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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장 벤츠·성형수술에 묻혀버린 국가 책임

유치원사업하라 할 땐 언제고…“100억사업, 그 정도는 남겨야지?” 

기사입력2018-10-22 14:43
김준모 객원 기자 (gubtree@hanmail.net) 다른기사보기
“100억 들여 하는 사업인데, 그 정도 이윤은 남기려고 하지 않겠어?”, “유치원이 장사냐? 국민세금으로 벤츠사고 성형수술하는게 말이 돼?”

오랜만에 대학동창을 만났습니다. 사십대 중반의 아저씨 둘이 만나 가는 곳은 의례 술집이지요. SNS를 통해 이미 접해 새로울 것 없는 서로의 근황을 확인하고, 옛 추억 몇 갈래를 풀어놓으며 낄낄대고 나니 씹어댈 술안주가 궁했던 모양입니다. 달아오른 취기를 깨는게 아쉬워 시사문제로 갑론을박하며 술잔을 늘려나갔을 겁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2일 대전의 한 카페에서 사립유치원 학부모들과의 간담회에서 “사립유치원 비리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하고 유아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뭐, 딱히 서로의 의견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병설유치원이 아닌 공립유치원 하나를 설립하는 예산이 100억원 정도라는 기사를 인용하면서, “그런 큰돈을 투자하는 사람들한테 공공성을 기대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니까”하며 어깃장을 놓은 저도, 유아교육과 아동보육은 공공영역이라는 같은 입장을 갖고 있으니까요. 

집에 가려는 친구를 2차까지 묶어놓으려는 얄팍한 계산에서 그 친구의 심사를 긁어댔지만, 그렇다고 속에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닙니다. 요즘에 말 많은 사립유치원 비리를 두고, 유치원 원장들의 부도덕만 강조하는 것 같아 탐탁지 않게 여겼으니까요. 유치원 문제는 언론을 통해 알게 된 것이 다여서, 저도 남들과 특별히 다른 의견을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일하고 있는 노인요양 일과 비교해서 생각하니, 운영자인 유치원 원장들 탓만 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8년 우리나라에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생겼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어르신을 보살피는 사회서비스제도가 생긴 것이지요. 노인장기요양서비스는 건강보험에 추가된 노인장기요양보험, 사회보험을 재원으로 하는 공공영역입니다. 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절대다수는 민간기관입니다. 장기요양기관 중 0.7%만이 국·공립기관이라고 하더군요.

노인장기요양보험제 시작에 앞서 보건복지부가 설명회를 개최했습니다. 그 설명회에서 저는, 무슨 프랜차이즈가맹점 모집설명회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의뢰한 컨설팅업체에서 나와 장기요양기관을 차리려면 자본금이 얼마나 들고, 어르신 몇 분을 모집하면 얼마의 수익이 난다는 내용의 사업전망을 설명했습니다. 제도의 공공성에 대한 언급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 설명회의 주된 내용은 얼마를 투자하면 어느 정도 벌 수 있다며 요양기관 설립을 독려하는 것이었습니다.  

영리목적의 민간업체를 무분별하게 참여시키면, 사회서비스제도의 공공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복지부는 민간사업자 유입을 적극 권장했고 문턱도 낮췄습니다. 복지부의 의도는 성공해, 노인장기요양보험제 시작과 함께 우후죽순처럼 수많은 장기요양기관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부작용도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제공기관의 난립과 과도한 이윤추구 속에서, 서비스 질이 떨어지고 부정청구 등 비리가 만연하다는 비판이 뒤따랐습니다. 

올해부터 장기요양제공기관에 종사자 인건비 의무비율이 도입됐고, 사회복지시설 재무회계규칙을 표본으로 만든 재무회계규칙이 점차 확대적용되고 있습니다. 종사자의 처우개선과 서비스 질 향상, 공공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제도개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많은 기관장들이 반대하며 집단행동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반발하는 기관장들을 향해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이윤을 추구하려한다며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년 전, 프랜차이즈가맹점 모집과 같던 복지부의 사업설명회를 떠올리면, 비판의 화살은 정부가 먼저 받아야 할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박근혜랑 문재인을 비교하냐?”, “지금 정부나 지난 정부나 하는걸 보면 그게 그거”라는 제 말에, 친구가 발끈해서 한 말입니다. 저나 그 친구나 재작년 가을에서 작년 봄까지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앉아있었습니다. “다를 게 뭐 있냐? 우리 애들한테는 김대중도 박정희랑 마찬가질 걸?” 이어지는 제 말에, 친구는 ‘탁’하는 소리를 내며 소주잔을 탁자에 내려놓더군요.

괜히 이죽거리고 싶어 막 던진 말이었지만, 딱히 틀린 말 같지도 않아 번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 나이였을 때, 아버지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으면 이만큼이라도 먹고살 수 있었는지 아냐”며 혀를 차셨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전 대통령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불평등한 사회를 만든 독재자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IMF라는 국가위기를 극복하고 통일의 물고를 튼 노벨평화상 수상자일 수 있지만, 우리 아이들에겐 재벌만 이롭게 하고 비정규직 아니면 취직할 곳이 없는 사회를 만든 원흉일지도 모르지요.

그러고 보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을 못외워 선생님께 혼나던 어린 시절을 흐릿하게 기억하는 우리들이 어느덧 중년의 꼰대가 돼버렸네요. 지하철역에 노숙자들이 잠을 자는 낯선 풍경이 일상이 되어가던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제 진학과 취업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술자리에서 티격태격 입씨름을 했지만, 저와 제 친구의 생각은 다르지 않습니다. 조만간 집값 거품이 꺼질거라며 버티다, 이사 다니는 것에 지쳐 얼마 전 무리해서 대출받아 아파트를 사버렸다는 제 친구나, 세 살던 아파트가 팔려 또 이사를 가야하는 저나 다를게 없습니다. 시민단체 출신이라는 여당 국회의원이 강남에 아파트가 세 채라는 이야기 끝에, 쓴 입맛을 다시며 저와 제 친구는 마지막 잔을 털어 넣고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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