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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중고PC·유선전화’ 사업실패 이유는

PC가격 ↓, 휴대폰 빠르게 보급…옛 한국 성공사업 고집해선 안돼 

기사입력2017-03-12 17:39
김용빈 객원 기자 (kimcarlos@dmi.or.kr) 다른기사보기

개발마케팅연구소 김용빈 소장, 국제개발학 박사
아프리카에 첫 발을 딛는 많은 우리 비즈니스맨에게 첫 인상을 물어보면, 대부분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60년대나 70년대와 똑같다.” 주로 베이비부머 세대가 상사 혹은 고객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그렇다.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개발도상국을 포함해서, 그런 인상을 주는 게 사실이다.

 

좁고 더운 공항, 부실한 도로와 길가에 널린 쓰레기, 삭막하게만 보이는 양철 슬레이트 지붕과 미장도 없이 드러낸 회색 블록벽을 가진 누추한 민가. 60~70년대를 겪지 않은 한국 청년들조차 흑백사진으로 뿌옇게 기억하는 모습과 확실히 닮았다. 이 뿐만 아니다. 좀더 그곳에 있다보면 느끼게 된다. 수도와 전기를 비롯해 태부족인 인프라, 엉성해 보이는 사회시스템과 부패한 관료들, 매번 약속시간에 늦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현지인들.

 

서울 변두리에 살았던 필자의 기억속에도 매일 발생하던 정전사태와 동네 뒷산의 쓰레기 더미 그리고 시내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들이 생생하다. 구태여 숨길 필요도 없이 일상화된 뇌물과 ‘Korean Time’이라는 자조섞인 표현으로 스리슬쩍 넘어가던 나태함까지.

 

사실 필자조차도 한국의 과거와 아프리카의 현재가 정말 비슷하다는 느낌을 상당히 오래 간직했었다. 그러나 느낌은 거기까지다. 거기에서 멈춰야 한다. 비즈니스는 느낌으로 하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자꾸 과거의 느낌으로 현재를 재단하려고 고집을 피우는 경우가 꽤 많다. ‘60~70년대 한국의 경제상황과 산업발전 단계가 유사하니, 그 때 유행하고 성공한 사업을 하면 되겠다는 확신 말이다. 한국의 산업발전 경험을 고집하면서, 유사한 환경에서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기대는 불행하게도 다름아닌 확증편향일 뿐이다.

 

물론 우리 기억에 어떤 사업은 성공했지만, 다른 사업은 어림도 없었다. 반대로 아프리카에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은 아이템이 승승장구 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에서의 경험을 고집하고 아프리카 시장을 깊이 들여다 보는 노력이 없으면 반드시 실패한다.

 

<자료=개발마케팅연구소>
교과서에서 말하는 산업이 발전하는 방식은 대략 옆 그림과 같다어떤 산업이나 기업, 또는 상품이든 대체로 이와 비슷한 경로를 따른다. 어떤 계기가 있어 시장에 진입해 성장하다가 성숙기에 접어들고, 완숙한 뒤에는 이를 대체하는 다른 산업이나 기업, 상품에 밀려 쇠퇴하기 마련이다.

 

한국 기업은 대부분 ‘Fast Follower’로서 이런 사이클을 단축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왔다. 흔히 말하듯 우리는 한마디로 압축성장을 해왔다. 그러니까 선진국의 동향을 유심히 살피고, 복사하고, 개선하는 전략을 취했고, 다행히 많은 경우 성공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는 산업발전 곡선의 기울기를 가파르게 하는데 노력을 기울였고 성공했다. 그 성공에 도취해서인지 우리는 이런 전략이 어디에나 적용될 것으로 믿었다. , 우리 경험과 비슷한 발전단계에 있는 사업을 아프리카에서 찾아(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쇠퇴기에 접어든 그 사업을) 아프리카로 가져가는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옳을 수도 있다. 시장에서 상품을 담아주는 시커먼 비닐봉지가 그랬고, 별다른 간식거리가 없는 농촌에서 뻥튀기 기계가 그랬다. 또 길거리에서 아이스박스에 넣어 돌아다니며 파는 쮸쮸바가 그렇다. 크든 작든 그 사업 아이디어가 치밀한 분석과 전략에서 나왔다면 박수를 받아 마땅할 일이다.

