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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적도 아니고, 여성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오해에서 비롯된 편견…생리대 파동과 페미니즘 미술 

기사입력2017-10-10 14:01
김태현 미술평론가 (elizabeth0711@gmail.com) 다른기사보기

생리대와 여론=각종 화학물질이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밥상 위의 계란에 이어 가임기 여성들이라면 매달 지나칠 수 없는 생리대까지 생활과 밀접한 물건들이 인체에 위협을 가한다는 이슈를 접하며 한숨을 쉬곤 하였다. 그러나 계란과 생리대는 사건을 대하는 언론과 대중의 양상이 매우 다르다. 연일 언론에서 계란과 관련된 뉴스가 도배되던 것보다 생리대 사건은 명확한 원인도 못 찾고 다소 조용해졌다.

 

초등학교 때 받았던 생리대와 관련된 성교육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이유를 나름 짐작해 볼 수 있다. 필자는 90년대 중반에 초등학교에서 여학생들만 따로 불러내어 생리대와 관련된 설명을 들었다. 생리대의 TV 광고가 허용된 것이 1995년임을 감안하면, 아마도 그래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였었나 보다. 그 교육 중 생리대는 잘 싸서 안 보이게 감춘 듯 휴지처럼 버려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였는데, 그때부터 나는 생리대란 감추어야 하는 존재에 가깝다고 학습되었다.

 

생리대란 건강한 가임기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달에 한 번씩 쓰는 용품인데 언제부터 감추는 것이 미덕으로 된 걸까. 이번 생리대 파동이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감추어야 하는 여성용품이었던 생리대를 완벽하게 대중의 수면 위로 끌어올려 그 반응을 살펴보는 기회를 준 것이다.

 

자화상, acrylic on wood, ladder, 45x90x10cm, 1993, 윤석남
이번 생리대 파동의 양상을 앞에 두고 여성들의 반응은 실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모든 여성이 유해 물질 생리대에 분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여성들은 판매가 중지된 유해성분 과다 검출 생리대를 저렴하게 잘 이용하고 있었는데, 왜 더 이상 못쓰는가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러한 물질이 검출되지 않는 비교적 고가의 수입제품을 사용하면 되지 하며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다음으론 이 사건을 계기로 남자들이 생각하는 생리대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어떤 남성은 여러 사이즈의 생리대가 마치 의류 사이즈처럼 체형에 따라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남성들이 얼마나 생리대에 대해 무지한지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물론 남성들이 생리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어릴 때 여성들이 감추어야 하는 것으로 여겼기에, 남성들에게 생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일도 없을뿐더러 본인 일이 아니기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았고, 이러한 여담들을 낳게 된 것이다.

 

페미니즘과 페미니즘 미술=생리대 파동은 결국 페미니즘의 이슈로 전환되며, 지금까지 열악한 환경을 일깨워 주고 있다. 사람마다 매달 경험하는 생리는 개인차가 심하고 증상이 달라 연구 및 문제제기가 어렵다. 재미있는 건 페미니즘도 생리대 파동과 유사한 양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게 존재하고 전개된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를 포함하는 남성부터 남성 혐오를 아이덴티티로 삼는 극단적 페미니스트까지 매우 넓은 지점을 포함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이처럼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이며, 주디스 버틀러가 이야기하는 생물학적으로 나눌 수 없는 젠더의 문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페미니즘 미술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민중미술이 주를 이루던 시절 페미니즘 미술이 태동되었다. 여성 미술 조직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되었는데, 생물학적 성으로 나뉜 여류 미술페미니즘 미술그리고 여성의 사회적인 권익을 주장하는 여성미술이 있었다. 오늘날까지 이 조직의 활동은 이어지지 않으나 등장만으로도 한국 미술사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미술의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며 더 이상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작품의 서두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80년대 여성 미술가들이 고민하던 문제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혹자는 나는 페미니스트 미술가를 외치고, 다른 미술가는 내 작품을 페미니즘으로 읽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리대 파동처럼, 여성이기에, 여성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미술로 표현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개인만 경험하는 사적인 문제들이 아니기에 여성주의 미술, 페미니즘 미술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폐경 폐경 1.2, 홍이현숙

 

오늘의 페미니즘 미술가들=1980년대 여성주의 미술가로 활동하는 대표적인 작가로는 윤석남이 있다. 윤석남은 1980년대부터 어머니와 여성의 삶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40대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결혼 후 삶에 무료함을 느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 미술을 선택하였다.

 

처음 그가 작업의 주제로 삼은 것은 어머니다, 이후 여성의 방 그리고 1025마리의 유기견을 돌보며 사는 할머니까지 여성들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소박한 소재들을 작품에 활용해 어렵지 않고, 공감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다가온다.

 

최근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 개인전을 선보인 홍이현숙 역시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미술가다. 그의 작업 중 폐경 폐경 1.2’는 작가가 폐경을 경험하며 자신의 신체 변화를 통한 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작품에서 작가는 폐경을 거치며 축지법과 비행술을 익혀 도시의 지붕을 날아다닌다. 폐경이 여성의 역할을 하는 기능의 퇴화가 아닌 새로운 여성으로 향하는 진화되는 모습이자 동시에 탈주에서 해방된 모습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젊은 미술가로는 흑표범이 있다. 그의 근작인 ‘vega’는 세월호 유가족의 어머니 3명을 인터뷰하였고 그들을 기억하며 위로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하면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영상이 상영되는 내내 한 길 건너에 가만히 앉아있는 작가의 모습은 그 모든 슬픔을 공감하며 오롯이 감내한다.

 

최근 작업한 타인의 세계는 주변 여성들을 주제로 드로잉한 작품이다.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특이한 옷을 입고 행동을 하면 지적을 당하곤 한다. 흑표범은 이를 개인의 개성으로 보고 남들이 지적하는 모습을 중심으로 극대화해 새로운 의상을 만들어 입고 있는 드로잉 작업을 하였다. 그의 위트 넘치는 드로잉들은 세상의 편견에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 미술을 바라보는 것은 여성에 대한 관심과 이해에서 출발한다. 앞서 언급한 미술가들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다. 멀리 있는 타인이 아닌 자신과 그 주변의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페미니즘에 대한 시선은 여러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은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다. 페미니스트의 적은 남자도 아니고 페미니즘이란 오직 여성들의 이권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페미니즘 미술도, 생리대 파동도 마찬가지다. 모두 인류의 한 모습이며 모두가 함께, 동등하게 잘 살기 위한 삶을 지향하는 것으로 꾸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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