 질환(의심)자의 출근으로 사업장내 집단감염사태가 확대됐다는 반성적 고려에 따른 노동계의 제안이다. 상병수당 도입에 필요한 법적 근거도 이미 마련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 따라 지급되는 요양급여 종류에 상병수당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대통령령을 개정하면 된다. 국회 의결 등 별도의 법 개정없이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도입 가능하다.

상병수당 또는 유급병가 도입은 OECD 회원국 대다수가 도입한 이미 글로벌스탠다드다. OECD 36개 회원국 중 법정 유급병가제를 도입하지 않은 국가는 우리나라와 미국뿐이다. 국제노동기구(ILO)도 1952년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을 통해 상병수당 도입을 각 국가에 권고했다. WHO와 UN 역시 상병수당을 보편적 건강보장의 핵심요소로서 사회보장 최저선에 포함하도록 요구해왔다.

상병수당 또는 유급병가는 무엇보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노동자의 휴식권·건강권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외국의 유급병가·상병급여 현황과 한국의 도입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1000명이상 사업장의 유급병가 적용률은 80.6% 수준이다(300~1000명미만 사업장은 71.1%). 반면 5인미만 사업장은 12.3%에 불과하다. 영세한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여력있는 사업장 노동자에 비해 쉴 수 있는 권리가 현저히 차별을 받는 게 우리 현실이다. 

여기에 5인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연차휴가제 의무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5인이상 사업장 노동자의 경우 몸이 아프면 연차라도 사용해 유급으로 쉴 수 있지만,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무급병가‘에 따른 임금손실을 그대로 감수할 수밖에 없다. 유급병가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이들 영세사업장 노동자는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돼도, 또 당장 쓰러질 정도의 병이 아니라면 출근할 수밖에 없다.

추정치이지만 2조원도 안되는 돈이면 된다. 상병급여 기간·보장·수준 등에 따라 다르지만,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적게는 8000억원 많게는1조7000억원이면 도입 가능하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영난을 이유로 한 대한항공·아시아나 항공 지원금이 2조9000억원이다. 이 정도의 재정이 뒷받침이 된다면, 사업장규모·고용형태와 관계없이 몸이 아픈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휴식권을 보장할 수 있다. 아울러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개인 방역수칙(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 실효성도 강화할 수 있다. 상병수당 또는 유급병가제 도입,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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