 

<자료=개발마케팅연구소>
산업이라 부를만한 규모에서도 이런 모델이 적용될 만한 여지가 물론 있다. 2000년대 초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에서 분쟁이 가라앉으며 건설 붐이 일었을 때, 우리 기업의 놀고 있는 시멘트 생산라인을 아프리카로 이전하자고 우리 정부와 업계에 건의한 적이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갑자기 건설 붐이 일어나니 건자재가 품귀였다. 그 가운데서도 시멘트는 정말 구하기 어려웠고, 그 어려움이 시장가격에 그대로 반영돼 당시 한국내 가격의 3~4(소매가 기준)나 됐다. 당시 국내 시멘트 업계는 그야말로 쇠퇴기를 겪고 있었다. 7개 기업의 총 생산능력은 연산 6200만톤이나 됐지만, 그것은 우리 역사에서 건설 붐이 정점을 찍던 80년대에 완성된 것으로, 4대강 사업이 한창일 때도 기업마다 1~2개 생산라인은 쉬고 있었다. 이 생산라인을 아프리카로 이전하자는 아이디어였다

 

놀고 있는 자산으로 현물투자를 하자는 것인데, 왜 아프리카까지 가서 시멘트 공장을 운영해야 하는지 설득이 필요했다. 우리나라 기업은 전통적으로 O&M(Operation & Maintenance)에 강하다. 철저하게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기술자들 덕분에 내구연한을 넘겨서까지 멀쩡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항공기를 만들어 파는 보잉(Boeing)사도 항공기 정비는 대한항공에 가서 배운다고 하겠는가.

 

시멘트 공장처럼 전체 공정(Process)이 길고, 각 공정마다 기계류의 수명이 제 각각인 플랜트의 경우는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한국에서 시멘트 공장을 가져가려면 공장장까지 같이 가야만 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이 아이디어는 아직실현되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지만 여전히 기회는 있다.

 

이 모델의 긍정적 측면을 생각해 봤으니, 이제 뼈아픈 실패사례를 살펴보자. 중고 PC는 초반에만 성공을 거뒀고, WLL(Wireless Local Loop)은 초반부터 죽을 쑤었다. 우리나라에서 PC 보급이 성숙기에 다다른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상당한 양의 국내 중고 PC가 아프리카 각국으로 나갔다. 아직 쓸만한 성능에 싼 가격으로 인기가 있었다. 국내에서는 거의 폐기물 가격으로 수집한 물건을 현지에서 조금씩 손을 봐서 유통에 성공한 경우가 꽤 있다.

 

4G는 아프리카에서도 흔하다.<자료=개발마케팅연구소>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2000년대 중반 PC는 곧바로 한계에 도달했다. 세계 어디서나 날이 갈수록 PC가격은 내려가기만 했다. 사양이 월등한 신제품이 2~3년전 가격으로, 심지어 그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됐다. 2005IBMPC사업부문을 Lenovo에 매각한 사건이 그 시절을 상징하는 듯 싶다.(세월이 흘러 2016년에는 삼성전자도 PC부문을 Lenovo에 매각한다는 뉴스가 있었지만,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PC 가격이 한계로 여겨지던 가격 밑으로 계속 내려가면서 어느 순간 중고 PC라는 시장 자체가 사라졌다. 당시 마지막 컨테이너에 실린 물량을 소화하느라 고생한 사례가 있다.

 

WLL은 사업규모가 커서 더욱 충격이 컸다. 2006년 국내 A기업이 민주콩고의 유선전화 회사 지분 51%를 인수했다. 현지 정부와 합작으로 유선전화 사업을 시작했다. 핵심 전략은 유선전화망이 거의 없는 콩고에 광통신 백본망(Backbone Network)을 깔고, 이를 기반으로 CDMA WLL을 도입해 1차로 800만명에 이르는 수도 인구를 공략하고, 장기적으로는 전국으로 사업을 확대, 7000만명이 넘는 인구 대국의 기간망 사업자가 되는 것이다.

 

WLL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각 기지국까지는 유선망으로 연결하고, 각 기지국과 가정·사무실의 전화기(fixed phone)까지는 무선으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유선전화 사업에서 가장 까다롭고 원가가 많이 드는 마지막 연결부분(last mile)CDMA WLL로 연결하는 것이니, 집 안에서만 쓸 수 있는 휴대전화쯤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술개발 직후 중국·인도 등에서 각광받은 바 있고, A기업 역시 몽골에 적용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콩고 WLL사업은 폭망했다. 현지 정부와의 불협화음, 노조의 반발 등 여러가지 다른 부수적 요인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휴대전화가 예상치 못하게 빠르게 보급된 것이다. 휴대전화는 순식간에 대륙을 장악했다. 현재 아프리카 전체 인구가 11억명인데 약 8억대가 개통돼 있다. 보급률로만 본다면 다른 대륙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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