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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시스템 밖으로 밀려나 폐기된 존재들과 ‘모범시민’

Life is pain.ting…레지던시 풍경 #6. 모범시민 

기사입력2018-06-19 16:02

벚꽃이 여름에 내리는 소나기처럼 온다면, 이팝나무는 한겨울 새벽에 내리는 눈처럼 몰래 온다. 하얀 쌀밥을 수북하게 담아 놓은 밥공기 닮은 이팝나무가 초록 잎사귀와 섞여 거리를 온통 시큰한 연둣빛으로 물들이는 동안 이곳, 레지던시는 5월의 전시 준비로 한창 분주하다.

 

도자로 특성화된 레지던시답게 가마는 대형 도자들로 그득 차서 연일 쉬지 않고 돌아갔고, 이상하리만치 내내 서늘한 건물 내부도 조금씩 온도가 오르고 있다.

 

5, 두 손이 타들어 갈만큼 뜨거운 유골함을 품에 안고 버스에 올랐던 두 해를 떠올렸다. 태어나 죽는 것은 순리지만, 너무 서둘러온 죽음이나 선택한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오랜 생채기를 남겼다.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해 감정이 건조화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생김새는 축축하던 과일이나 음식 따위가 말라가는 과정과 비슷할 것이다. 다 증발되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도 있는가 하면 끝내 단단히 건조되어 애초에 이것이 무엇이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들도 있다. 내게는 바로 그러한 것들이 소화되지 못하고 작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시스템 안에서 생산성을 잃은 것들은 빠르게 폐기되고 쉽사리 존재가치는 사라졌다. 자의든 타의든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 존재들은 조용하고 착하게 폐기돼야 했고,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사회는 그들을 모범시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어떤 식으로든 문제적 인간으로 낙인찍히곤 했다. 그 과정을 목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비관자살이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사건들을 모아놓은 스크랩 기사가 52개였고, 얼마전 진행한 부산에서의 스쾃기간동안 52개의 헌옷을 서로 바느질하거나 케이블 타이로 연결해 건물 밖으로 널어놓는 설치 작업을 진행했다. 서로 연결된 옷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이와 틈이 벌어져 결국 무사히 땅에 닿는 과정을 스쾃 기간동안 담아낼 수 있었다.

 

52개의 헌옷을 바느질하거나 케이블 타이로 연결해 건물 밖으로 널어놓은 설치 작업(부산 스쾃)<제공=김윤아 작가>

 

헌 옷들의 소매와, 바짓단이 서로를 움켜쥐고 늘어져가는 모습을 담아내는 동안 사회가 말하는 모범시민이 궁금했던 나는 사전을 찾아 봤으나,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어학사전에도 어디에서도 그 뜻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수가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것의 기준에 부합하는 자(박정*)’ ‘저항하지 않는 사람(김지*)’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세금을 내는 것, 인습에 벗어나지 않는 선의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것, 결혼을 해서 큰 돈을 빌리고 평생 갚으며 아이를 양육하고 어르신들을 부양하는 것(이영*)’ ‘타인의 모범(강영*)’ ‘제라드버틀러(전범*)’ ‘토달지 않고 오직 시키는대로만 하는 사람(조영*)’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조경*)’ ‘-모든지, -범생이처럼, -시키는대로 잘하는, -민간인(조성*)’ ‘개개인이 속한 미풍양식이나 도덕, 법률이 정한 것을 위반하지 않고 시 행정에 부합하게 솔선수범하는 사람(송성*)’ 외 다수(모범시민의 뜻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SNS에 달린 덧글들).

 

결국 그 질문은 작업으로 이어졌고 시각화시키는 과정에서 헌 옷들이 되도록 많이 필요했던 터였다. 스쾃에 필요했던 옷들부터 5월 전시까지 들어갈 헌 옷의 양은 대략 2톤 트럭 한가득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이 많은 양의 옷을 구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헌 옷 판매상을 찾아 버려진 옷들을 다시 구입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탐탁치않았기에 되도록 어떻게든 모아보려고 했으나 그럴수록 몸은 더없이 게을렀고, 마음만 분주해졌다.

 

배신은 가까운 곳으로부터 도움은 먼 곳으로부터라고 했던가.

 

각설하자면, 작업에 필요한 재료는 불과 보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모였다. 모 재단으로부터 1톤 트럭 한차 가득 헌 옷을 받았으며(보내주셨고), 흙을 만지는 K선생님으로부터 또 1톤 트럭 가득, 예상치도 못했던 지인들이 한 두 박스씩 보내주셔서 창고는 금세 틈 없이 헌 옷으로 채워졌다. 전부터 언제 같이 콜라보 해보자고 말을 주고받던 지인이 작업에 필요했던 목공 작업을 선뜻 도와주기도 했다.

 

이번처럼 작업을 준비하며 수월해보기는 처음이었다. 고마움이 목젖에 걸려 추처럼 배꼽까지 터억~ 떨어진다. 덕분에 물리적인 노동량이 훅 줄어들어 몇 해 동안 놓치고 말았던 5월 특유의 질감을 유영하듯 느낄 수 있게 됐다.

 

공원에 나가 벤치에 앉아 있자니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기엄마들, 사랑에 빠진 젊은 커플들의 청량한 뒷모습, 쉴 새없이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 소년 소녀들과, 거북이처럼 멀건 표정의 노인의 얼굴, 웃음소리가 요란했던 아주머니 몇몇, 쉬지 않고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모습, 그 사이로 넘쳐 난 쓰레기통에 얼굴이 어두워진 환경 미화원의 모습이 뒤엉켜 흡사 민들레 홀씨처럼 구석구석 흩어져 부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지난 몇 해의 5월을 곱씹어 보며 최근 내게 화두가 된 모범시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서는 한 쪽 끝 벤치에 앉아 달아빠진 편의점 커피를 홀짝이던 내가 있었다.

 

어디까지가 모범시민이고 어디까지가 아닌지 아마 시각적으로 나와 봐야 알지도 모르고, 혹은 그간의 경험처럼 작업 후 몇 해가 지나야 비로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작업이 나오기도 전에 작업 노트를 작성하는 일이나, 아직 무엇인지 모를 때 무엇을 말해야 하는 일들은 현실적으로 늘상 필요한 일이었고 그러한 것들을 얼마만큼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인지 스스로 알아보는 일들은 정말이지 쓸데없이 장황하고 시시한 신의 농담 같다.

 

5월에는 그저 그동안 변명이 많던 안부를 묻는 편지가 제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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