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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가상화폐, 화폐로 인정받을까 사라질까

조가비에서 암호화폐까지…화폐의 발달과 부의 이전 ㊤화폐의 역사 

기사입력2018-11-14 16:09
연삼흠 객원 기자 (01022557878@nate.com) 다른기사보기

조가비에서 암호화폐까지…화폐의 발달과 부의 이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서 우리는 새로운 개념의 화폐와 만나게 됐다바로 디지털 가상화폐다디지털 가상화폐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비트코인이 있다비트코인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가상화폐와는 다르게 발행처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고성능 컴퓨터로 복잡한 수학문제를 풀거나 거래를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나타난 가상화폐비트코인은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주목받고 있다이 비트코인이 화폐로 인정받을지 혹은 반짝하고 사라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그렇다면 지금껏 화폐라는 개념은 어떻게 정립돼 왔을까?

 

한국블록체인산업협회 연삼흠 회장(단국대 자산관리 교수)
화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화폐는 당시의 시대상과 경제상황을 알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 주로 조개껍질, , , 나무 등을 화폐로 이용했으며 현재 우리가 쓰는 지폐처럼 그 자체가 화폐인 것도 있었다.

 

물물교환=기원전 6000년에는 가축인 소가 화폐처럼 취급됐다. 내가 닭을 사고 싶으면, 소 한 마리 값에 준하는 닭을 누군가에게 받아야 했다. 혹은 닭을 갖고 있지만 돼지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돼지를 가진 사람과 소를 교환해야 했다. 당연히 교환상대를 구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후, 물건 사이의 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곡식과 옷감 등의 생필품이 화폐의 역할을 대신 했다. 이를 상품화폐라고 한다. 상품화폐는 물물교환에 비해 그 과정이 간편했지만, 부피가 크고 무거워 소지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보관과 소지가 간편한 동물 뼈와 조가비가 화폐의 기능을 갖게 된다. 아프리카와 중국, 인도 등에서는 기원전 1200년 전부터 조가비를 화폐로 사용했다. 조가비는 화폐이자 장식품의 역할도 겸하며, 오랫동안 사람들이 탐하는 존재였다.

 

금속화폐=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오며 본격적으로 금속화폐가 보급된다. 금속은 조가비보다 단단하고 오래가며 휴대가 편리한 화폐였다. 일정한 크기로 잘라 만들 수도 있고, 다시 녹였다가 새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 획기적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청동과 철로 돈을 만들었으나, 쉽게 녹이 슬지 않는 금과 은이 주요 화폐로 정착했다.

 

금은 쉽게 녹이 슬지 않고 매장량이 적어 당시 화폐로 채택되는 데 손색이 없었다. 역사적으로 금은 가장 중요한 화폐수단이었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금과 은은 매장량이 적어 당시 화폐로 채택되는 데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값을 지불할 때마다 무게를 재야했다. 이른바 칭량화폐. 영국의 화폐 단위가 무게를 나타내는 파운드인 것도 이 영향이다.

 

그러다 매번 무게를 재는 일도 번거로워졌다. 결국 금과 은은 바 형태로 거래되다가, 이후에는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동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주조화폐는 국가에서 품질과 발행량을 조절하며 쓰이기 시작했다. 주조화폐가 전 세계 통화량을 크게 늘리면서 자본주의가 번성하게 됐다. 그러나 각국에서 주조화폐의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액면가보다 적은 주조화폐를 대량으로 발행하며 전 세계적으로 화폐가치가 하락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금본위제도=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제도가 금본위제도다. 금본위제도는 금을 가치척도로 해 일정량의 금을 본위화폐로 하는 제도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금은 가장 중요한 화폐수단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모든 국가의 통화는 금에 고정돼 있었으며 금을 기준으로 가격이 매겨졌다. 말 그대로 금이 세계화폐의 중심이 되는 체제였다.

 

1816년 영국이 최초로 금본위제도를 채택하며 영국의 통화가 가장 먼저 금을 대신한다. 영국 중앙은행이 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이를 파운드로 바꿔주는 제도를 실시한 것이다. 영국 파운드화는 세계무역의 60%를 장악하며, 런던 금융시장이 전 세계 투자의 절반을 소화했다. 다른 국가의 통화는 금을 대신할 수 없어 당시에는 파운드화만이 금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금본위제도 하에서 은행은 금을 받았고 이를 대출 재원으로 활용했다. 전 세계에서 금을 화폐처럼 사용하며 은행거래도 금으로 했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44개국 대표 730명이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의 한 호텔에 모여 근대 역사상 첫 통화정책 조절을 위한 국가협약을 맺는다. ‘브레튼우즈 체제’다. 이를 통해 금의 대리인이 파운드가 아니라 달러로 바뀌며, 달러중심 금환본위제가 성립된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그러나 영국중심의 금본위제도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위기를 맞는다. 각국에서 전쟁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마구 찍어댄 탓이다. 급기야 영국은 1914년 금본위제도를 포기하며, 1931년에 파운드화를 가져와도 바꿔줄 금이 없다고 선언했다. 이때 미국은 마찬가지로 금본위제도를 포기했으나,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금본위제도를 선언했다. 달러를 가져오면 금으로 바꿔주겠다는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44개국 대표 730명이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의 한 호텔에 모여 회의 끝에 근대 역사상 첫 통화정책 조절을 위한 국가협약을 맺는다. 이를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부른다. 당시 미국은 세계 금의 약 80%를 지니고 있었고, 브레튼우즈 체제에 서명한 국가들은 미국의 지급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 미국 달러는 금 1온스(oz, 1oz=28.349523g)35달러로 고정됐고, 다른 주요 통화들은 고정환율로 달러에 고정됐다. , 금의 대리인이 파운드가 아니라 달러로 바뀌며 달러중심 금환본위제가 성립된 것이다.

 

물물금태환정지=안정을 찾은 듯했던 국제통화질서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면서 붕괴됐다. 미국이 막대한 전쟁비용을 지출하자 미국의 달러가치에 불신을 갖고 있던 국가들이 연달아 달러와 금의 교환을 요구한 것이다. 결국 미국의 금 보유량은 바닥을 보이게 된다. 미국도 어마어마한 부채와 재정적자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진 것이다.

 

19718월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달러와 금을 교환하는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며, 사실상 금본위제도가 폐지됐다. 이때부터 화폐와 금의 관계가 끊어지고 신용화폐의 시대가 열린다.

 

신용화폐는 금처럼 실물가치와 연계되지 않으면서 정부의 신용을 근거로 유통되는 화폐를 일컫는다. 따라서 국가의 경제가 흔들릴 때 국가의 통화가치도 떨어진다. 실물 근거가 요구되지 않으므로 정부는 마음껏 화폐를 찍어낼 수 있게 됐고 동시에 통화를 관리하기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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