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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기자수첩

너무 더딘 공정경제, 그 사이 골목상권 스러져간다

세련되고 정교해진 착취구조, ‘억울함’에 극단적 선택 늘어 

기사입력2018-11-14 16:33

1995년 11월이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가 극장에 걸렸다.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려고 혼자 극장을 찾았다. 혼영(혼자 영화를 본다는 말)이 흔치 않았던 시절, 고1 여학생은 혼자서 많이 울었다. 영화가 보여준 참혹한 노동현장이 믿기지 않아서 그랬다. 끝내 제 몸에 불을 놓아야했던 숨막히는 암담함이 전해져서였다. 당시에도 청년 전태일의 사망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과거 일이었다.

 

13일 전태일 열사의 48주기 추도식이 있었다. “내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던 그의 유지는 지켜지고 있을까. 눈에 보이는 노동환경은 과거에 비하면 나아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착취의 구조는 더 세련되고 정교해졌다. 기본적인 휴식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서비스노동자들, 택배노동자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저임금 비정규직노동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스스로를 가맹근로자라고 칭하는 가맹점사장님들, 자영업자의 문제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전태일 열사 48주기 추도식이 있던 날, 광화문 광장에 상인들과 노동자, 시민단체 회원들, 정치인들이 함께 모였다. 불공정한 카드수수료체계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일 년에 몇 안되는 대목 중 하나인 김장시즌이지만, 슈퍼마켓 사장님들은 ‘억울해서’ 나왔다고 했다. 카드사가 중소상인들에게 카드수수료를 대기업보다 세배 많이 받아가는 현실이 납득되지 않아서다. 그런 카드사가 골목시장을 파고들어 자영업자를 사멸시킨 대기업에게는 카드수수료를 할인해 주고, 수조원의 마케팅비용까지 지원한다. 한 상인은 “중소상인의 목에 빨대를 꼽아 뽑은 피로 대기업을 수혈하는 나라가 공정한 나라인가” 물었다. ‘카드수수료’ 문제로 표면화된 재벌대기업, 기득권의 변화를 촉구하는 자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공정경제전략회의에서 “‘공정경제’는 경제에서 민주주의를 이루는 일”이라며 “우리는 누구나 잘 살기를 원한다. 열심히 일한만큼 결과가 따라주기를 바란다. ‘공정경제’는 이렇듯, 너무나 당연한 소망을 이루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성장의 과실을 정당하게 나누는 것, 서민과 골목상권·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함께 잘살고자 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공정경제의 행보는 너무 더디다. 법망을 교묘히 피하거나, 불법을 자행하며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세력들의 저항이 거세서다. 그 사이 유통기업의 저임금노동자와 같은 신세로 전락한 편의점·대리점·가맹점과 같은 골목의 사장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했다. 법이 없어 고통받는게 아닌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문화가 더욱 절망을 주기 때문이다. ‘배고픔’이 아니라 ‘억울함’이 극단적인 선택을 부른다. “어차피 이대로 가다간 그냥도 죽을 것 같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공정위에 가서 죽으면 좀 달라지지 않겠나”라는 골목가게 사장의 말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목숨으로 공정을 촉구할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경쟁으로 인해 또다른 전태일이 나와서는 안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변하지 않는 현실, 우리세대에서 끝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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