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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존중을 꿈꿀 수조차 없는 여전한 노동천대

182만2480원 월급쟁이에게 160조원 ‘한국판 뉴딜’이 무슨 의미? 

기사입력2020-07-15 17:39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노동’, ‘노가다’ 그리고 ‘막노동’. 이들 단어의 의미가 사실상 동일시됐던 시절, 그리 오래된 기억이 아니다. 우리사회에서 노동인권 개념 자체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세월이 너무 길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는 노동이었음에도 천대를 받았고,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촛불혁명 후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도, 노동은 여전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는 그래서 울림이 있었다. 노동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노동을 복권시키겠다고 공약했을 때, 심장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대통령 임기 3년차(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시급)을 약속했을 때, 정당한 대가를 받게 될 노동에 대한 자존감도 키웠다. 저임금에 따른 장시간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노동자에겐 익숙지 않았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여정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했다. 

14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제9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2021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기준 8720원으로 최종 의결됐다.<사진=뉴시스>
‘노동존중 사회’. 그 곳을 향해 간다는 설렘보다, ‘뭔가 틀어졌다’는 의문을 갖기에 1년여 남짓밖에 안 걸렸다. 2019년 최저임금이 전년대비 10.90% 인상된 8350원(시급)으로 결정된 2018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폐기했다. 대통령은 “안타깝고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지만, 2020년 최저임금 역시 전년보다 240원 오른 8590원으로 결정됐다. 전년대비 인상률 2.87%에 불과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한 복판인 2009년 9월 결정한 최저임금 인상률(2.75%)과 유사한 수준이다. 

게다가 ‘노동존중 정부’가 최저임금법을 개악해, 2019년부터 식대·교통비 등 복리후생비와 매월 지급하는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2019년에는 최저임금 월 환산액의 7% 초과하는 복리후생비(상여금은 25% 초과액)가 최저임금에 포함됐다. 이후 연차적으로 산입비율을 확대해, 2024년에 이르면 복리후생비와 상여금 전액이 최저임금으로 인정된다. 노동자가 이미 받고 있던 점심밥값과 버스비 등을 사용자가 최저임금 인상분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준 셈이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최저임금이 인상됐음에도, 최저임금 언저리에 있는 노동자의 월급총액이 그대로란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노동존중 사회. 기대가 의문으로 바뀌었고, 그리고 이젠 절망적이란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14일 최저임금위원회가 2021년 최저임금 시급을 8720원, 전년대비 130원 올린 1.5% 인상안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1998~1999년 ‘국가부도’ 당시 인상률(2.75%)보다 1.25%p 낮고, 1988년 최저임금제 도입 이후 가장 낮은 인상률이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21년 최저임금 결정까지 4년 연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7.91%가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4년간 결정했던 최저임금 연 평균 인상률(7.42%)보다 0.49%p 높다. 하지만 식대·교통비 등 복리후생비와 상여금이 최저임금에 포함된 사정을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언하지만, 문재인 정부 하에 최저임금 연 평균 인상률은 박근혜 정부보다 낮다. 전 대통령 박근혜가 노동에 대한 천대를 넘어, 혐오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사실상 삭감된 최저임금 결정에 대해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간사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최저임금이 기대 이상으로 올랐을 경우 초래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일자리 감축 효과, 그것이 노동자 생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고. 1.5% 인상안이고 시간급 130원 올렸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전년대비 사용자가 추가로 부담해야하는 금액은 2만7170원이다. “최저임금이 기대 이상으로 올랐을 경우”란 전제까지 달은 공익위원의 ‘노동관’, 전 대통령 박근혜의 ‘노동혐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최저임금 결정 당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개인사업자의 교육비·의료비·월세 등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신설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근로소득자와 성실사업자 일부에게 제공했던 세액공제 혜택을 종합소득금액 6000만원이하 개인사업자까지 확대하는 개정안이다. 이에 따라 이들 개인사업자가 임차료를 지급하면 월 750만원을 한도로 10%를 소득세에서 공제해준다. 

우원식 의원에 따르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2018년 사업소득을 신고한 개인사업자 673만5000명 중 517만명(86.1%)이 교육비·의료비·월세 공제혜택을 받는다. 2018년 세액공제를 받은 성실사업자가 약 1%(7만4000명)인 것과 비교하면, 지원 대상·금액 모두 적지 않은 선물이다. 최저임금은 깎으면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세부담을 덜어주는 게 배 아파서 하는 심술이 아니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다수가 노동존중 사회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았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랬다면 문제가 되는 영세사업주의 최저임금 지불능력을 제고할 방법은 차고 넘쳤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 폐기에 이어 노동존중 사회로 갈 수 있는 길은 이미 차단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노동정책, 무엇보다 저임금노동자의 생존권보장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기 전까지는 그렇다는 말이다. 부동산투기꾼이 불로소득으로 수억·수십억을 챙겨도 못 본척 했기에,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지원할 충분한 재원을 만들지 못했다. 재벌대기업의 탐욕을 단죄하지 못해, 시급 1만원조차 줄 수 없을 정도로 영세중소기업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14일은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 시급을 올해대비 130원 인상한 날이다. 바로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디지털 뉴딜’·‘그린 뉴딜’을 모토로, 2025년까지 국가재정 114조원을 포함 160조원을 투입하는 ‘한국판 뉴딜’ 계획을 밝혔다. 올해 월급 179만5310원, 내년에는 이보다 2만7170원 많은 182만2480원 월급을 받는 저임금노동자가 디지털·그린·한국판 뉴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한해도 빠짐없이 노동자의 고통이 전제돼야만 생존하는 기업이 많다는 이유로, 최저임금 1만원도 보장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이다. ‘노동존중 사회’를 기대한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하루였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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