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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장론자’들이 ‘소득주도성장론’을 흔든다

부자증세 나아가 보편적 증세 없이는 소득·자산 불평등 해결 못한다 

기사입력2018-07-05 20:48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정부에 제출한 금융소득 종합과세 강화 권고안이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하루만에 폐기처분될 처지에 놓였다. ‘조세형평성 제고’를 목표로 한 권고안에 따르면 금융소득(이자소득·배당소득) 종합과세 대상금액은 현행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떨어진다. 권고안이 시행되면 종합과세 적용대상자는 기존 과세대상자 9만여명에, 금융소득 1000만원초과~2000만원이하 구간 31만여명(2016년기준)이 추가돼 40만여명으로 늘어난다.

종합과세 대상금액을 1000만원으로 낮춰도, 과세대상자가 되려면 4억1450만원을 웃도는 돈이 통장에 있어야 한다(금리 2.4%기준). 게다가 추가로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있는 경우에만, 금융소득과 합산해 종합소득세율을 적용한다(6~42%). 결국 예금이 4억1450만원을 초과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추가소득이 없으면 종합소득세 적용대상에서 빠진다. 그야말로 부자에게만 적용되는 ‘부자세’인 셈이다. 

이웃과 주변을 돌아보자. 예금잔고가 4억1450만원이 넘는 부자가 있다. 우리 자산보유 관행에 비춰보면, 그 부자는 그 예금잔고를 훨씬 상회하는 부동산을 보유했다고 보는게 맞다. 절세노하우 역시 범인이상일 터이니, 부인 또는 남편 몫의 금융 또는 부동산 자산도 가졌을 개연성 또한 높다. 이들 부자들이 사업을 해 사업소득이 있거나 별도의 근로소득이 있는 경우에, 누진세인 종합소득세를 적용하는게 형평·정의의 관념에 배치되는 것인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전 인천 영종도 BMW드라이빙센터에서 열린 제2차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재정특위 권고안에 반대하는 기재부 주장을 현실에서 풀어쓰면 이렇다. 앞서 언급한 부자가 내는 소득세율과 연봉 5000만원짜리 월급쟁이의 소득세율은 동일해야 한다. 반복하자면 종합과세 대상금액 2000만원, 예금잔고가 8억2900만원을 넘는 ‘초부자’에게만 연봉 5000만원짜리 월급쟁이와 달리 누진세율을 적용하겠다는 주장이다. 재정특위의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이 빈껍데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기재부의 이같은 부자 친화적 정서와 무관치 않다. 

종합과세 대상금액을 1000만원으로 낮춤으로써 들어오는 추가 세수와 부자들의 세부담 규모를 보자. 재정특위는 개인별 금융·근로·사업 소득 규모에 차이가 있고, 그에 따라 과표구간이 달라져 추산이 곤란하다고 했다. 그러나 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2016년 발표한 ‘금융소득 종합과세 개편의 영향 분석 및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재정특의 권고안과 같은 조건에서 세수가 연간 1342억원 늘어난다. 적용대상이 약 37만명으로, 부자 1명당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평균 36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기재부의 반대논리로 알려진 재정특위 소수안의 논거는, 다수안(권고안)의 ‘조세형평성 제고’란 명분을 밀어내기엔 너무 옹색하다. 임대소득 분리과세 기준금액(2000만원)과 맞지 않아 일관성이 문제된다고 했다. 일관성이 문제라면 임대소득 기준금액을 1000만원으로 낮추면 될 일이다. 이를 핑계로 형평과 정의를 외면하는건 본말 자체가 전도된 억지다. 합리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종합과세 대상금액을 먼저 내리고, 이후 임대소득 기준금액을 손보는게 정상이다.  

무엇보다 기재부는 비겁했다. 재정특위 권고안에 반대하는 기재부는 거의 모든 언론에서 ‘관계자’, ‘핵심관계자’로만 등장한다. 김동연 부총리를 포함 기재부 고위관료 대부분이 반대논거를 자신있게 내세우지 못했다. 짐작컨대 부자증세에 우호적인 국민여론을 거스르기 싫어서다. 고액자산가인 은퇴자들의 조세저항과 보수언론의 공세를 감당하기 귀찮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라면 자신들도 조만간 고액자산가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우리사회 소득 및 자산의 심각한 불평등은 굳이 통계를 동원하지 않아도, 서민들은 매일매일 일상에서 몸으로 절감한다. 재정특위가 부자증세 권고안을 낸 그날, 남원시 월세방에서 70대 아버지와 30대 아들이 사망한지 한달만에 발견됐다. 이들 부자가 각각 대장암과 결핵으로 투병했고, 기초생활수급자인 사실 등을 근거로 경찰은 신병비관 자살로 추정했다. 사망현장에는 현금 120만원이 담긴 봉투가 있었고, 그 겉면에는 “주인 할머니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귀가 있었다. 

생활고를 비관해 목숨을 끊으면서, 죄송하다는 유서와 함께 집세·공과금 70만원을 남겼던 송파 세모녀 사건은 2014년 2월에 발생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나라다운 나라’가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달라진건 없다. 한없이 약했던 이들에게 손길을 내밀었어야 할 정부는 이들 부자, 세모녀를 외면했다. 그런 정부에 대해 이들 부자, 세모녀는 죄송하다고 했다. 누가 누구에게 죄송하다 해야하고, 반성하고 사죄해야 할지를 성찰하지 못한다면 우리 미래에 희망은 없다. 

단언한다. 우리사회 소득 및 자산의 불평등은 끝갈데까지 갔다. 우리 공동체 자체를 파괴할 수준이상을 넘어선지 오래다. 기재부를 필두로 경제부처 관료, 성장론자들이 떠받드는 ‘혁신성장’으론 불평등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시장·분배 구조에서는 아무리 성장해도 계층간 소득분배 격차만 커질 뿐이다. 혁신성장에 앞서 소득주도성장이 본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짜야만 풀어낼 수 있단 말이다.  

먹고 자고 입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선 당연히 돈이 든다. 그것도 천문학적 수준이상의 돈을 만들어야 하고, 그 첫 발걸음이 증세다. 특히 소득이 있는 자 모두에 대한 보편적 증세로 가기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건너야할 강은 부자증세였다. 그럼에도 기재부가 앞장섰고, 정부와 청와대 내 일부 관료들이 묵인함으로서 나루터 자체를 폐쇄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조인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뿌리부터 흔들린다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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