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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운송에서 생긴 흠집…우리 세상을 말하다

덕지덕지 붙은 스티커, 명세서…작품배송이 지닌 미학과 정치학㊦ 

기사입력2019-02-06 1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Transparency’ 연작이 감시체제가 강화된 여행의 특성을 드러낸다면, ‘FedEx’ 연작은 작품의 운송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FedEx는 페더럴 익스프레스(Federal Express)의 약자로, 미국의 운송업체다. 이 기업은 세계 최대의 항공 특송업체로 최대의 항공운항 노선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매일 220개국이 넘는 지역에 화물들을 배달하고 있다.

 

페덱스(FedEx)의 미학=베시티는 고강도 유리나 구리로 만든 빈 상자를 이 국제 운송업체를 통해서 전시장으로 발송하는데, 이 상자는 운송과정에서 운송장 스티커, 명세서, 수신자 서명서 등이 덕지덕지 붙게 된다. 유리상자의 경우, FedEx 배송상자에 딱 맞는 크기로 제작해 그 배송상자에 넣어서 발송되고, 구리상자는 FedEx가 지정한 크기에 맞게 제작돼 겉포장 없이 발송된다.

 

이로 인해 유리상자는 그것을 감싸고 있는 FedEx 배송상자에 배송 관련 문서들이 붙게 되고, 구리상자는 그 자체에 이러한 문서들이 붙게 된다. 구리는 손이 닿으면 그 부분이 산화돼 자국이 남기 때문에, 구리상자는 운송과정 중 운송자들이 그 상자를 들었던 부분에 그들의 지문이 거무스레하게 남게 된다.

 

월리드 베시티, ‘FedEx® Large Box, LA to NYC’, 2007. 45.72×31.75×8.89cm<출처=www.artnet.com>
이 흔적은 운송자의 행위를 명확히 인식하게 한다. 반면, 유리작품은 배송상자가 겉을 감싸고 있어서 운송자의 직접적인 접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운송자들의 신체적 흔적이 묻어 있지 않다. 하지만 충격을 가하면 깨지는 유리의 특징은 운송 중 발생하는 충격을 그대로 기록한다

 

고강도 유리를 사용하지만, 완충재로 보호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듭되는 선적은 여러 차례 충격을 주고 유리에 균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균열은 고스란히 전시장에 전시됨으로써 작품 운송의 민낯을 드러낸다. 이렇게 ‘FedEx’ 연작은 전시장에서 완성된다.

 

게임의 규칙=월리드 베시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게임은 특정한 결과로 구성되지 않는다. 게임은 사용된 규칙에 의해 구성된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결과가 아니라, 이 모든 규칙이 서로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일련의 관계를 맺을 것인가이다.”

 

그는 작품이라는 특정 물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것을 만드는 시스템, 다시 말해 게임의 규칙에 더 집중한다. 작가는 이 게임의 규칙을 통해 미술운송의 숨은 노동과 국제운송이 가진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다.

 

월리드 베시티, ‘FedEx® Large Box, LA to NYC’, 2007. 45.72×31.75×8.89cm<출처=www.artnet.com>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성능 X선을 통과해야 한다는 규칙이 적용된 ‘Transparency’ 연작은 감시체제가 강화된 여행의 특성을 함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FedEx’ 연작은 운송의 과정뿐만 아니라, 운송업체가 독점하고 있는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물품을 포장한 FedEx 상자의 디자인은 그 운송업체에 저작권이 있다.

 

하지만 과연 공간까지 기업이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가? 운송 물품은 SSCC#과 직렬 해운 컨테이너 코드를 통해 식별된다. FedEx는 식별의 편이성을 위해 크기를 규격화한다

 

베시티는 FedEx가 요구하는 지정한 크기로 작품을 제작해 발송함으로써 작품을 몇 가지 크기로 균질화한다. 이 균질화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운송업체가 크기까지 소유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지 않겠는가. 규격화는 공간의 양까지 기업이 소유권을 행사하는 모습이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크기까지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에 놓여 있는 베티시의 작품에 새겨진 흠집들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운송을 잘못해서 훼손된 단순한 사각형 물체처럼 보인다. 그저 어쩌다가 잘못 인화된 추상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손상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담겨 있다. 그 흠집들은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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