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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처방 기본소득이 ‘정의롭지도 않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의’는 기회의 평등 막는 생득적 격차 줄이는 것 

기사입력2021-02-22 14:15
양준호 객원 기자 (junho@inu.ac.kr) 다른기사보기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필자는 이전부터 SNS 등을 통해 기본소득이 갖는 체제 변혁적 의의를 크게 지지하되, 기본소득을 원리주의적으로 즉 만병통치약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해왔다. 여러 다른 진보적인 개혁들과 조합되지 않으면, 기본소득의 의의는 축소 또는 상실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런 입장이면서도, 기본소득의 변혁적 의의만큼은 적극적으로 강조해온 것은 그것에 녹아든 정의의 원리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일각에서 기본소득이란 제도는 정의롭지도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필자가 비록 기본소득원리주의자는 아니지만, 이런 비판은 기본소득제도를 지지하게 된 배경과 크게 모순되는 것이기에, ‘기본소득과 정의에 관해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참고로, 여기서의 정의 또는 사회정의는 더도 말고 비판자들에게 친화적일 리버럴주의자들의 문제의식에 기반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혀두고 싶다. 무슨, 급진적인 정의론 따윈 언급하지 않겠다.

 

한마디로 얘기하고자 한다. 기본소득은 민주주의 체제의 사회정의를 토대로 하는 제도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는 건 리버럴주의 사회철학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존 롤즈의 정의론이다.

 

롤즈의 문제의식에 따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의의 원리라고 하는 것은, 첫째, 개인의 자유가 개인 모두에게 평등하게 보장돼야 하는 것이고, 둘째, 기회의 평등이 전원 평등하게 부여돼야 하는 것이며, 셋째, 기회의 평등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생득적인 배경·이유에 의한 소득이나 생활수준의 격차를 가능한 한 줄여야 하는 것, 이 세 가지 조건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세 가지 조건은 위에서 정리한 순서대로 우선돼야 한다고 보는 것이 롤즈의 리버럴한 사회정의론의 핵심이다.

 

그런데, 첫 번째 조건인 자유와 두 번째 조건인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각자가 태어난 가정 간의 소득 및 자산 격차에 의해 실질적으론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 실제 현실이다.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는지에 따라 학력과 능력의 격차가 발생하며, 가난한 사람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나 라이프스타일의 자유는 현실적으로는 크게 제약되고 만다. 게다가 이와 같은 격차들은 부모 세대에서 자식 세대로 나아가 손자의 세대로까지 재생산되어 결국 계급 간 격차를 확고히 고정시킨다. 이와 같은 현상이 20세기 종반에서부터 21세기 초반에 걸쳐, 우리나라를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 공통의 사회 양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19일 기본소득과 관련, “기본소득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며, “무엇보다 코로나 위기 극복 정책으로 기본소득 방식의 1차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통해 국민들께서 기본소득을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정책으로 체감하셨다고 생각한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사진=뉴시스>
위에서 언급한, 존 롤즈의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의의 원리에 관한 연구와 요즘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도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그 기점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대자본주의 고유의 문제에 근본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내놓은 처방전들 중 하나가 바로 기본소득이라는 점이다.

 

위에서 지적한, 심각해진 실질적 불평등 문제가 현실에 존재한다고 해서 본인의 노력이나 자질과 관계없이 완전 평등체제를 지향해버리면, 옛 공산주의 체제 같은 지속 가능하지 못 한 비효율적인 사회로 전락해버리고 만다는 것이 롤즈와 같은 리버럴주의자들의 생각이다.

 

이들에 의하면, 완전 평등을 지향하는 체제는 한 사회의 활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했던 세가지 민주주의적 정의들 중에서 가장 중시돼야 하는 개인의 자유를 훼손시키게 된다. 바로 여기서, 이와 같은 과제들을 감안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존중하고 또한 기회의 평등을 가능한 한 확대해서 보장하기 위해, 모든 개인에게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유효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바로 리버럴주의자 존 롤즈가 내놓은 민주주의 사회의 정의의 원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의거해 일 하지 않을 자유,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노동을 강요 당하지 않을 자유마저도 기본적인 인권으로 인정해 그 자유를 향유하게 하고 또한 다양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모든 개인에게 평등하고 일률적인 형태로 그들 생활을 위한 원자(原資)’를 지급하자는 것이 바로 기본소득이 제기된 이념적 배경인 것이다. 이렇듯, 기본소득은 나름 탄탄한 사회정의론의 귀결이다.

 

지금까지, 기본소득이 왜 사회정의에 부합되는 것인지를 리버럴주의자라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면 적극 수용하는 롤즈의 정의론에 입각해서 논의해봤다. 요는,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의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기회의 평등을 막는 생득적인 개인 격차를 가능한 한 줄여내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의를 실현해내기 위해 가장 적합한 재분배 제도가 바로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 모두에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현금을 무조건적으로 지급하고자 하는 것이 기본소득일진대, 그런 기본소득이 정의롭지도 않다는 비판은 정의에 대한 어떤 이론적, 철학적 입장을 토대로 하는 것일까? 참고로, 시장주의자들 역시 롤즈의 정의에 대한 논의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비판자들이 기본소득은 정의롭지도 않다고 조롱한 것이 롤즈보다 더 급진적인 정의론을 그들이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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