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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수출규제 대응책, 공정경제에 반해서는 안돼

재벌대기업이 경쟁력을 이유로 제기할 숱한 민원…걱정이 앞선다 ㊤ 

기사입력2019-08-12 19:05
김영규 객원 기자 (hjlee1000@gmail.com) 다른기사보기
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일본정부는 7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간소화국)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다만 개정안과 함께 공개한 시행세칙에 기존 수출규제 대상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 외에 ‘개별허가’를 요구하는 추가 품목을 지정하지는 않았다. 이를 이유로 반도체 관련 부품 외에 추가적인 수출규제가 없어, 당분간 국내기업의 부담은 덜었다는 일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일관된 고집을 보면, 그런 낙관적인 견해의 근거가 너무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지난 6일 한국과의 대화를 거절하면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문제해결을 요구했다. 이어 “한일 청구권협정을 일방적으로 위반하면서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며, 양국간 갈등의 책임을 한국 측에 돌렸다. 

그러나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은 한일청구권협정과 무관하게 일본기업의 불법적 강제노동으로 인해 발생한 개인청구권을 인용했다. 국제법에 따르더라도 일본기업의 불법행위가 한국민의 인권을 침해했으니 그에 따른 합당한 배상을 하는 게 원칙이다. 

불법적인 식민통치와 반인륜적 과거사에 대한 반성없이 패권주의를 버리지 않는 한,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과 정부는 이번의 경제쇼크를 완화하기 위해 중·단기적 대책을 강구하는 등 총력 대응태세를 갖춰 정책을 펴야한다. ‘先 기업투자 後 정부지원’,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 및 극복을 위해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준수해야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시 말하면, 이 경제원칙을 준수해야 할 책임이 정부는 물론 기업에도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를 빌미로, 정부와 정치권이 시장의 경쟁기조를 망가뜨리려하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시장의 경쟁구조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시장실패’가 일어나는 경우에 한정해야한다 게 시장경제론의 기본원칙이다. 재화의 성격이 사적 소비재 차원을 넘어 공적 특성을 가졌을 때, 예컨대 국방서비스 같은 경우에 한정해 기업이 아닌 정부가 직접 공급하라는 게 시장실패에 대한 경제학의 가르침이다.  

이것이 바로 정부의 전통적인 ‘시장간섭’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로 인한 타격이 국민의 소비에 맞춰져 있지 않고, 기업의 생산에 있는 만큼 정부가 개입할 근거는 없다. 반도체란 재화를 생산하는 기업이 해결해야할 문제지, 기업의 생산과 공급에 정부가 관여할 명분도 책임도 없다. 한마디로 기업이 책임져야할 생산과 이윤의 문제이고, 흔히 말하는 정경분리의 시장경제 원칙이 관철돼야할 영역이다. 

그런데 시장실패는 아니더라도 그것에 준하는 수준이란 정치적인 판단이 설 경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인가? 이 문제를 고민하고 논쟁해 온 주류경제학은, 1930년대 세계대공황을 맞아 정부의 시장개입 특히 기업의 생산과 국민의 고용에 대한 책임을 공식화한다. 케인즈주의 채택이다. 그 후 정부의 시장개입은 국정책임의 일환으로 명시됐고, 정부의 직접 생산·공급이 2차세계대전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1980년대, 신자유주의 기조가 밀려오면서 정부가 다시 생산에서 후퇴했고 그 책임은 기업에 돌아갔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기업은 자기자본과 금융자본과의 협력으로 생산·공급의 문제를 해결한다. 더 이상 정부가 국가예산으로 생산·공급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정경분리의 시장경제 원칙이 확립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차원의 금융위기가 케인즈를 부활시켰다. 시장개입 금지라는 이른바 反케인즈주의 원칙을 고수했던 주류경제학, 당면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신자유주의를 폐기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발상지인 미국·영국에 이어 유럽의 정책기조가 바뀌면서 경제에 대한 정부책임을 묻고, 그로 인한 국가 재정정책의 변화가 케인즈의 복권을 알렸다. 

그러나 국가정책의 범주와 정도는 나라마다 차이가 나기에, 지금 당장 어떤 확고하고 일반적인 원칙을 세우기는 어렵다. 다만 주류의 원칙으로 돌아가 소비에서는 시장실패를 보완하고 생산에서는 정부개입 특히, “돈은 지원하되 경영은 참여하지 말 것”이란 규칙(rule)이 시행중이라 판단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시장실패는 아니지만 수출규제로 생산이 마비돼, 재화의 생산이 불가능한 이른바 ‘시장흠결(market deficiency)’로 규정해 정부의 ‘협력’이 필요한 사안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처럼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원칙을 두고, 흔히 ‘공정경제’ 또는 ‘정책기조’라고 부른다. 우리는 정부의 이번 시장개입이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로 인한 국내 경제쇼크를 무마하기 위한 기업과 정부 간 협력조치로 이해한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시장흠결을 보완한다는 명분으로 공정경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정책을 추진해 시민사회의 반발을 사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 속에 포함된 재벌대기업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 규제완화 방안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몇몇 재벌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 폐해를 억제하고, 공정경제가 서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재벌총수 일가의 경영권과 부를 세습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일감몰아주기 규제 완화, 당연히 중지돼야한다. 

국가의 정책기조를 뒤흔드는 일이 국회에서도 벌어졌다. 국회는 대기업 특혜라는 이유로 관계부처에서도 난색을 표했던 ‘기업 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기활법은 공급과잉업종 기업의 신속한 사업재편을 위해, 2016년부터 3년간 상법·세법·공정거래법 등이 정한 일부 규제를 배제하는 한시법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일몰시한을 2024년까지 5년 연장하고, 적용범위도 기존 공급과잉업종에서 신산업 진출기업 등으로까지 확대했다. 

정부와 국회가 기활법을 개정하면서,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가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의문이다.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를 빌미로 재벌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보장하기 위한 특혜입법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앞으로도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재벌대기업이 얼마나 더 많은 민원을 제기하고, 정부가 이들의 민원을 어디까지 수용할지 걱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공정경제 원칙이 무너지면 우리사회의 양극화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상황임은 자명하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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