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이코노미

중견·중소기업 소상공인 매체
2019/02/18(월) 20:38 편집

주요메뉴

중기비즈니스지원단
메일 페이스북 트위터 프린트
오피니언키워드이슈

노동과 무위(無爲)의 왕복…자본주의를 비틀다

시적이고 정치적으로 걸어 다니는 예술가 ‘프란시스 알리스’ 

기사입력2019-01-14 15:35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강아지 모양의 바퀴 달린 장난감을 마치 애완견과 산책하듯이 끌고 도시를 어슬렁거렸던 이가 있다. 그는 작은 페인팅 통에 구멍을 뚫어 페인트를 흘리면서 도시를 누비기도 했고, 자신이 입은 스웨터 올이 다 풀리도록 도시를 배회하기도 했다. 심지어 장전된 권총을 들고 거리 이곳 저곳을 다니기도 했다. 어느 날은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밀며 거리에서 낑낑거리기도 했고, 비 오는 날 폭스바겐 자동차를 밀고 다니며 다른 차들과 위험천만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을 했던 작가가 바로 시적인 작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 1959~). 그렇다면 헤매기, 어슬렁거리기, 배회하기, 낑낑대기, 위협하기(권총), 위험하게 다니기(폭스바겐)가 과연 어떻게 예술작품이 됐을까?

 

걷는 것도 예술이다=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걷기의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산 지향적 문화에서 생각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기는 어렵다. 아무것도 안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뭔가 하는 척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 것이다.”

 

걷는 것, 어슬렁거리는 것, 배회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뭔가 하는 척하기에 무척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걷는 것을 작업으로 끌고 온 프란시스 알리스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예술을 하는 척하는 것일까?

 

프란시스 알리스는 강아지 모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엉성한, 바퀴 달린 자석 조형물을 끌고 거리를 누볐다. ‘수집가(The Collector)’, 1990~1992, 퍼포먼스<출처=collectiana.org>
그렇지만 그의 작업을 보면 사실 그냥 걷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뭔가를 하면서 걷는다.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안 한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고 뭔가 굉장한 것을 한다고 볼 수도 없다. 권총을 들고 다니거나 얼음 덩어리를 밀며 다닌 것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했다고 하기도 모호하다. 이것이 알리스 작업의 특징이다. 뭔가 하는 듯하면서도 하지 않는 듯한, ‘노동과 무위(無爲) 사이를 왕복하는 작업.

 

알리스가 했던 소소한 일들을 떠올려보면 이렇다. 그가 본격적으로 걷기를 작업으로 선보인 것은 수집가(The Collector)’(1990~1992)였다. 그는 강아지 모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엉성한, 바퀴 달린 자석 조형물을 끌고 거리를 누볐다. 이 강아지 모양의 자석 조형물은 자신이 가진 자력을 발휘해 거리에 널려 있는 쇠붙이를 끌어모아 점점 쓰레기 뭉치로 변해갔다. 떠올려보라, 키가 큰 마른 몸집의 백인이 쓰레기 같은 것을 애완견인 양 끌고 다니는 모습을.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비슷한 시기에 자석을 덧댄 신발을 신고 쿠바의 하바나 거리를 걸었던 자석 신발(Magnetic Shoes)’(1994)이라는 작업도 있다. 이것은 수집가의 연장선에 있는 퍼포먼스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스웨터의 한 올을 풀어놓고 걸어 다닐수록 스웨터 올이 풀리는 것을 보여준 퍼포먼스도 있다. ‘동화(Fairy Tales)’(1995/1998)라는 이 퍼포먼스는 걷는 행위가 가져오는 노동력의 상실을 보여준다.

 

즉 스웨터를 짜기 위해 들어간 노동력이 걷기로 사라져가는 것이다. 이 퍼포먼스 영상에서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걷다가 뒤돌아서 실을 되감으며 되돌아가게 되는데, 그 때 풀린 털실을 집에 가지고 가려고 그 털실을 감으면서 따라오던 할머니와 마주치는 우스운 상황이다.

 

또 다른 소소한 걷기 작업으로는, 페인트 통에 구멍을 뚫어 페인트를 흘리면서 도시를 걸었던 퍼포먼스 흘리기(The Leak)’(1995)를 들 수 있다. 알리스는 잭슨폴록 마냥 페인트를 흘리면서 걸었다.

 

녹색 페인트 통에 구멍을 뚫어 페인트를 흘리며 걷는,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는 행위지만, 알리스가 녹색선을 만들며 걸었던 길은 1947년에서 1948년 사이 벌어진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인접 국가들이 정전 협상하면서 이스라엘 대표가 지도 위에 그리고 확정한 잠정적 경계선(휴전선)이었다. ‘녹색선(Green Line)’, 2004, 퍼포먼스 영상<출처=antiatlas.net>
시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될 때=그런데 흘리기는 이후에 알리스가 보여준 녹색선(Green Line)’(2004)의 프로토타입(prototype)으로 보인다. 사실 알리스의 걷기 작업을 마냥 소소하게만 볼 수 없다. 그의 걷기 작업 중에는 그 자체로 내재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작업도 다수 있기 때문이다.

