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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이 명관…영어는 신앙, 국어는 역사적 배경

Christianity ④devil, like a (wo)man possessed 

기사입력2019-02-01 12:50
이창봉 객원 기자 (cblee@catholic.ac.kr) 다른기사보기

이창봉 교수(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이번 글에서는 악마(devil)와 관련된 표현을 집중 분석해 본다. 악마(devil)는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믿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악령(the most powerful evil spirit in Christianity)이다. 미국인들이 devil의 뜻을 은유적으로 확대해 쓰는 표현들 중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유익한 표현 세가지가 있다.

 

첫 번째 것은 ‘better the devil you know (than the devil you don't)’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it is better to deal with someone you already know, even if you don't really like him or her, than someone new that might be worse(더 나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보다 마음에 다 들지 않더라도 익숙하게 알던 사람과 일하는 것이 낫다)’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널리 쓰인다. 우리 한국어에서도 널리 쓰이는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표현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미국영어에서는 검증이 안 된 새로 알게 된 사람보다는 다소 흠이 있더라도 자신이 잘 알던 사람과 일하는 것이 낫다는 상황적 뜻을 익숙한 악마에 적응해 지내는 것이 예측불허의 더 나쁜 악마를 만나는 것보다는 낫다는 식의 그리스도교 신앙이 깔린 은유 표현으로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어 문화권에서는 탐관오리의 부패와 만행에 시달려온 역사적 배경 때문에 같은 상황을 관리의 교체 상황과 관련해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대조적이다.

 

직장생활에 있어서 상사(boss)를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평소에 흉을 많이 보던 상사가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는데, 기대와 달리 더 악랄한 사람이(미국인들은 속어로 이런 사람을 jerk라고 잘 부른다) 왔을 때 이 표현을 써서 다음과 같이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다.

 

The new boss is a complete jerk~! Better the devil you know~!!! I can't believe I'm missing the former boss.

 

우리는 일상에서 평소에 비호감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일부 장점이나 좋은 일을 한 것 등을 인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표현이 바로 ‘give the devil his/her due’ 표현이다. 이 표현은 ‘to acknowledge the positive qualities or achievement of a person who is unpleasant or disliked(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긍정적인 면이나 업적을 인정하다)’의 뜻으로 널리 쓰인다.

 

예를 들어 미국 내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Donald Trump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근본적으로는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 일에 대해서는 그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Trump 비판자에게 이와 같은 취지의 의견을 이 표현을 써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I know you hate Trump, but give the devil his due. He's made significant progress in dealing with the North Korea nuclear crisis.

 

미국영어에서는 검증이 안 된 새로 알게 된 사람보다는 다소 흠이 있더라도 자신이 잘 알던 사람과 일하는 것이 낫다는 상황적 뜻을, 익숙한 악마(devil)에 적응해 지내는 것이 예측불허의 더 나쁜 악마를 만나는 것보다는 낫다는 식의 은유 표현을 쓴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일상에서 어떤 사람이 별 것도 아닌 것을 트집을 잡아서 비난과 비판을 하면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난과 비판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크게 문제가 없어도 어떤 식으로든 논쟁과 토론을 이어가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그런 의견을 제기하는 상황도 있게 마련이다.

 

이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표현이 바로 ‘to play the devil’s advocate‘이다. 이 표현은 ’to pretend that you disagree with someone or something so that there will be some discussion about it(어떤 일이나 사람에게 동의하지 않는 척을 함으로써 논쟁을 이어가는 역할을 하다)’의 뜻으로 미국 사회에서 매우 널리 쓰인다.

 

예를 들어 학회 같은 곳에서 누군가 거의 비판할 것이 없을 정도로 매우 훌륭한 논문을 발표했을 때 그래도 논쟁을 이어가는 역할을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Your presentation is almost perfect. But, to play the devil's advocate here, I'd like to make one minor critical comment.

 

미국영어에서 devilhell과 마찬가지로 반어법으로 잘 쓰여서 좋은 뜻을 강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잘 쓴다. 예를 들어 미국 사람들은 어린 아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울 때 그 아이를 little devil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devil이라는 용어의 본래 의미 때문에 공격적(offensive)인 느낌이 든다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이 표현은 자기 자신의 아이에게만 상황적으로 매우 적절할 때에만 주의를 기울여서 써야 한다.

 

devil 같은 악령(evil spirits)에 사로잡힌 상황을 영어에서는 동사 possess를 수동태로 써서 ‘be possessed with an evil spirit(악령이 들다)’ 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국영어에서 어떤 사람이 믿어지기 힘들 정도로 어떤 일을 연이어 잘 했을 때의 상황을 반어법으로 ‘like a (wo)man possessed’라고 흔히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 잘 쓰는데 예를 들어 미식축구(American football) 경기에서 running back이 뛰어난 스피드와 돌파 능력으로 touchdown4개나 기록하는 신들린 경기력을 보여줬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He played like a man possessed. He scored 4 touchdowns. Unbelievable~!!!

 

위에서 한국어로 신들린이라는 용어를 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어 표현과 가장 가까운 한국어 은유 표현이 바로 신들린이다. 이 한국어 표현은 무교 신앙(Shamanism)의 영향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흔히 굿을 하는 무당이 신을 불러들이기 위해 미친 듯이 춤과 노래를 하는 것을 보고 신들렸다고 하는데, 이 뜻이 은유적으로 확장돼 어떤 이가 대단한 일을 해내는 것을 보고 신들린 듯이 ~ 했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축구(soccer) 경기 중 골키퍼가 연속적으로 거의 골이 들어갈 뻔한 슛을 막아냈을 때 신들린 방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언어문화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미국영어문화권과 한국어문화권에서 모두 믿어지기 힘들 정도로 어떤 일을 연이어 잘 했을 때의 상황을 신이나 악령 같은 영적인 존재에 정신을 뺏긴 무아의 경지로 공통적으로 표현하는 보편성을 보게 된다.

 

그러나 미국문화권에서는 그리스도교 영향으로 그것을 ‘like a (wo)man possessed’라고 표현하는 반면 한국어문화권에서는 같은 상황을 무교(Shamanism) 역사의 영향으로 신들린 듯이라고 표현하는, 각 문화권의 사상적 뿌리가 다른 차이를 반영한 대조적인 다양성도 동시에 보게 된다. 이 예는 언어가 문화와 역사의 거울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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