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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120개 6억 형광등 1개 10억…미니멀리즘

일상제품 활용…권위 타파하려는 작품이 다른 권위 가진 아이러니 

기사입력2018-11-03 14: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500만원짜리 벽돌과 10억원짜리 형광등을 본 적 있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벽돌이고, 형광등이다. 그런데 벽돌은 500만원이다. 형광등은 무려 10억원이다. 명품 벽돌과 명품 형광등이라도 만든 걸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싸지 않은가?

 

칼 앤드리의 벽돌과 댄 플래빈의 형광등=영국 런던에 있는 테이트 갤러리(TATE)1972년 미국 미니멀리즘 작가 칼 앤드리(Carl Andre, 1935~)의 작품 등가 VIII(Equivalent VIII)’를 구매했다. 1966년 제작한 이 작품은 우리가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벽돌 120개를 작가의 지시에 따라 6개씩 10줄로 배열해 두 층으로 쌓아 올린 직육면체 모양의 작품이다.

 

그 당시 이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테이트 갤러리가 지급한 금액은 2297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360만원이었다. 벽돌 하나에 약 3만원인 셈이다. 당시의 영국 언론들은 이 구매에 대해 맹렬히 비판했다. BBC를 비롯한 언론들은 테이트 갤러리가 국민 세금으로 아무 벽돌공이나 만들 수 있을 법한작품을 사들였다고 조롱했다. 예술 전문 월간지 벌링턴 매거진(Bulington Magazin)’ 조차 테이트 갤러리는 제정신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 작품의 가격은 얼마일까? 현재는 약 6억원. 벽돌 한 장에 500만원이 됐다.

 

201711월 뉴욕 크리스티(Christie’s)에서는 전후(戰後) 미술과 컨템포러리 아트(Post-war and Contemporary Art)’ 미술품 경매가 있었다. 여기서 단연 화제가 됐던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500여년 전 그린 예수 초상화 살바도르 문디(구세주, SALVATOR MUNDI)’였다. 이 작품이 약 5000억원(USD 450,312,500)에 낙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고가에 팔린 형광등 하나가 있다. 바로 댄 플래빈(Dan Flavin, 1933~1996)1963년 작품인 ‘525일의 대각선(The diagonal of May 25)’이다. 형광등 하나를 사선으로 배치한 것이 전부인 이 작품은 경매에서 약 10억원(USD 996,500)에 낙찰됐다. 형광등 하나에 10억원이라니.

 

칼 앤드리, ‘등가 VII(Equivalent VIII)’, 1966, 벽돌 120개, 12.7×68.6×229.2cm.<출처=minimalissimo.com>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소변기를 가져와 (Fountain, 1917)’이라고 명명한 작품은 ‘R. Mutt’라는 서명이라도 존재한다. 하지만 칼 앤드리의 벽돌도, 댄 플래빈의 형광등도 작가의 흔적은 전혀 없다. 이 작품들은 공사장에서 가져오거나, 전파사에서 사 온 물건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공사장의 벽돌과 전파사의 형광등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무슨 차이 때문에 이렇게 비싸단 말인가?

 

일상용 제품을 활용한 모더니즘의 전복=벽돌을 작품으로 선보인 칼 앤드리도, 형광등을 작품으로 선보인 댄 플래빈도 모두 네오 아방가르드(Neo-Avant-garde)의 한 분파로서, 극단적인 단순화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작가라고 할 수 있다. 1940~50년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을 대표주자로 했던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1950~60년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작업에서 드러나는 색면회화(Color-Field Painting) 등은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후기 모더니즘이라 불린다.

 

모더니즘은 세상과 단절해서 예술이 자율적으로 존재하는 세계, 예술의 언어로만 보여줄 수 있는 세계를 꿈꿨다. 그리고 그 세계를 만드는 것은 오직 미술가의 행위에 의해서만 가능할 뿐이었다. 모더니즘이 엘리트주의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세상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폴록의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 작품도, 로스코의 색면화도, 세상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예술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세상 안에 존재하는 예술이고, 미술가인데, 세상에 무관심해도 되는가? 과연 예술가만이 예술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모더니즘, 즉 순수 미술을 부정하며 나타난 것이 바로 전위예술(前衛藝術)아방가르드. 뒤샹이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변기를 가져다놓고 이라고 명명했던 것이 예술을 위한 예술인 모더니즘의 미학을 부정하기 위한 아방가르드의 행위였다. 이 아방가르드가 40~50년대 미국을 풍미했던 후기 모더니즘을 비판하기 위해 네오-아방가르드라는 형태로 소환됐고, 미니멀리즘이라는 새로운 미술을 불러왔다.

 

네오-아방가르드는 자신들이 직접 작품을 제작하지 않음으로써 작품에 대한 작가의 신적 지위를 놓아버렸다. 특히,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은 산업 재료를 사용해 그것을 기능공에게 맡겨 만들어내는 산업적 제작 방식을 채택하거나, 기성 제품을 활용하는 일상용 제품 활용 방식을 채택했다. 칼 앤드리가 벽돌을 사용한 것도, 댄 플래빈이 형광등을 사용한 것은 바로 후자인 일상용 제품 활용 방식의 일환이었다.

 

댄 플래빈, ‘5월25일의 대각선(The diagonal of May 25)’, 1963, 형광등, 180.3×177.8×11.4 cm.<출처=www.davidzwirner.com>

 

일상용품을 넘어서 버린 일상용품=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생활과 밀착되길 원했다. “생활 속에서 미술을 실천한다(art into life,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그들의 목표였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작품에서 작가의 숨결을 지우고자 했기에, 타인에게 제작을 맡기거나 일상용 제품을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봤고, 그것을 꿈꿨다. 따라서 모더니즘이 엘리트주의였다면, 아방가르드는 대중주의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벽돌 작품과 형광등 작품을 처음 만들었을 때, 칼 앤드리는 벽돌 가격만 받고 이 작업을 팔길 원했을 것이고, 댄 플래빈은 형광등 가격만 받고 팔길 원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 당시 그들의 정신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예술가보다는 노동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60년대는 과거의 이야기다. 칼 앤드리는 벽돌을 여러 모양으로 쌓거나, 똑같은 크기의 철판을 펼쳐놓거나, 나무 목재를 쌓아 유사한 양식의 작품을 거듭 만들면서 명성을 쌓아갔다. 그리고 지금 그 작품들은 아주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댄 플래빈도 형광등을 여러 가지 형태로 모으거나 색채를 넣어 작품을 만들면서 유명한 작가가 됐다. 그리고 그의 작품 또한 비싸게 거래된다. 그들은 역사적인 작가가 됐고, 그들이 사용한 일상용품은 이제 일상용품에서 벗어나 버렸다.

 

초창기 그들은 작가의 흔적이 작품에서 사라지고, 생활과 밀착된 작품을 선보이길 원했다. 그럼으로써 누구나 예술가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지금은 칼 앤드리의 벽돌과 댄 플래빈의 형광등은 더 이상 공사장의 벽돌도, 집에서 쓰는 형광등도 아니다. 그들이 벽돌이나 형광등에 직접 서명하지 않았지만, 이미 이 재료들에는 작가의 지문이 묻어버렸다. 이 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것만으로도 작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권위를 타파하려는 작품이 다른 권위를 가진 상황. 아이러니한 일이다. 과연 언제쯤 예술은 투자가치를 지닌 값비싼 제품에서 벗어나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인가? 그 세상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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