 

녹색선은 가장 뚜렷한 정치적인 작업으로, 그 행위 자체가 위험할 수 있는 행위였다. 이 퍼포먼스는 녹색 페인트 통에 구멍을 뚫어 페인트를 흘리며 걷는,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는 행위지만, 그가 녹색선을 만들며 걸었던 길의 의미를 알면 달라진다. 그가 걸었던 길은 1947년에서 1948년 사이 벌어진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인접 국가들이 정전 협상하면서 이스라엘 대표가 지도 위에 그리고 확정한 잠정적 경계선(휴전선)이었다.

 

이곳은 정치, 종교, 군사적 긴장감이 팽배한 곳이다. 알리스가 하는 행위는 분쟁 상황에 개입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정치적이면서 위험한 행위다. 이 작업은 그가 지향하는 예술의 모습을 알려준다. 이 작업의 또 다른 제목은 때로는 시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되고, 때로는 정치적인 것이 시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그의 지향점을 암시한다. 더불어 그의 작업을 시적이며 정치적인 성격으로 규정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어떤 걷기 퍼포먼스는 너무 위험해서 경찰에 체포된 사례도 있다. 바로 -제정(Reenactment)’(2001) 작업이다. ‘녹색선이 외부에서 알리스에게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는 상황이 있었다면, ‘-제정은 알리스가 외부에 위험성을 가하는 방식의 걷기 퍼포먼스였다. 이 작업에서 알리스는 총기 가게에서 9mm 베레타(Beretta) 권총을 사서 장전한 후, 그 총을 들고 멕시코시티 거리를 거닐며 주변 사람들에게 잠재적 위협을 가했다. 이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에서 작가가 든 권총과 주변의 일반 시민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신고받은 경찰이 알리스를 체포할 때까지 진행된 이 행위는 멕시코에서 총기 구매가 얼마나 쉽고, 그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위험함에 더해 작가의 수고까지 들어가는 작업도 있는데, ‘VM비틀(VM Beetle)’(2003)이 그 대표적인 퍼포먼스다.

 

녹아서 없어지면 아무것도 아닐, 얼음 덩어리를 밀고 다니는 이 무의미한 행위를 알리스는 근 아홉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행했다. 비생산적 노동을 통해 생산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틀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실행의 역설 I(Paradox of Praxis I)’, 1997, 퍼포먼스 영상<출처=www.nytimes.com>
알리스는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독일의 국민 자동차인 폭스바겐 VM비틀을 손으로 밀면서 아슬아슬하게 도로를 지나가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주변의 차들은 알리스의 이 행동 때문에 경적을 울리기도 하고, 아슬아슬하게 알리스의 옆으로 지나가기도 한다. 이 단순한 자동차 밀기는 작가의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나 작가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는 자동차에서 보이는 잠재적 위협으로 인해 -제정과 유사하게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알리스는 자동차만 밀며 걸었던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를 끌거나 밀면서 다녔는데, 아마도그의 밀며 걷기 작업 중 가장 힘들었던 작업이 커다란 직육면체의 얼음 덩어리를 밀며 거리를 누볐던 퍼포먼스 일 것이다.

 

만약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쉬지 않고 얼음 덩어리를 밀고다닌다고 생각해보라. 녹아서 없어지면 아무것도 아닐 이 무의미한 행위를 알리스는 근 아홉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행했다. ‘실행의 역설 I(Paradox of Praxis I)’(1997)이라는 이 퍼포먼스를 그가 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부제가 때로는 무엇인가 만드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기도 한다(Sometimes Making Something Leads to Nothing)’인데, 비생산적 노동을 통해 생산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틀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당연히 알리스의 작업이 걷기 작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형태의 퍼포먼스도 있고, 드로잉이나 설치 작업도 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이 지닌 성격은 걷기 퍼포먼스에서 잘 드러난다. 그에게 걷기는 대단히 시적이면서 정치적 행위다. 알리스는 오늘도 어딘가를 걷고 있을것이다. 우리도 오늘 어딘가를 걸어갈 것이다. 시적으로, 때론 정치적으로.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top

객원전문 기자칼럼

 
  • 기업법률
  • 프랜차이즈
  • 공정경제
  • 법률산책
  • 생활세무
  • 세금이야기
  • 인사급여
  • 4대보험
  • 노동정책
  • 판례리뷰
  • 이제IP
  • 무역실무
  • 알쓸신법
  • 부동산
  • 금융경제
  • 세상이야기
  • 가족여행
  • 예술만세
  • 작가노트
  • 현대미술
  • 시민경제
  • 무역물류
  • 이웃사람
  • 가맹거래
  • 미국문화
  • 중국상인
  • 블록체인
  • 신경제
  • 다른 세상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