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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경제, 양보다 분배 동반한 질적 변화 필요하다

재벌공화국·미국형 성장모델…계층간 소득불평등 심화·가속화 

기사입력2019-01-12 05:00
김영규 객원 기자 (hjlee1000@gmail.com) 다른기사보기
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문재인 정부는 올해 우리경제가 역점을 둬야 하는 것은 ‘성장’이지 ‘분배’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지난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확인했듯, 대통령은 ‘혁신’ 성장이 ‘고통분담’의 분배보다 더 경제를 살릴 것으로 믿고 있다. 지난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경질할 때부터, 이미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親기업정책 추진에 올인하기로 결정했다. 지난주 한국의 거시경제 분석에서 확인했듯, 투자확대가 성장률을 끌어올린다는 생각을 굳힌 것 같다.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민간소비 비중은 계속 줄어든 반면 기업투자 비중은 매년 늘었다. 이는 경제성장률이 3%대를 넘지 못하는 수준임을 파악한 정부가 내민 고육지책임이 분명하다. 국내외에서 예측하듯, 올해의 성장률은 2.6%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를 늘리는 성장정책을 추진할 경우 반드시 치러야 하는 비용이 문제다. 그 비용은 공동체 유지·존속을 위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소득분배 및 형평이란 가치의 훼손이다. 경제에서 성장은 양적 변화를 가리키지만 분배는 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국가별로 분석해 보면, 후진·신흥 시장일수록 성장을 높이기 위한 경제의 양적 팽창에 치중한다. 그러나 선진경제를 지향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일수록 성장보다 분배에 치중하는 정책을 채택한다. 

성장률처럼 분배 형평의 정도를 진단하는 지표는 어떤 것이 자주 인용되고 있는가? 종래에는 주로 지니계수(Gini coefficient)라는 소득분배에 관한 전체적 상황을 측정하는 일반적 지표를 이용했다. 그러나 금세기 들어 사회계층간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지자, 소득계층간 분배의 격차를 알아보는 소득배율(income share ratio)이 널리 이용된다(김영규, 자본주의 경제학, 2004년, 64~70쪽 참조). 

사회계층간 소득배율은 흔히 소득격차지표라고도 불린다. 이는 모든 가계의 소득수준을 최하위에서부터 최상위까지 모두 나열하고, 이를 순서에 따라 20%씩 그룹으로 묶어(5분위배율) 그룹별 총소득규모를 서로 비교한다. 특히 소득이 최상위인 5분위그룹과 최하위인 1분위그룹 간 소득격차를 비교하면 소득불평등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구체적인 방식으론 최상위 5분위에 속하는 가계 총소득을 최하위 1분위가계 총소득으로 나눈 값이 이용되고, 그 값이 클수록 소득분배가 공평하지 못한 구조임을 나타낸다.

OECD가 발표한 2015년 한국의 소득 5분위배율(처분가능소득 기준)은 5.1이다. 한국의 최상위 5분위소득이 1분위소득보다 5.1배 많다는 의미다. 같은해 미국의 소득 5분위배율은 8.5, 일본이 6.2로 한국보다 높은 반면 독일 4.5, 프랑스 4.3, 스웨덴은 4.1로 한국보다 낮다. 그런데 한국의 2018년 3분기 소득 5분위배율이 5.52로 껑충 뛰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고, 2015년의 일본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소득격차가 커졌다. 한국사회 계층간 소득불평등이 극심해지고, 그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19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소득분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앞서 소득 5분위배율을 언급한 국가들에서 소득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들 국가의 경제체제가 미국형이냐, 유럽형이냐에 따라 소득불평등의 정도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유럽의 대표격인 독일·프랑스·스웨덴은 유럽형이고, 일본·한국은 미국형이다. 특히 미국형에서도 자본주의 경제운용 역사가 긴 국가일수록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간 즉, 있는 자와 없는 자 간 소득격차가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이 소득격차를 해소하고 분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형 성장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 유럽형 경제모델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형에서 유럽형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최대의 복병이 바로 재벌의 경제 독과점체제다. 과거에는 10대 재벌이란 말이 유행했지만, 지금은 경제력 집중이 보다 심화돼 ‘5대 초재벌과 50대 준재벌’이란 말이 유행한다. 이런 상황은 재벌이 소수의 전문업종(기업)으로 사업을 집중, 재벌의 영향력이 경제 및 사회 전체로 보다 확대·강화되는 경향임을 말해준다. 한국을 재벌공화국(Chaebol Republic)이라 부르는데는 그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잠시 재벌이 핵심 전략으로 치중하는 산업분야의 영업이익을 확인해 보자. 지난해 말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상위 20개 대기업(금융권 제외)의 2018년 영업이익 전망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영업이익이 가장 높은 상위 5개사는 5대 초재벌 계열기업이 차지했다. 1위인 삼성전자에 이어 SK하이닉스, SK, POSCO, LG전자 순이다. 또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4분기 잠정실적이 반도체업계 불황으로 10조원대로 줄었음에도, 올해 영업이익 총액은 62조6000억원에 달했다. 

SK하이닉스 영업이익 또한 만만치 않은 규모로 22조2000억원에 이르고, 이어 SK(6조2000억원), POSCO(5조6000억원), LG전자(3조1000억원), SK이노베이션(3조원), 현대차(2조8000억원)가 뒤따른다. 그리고 나머지 13개 대기업은 각각 2조원에서 1조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에프앤가이드가 전망한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62조원)은 삼성전자를 포함 20개 재벌기업 영업이익 모두를 합친 금액(128조원)의 절반에 달한다. 재벌공화국 속에 특별한 삼성공화국이 존재하는 셈이다. 

재벌기업 계열사의 영업이익 분석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독과점체제의 집착은 전적으로 양적 변화인 성장을 지향하는 미국형 경제성장 모델이다. 질적 변화인 분배를 도외시한 미국형 경제성장 모델은 지속가능한 성장에 역행해 계층간 소득불평등을 가속화시켰다. 

실제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을 겪은 후, 시장경제의 독과점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산업·금융 분야 모두에 걸쳐 反트러스트법 등 독점규제정책을 강력히 시행했다. 하지만 미국정부가 아무리 강도 높은 규제책을 내놓더라도, 미국형 경제성장 모델에서는 태생적으로 기업의 영업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한편 사적소유권을 거의 절대적으로 보호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미국이 독과점자본 총수의 지분을 분산하는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독과점자본의 자산총액이 줄어들지 않고 꾸준히 늘어났던 이유다. 

구미제국 독점자본의 형성과 성장의 역사를 답습한 일본도 독점재벌을 육성했지만, 2차대전 패전 후 미군정에 의해 재벌이 해체됐다. 그럼에도 일본경제에서 차지하는 재벌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한국경제의 미래를 미국·일본과 같이 만들어갈 것인가. 소득분배의 격차를 최악으로 치닫게 만드는 재벌체제를 앞으로도 유지할 것인지 심각하게 자문해야 할 때다. 재벌체제 폐지는 물론이고, 소득양극화에 따른 부익부빈익빈 심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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