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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옥만당(金玉滿堂)이면 행복한 것인가?

숫돌에 계속 칼을 갈면, 날이 다 닳아 그 칼은 쓸 수 없다 

기사입력2019-03-04 10:44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노자(老子)의 도가(道家)사상에서 말하는 무위(無爲)가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되는 세상만물의 이치를 어기면서까지 억지로 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라 했다. 

노자가 살았던 시대는 중국 경제발전사에서 청동기시대를 지나 철기시대에 막 들어서면서, 농업생산량이 증대되고 돈과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과 그렇지 못한 피지배계급으로 나뉘던 때였다. 당시 지배계급은 기득권을 지키고 영토를 넓히려는 욕심에,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여 많은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자는 무위자연 사상을 통해 세상의 권력과 이익에 탐닉하는 것을 바로잡고자 했다. 결국 노자는 나라가 쇠락하자 왕실 도서관인 장서실(藏書實) 사관(史官)의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등져야만 했다. 

보배를 의미하는 보(寶)자에는 집을 뜻하는 ‘면(宀)’자 아래에 구슬 옥(玉), 오지그릇 부(缶), 조개 패(貝)가 있다. 이것을 보면 옛날 중국에서는 금보다 더욱 귀하게 여겼던 옥과 화폐로 쓰던 조개껍질 그리고 그릇을 집안 가득 채워두는 것을 보배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종종 쓰는 고사성어 가운데 금옥만당(金玉滿堂)이라는 말이 있다. 금이나 옥이 집안에 가득하다는 뜻인데, 금이나 옥과 같이 귀한 보석으로 만든 단추 모양의 고리를 관에 장식한 높은 벼슬아치가 집안에 가득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금옥만당이라는 말에는 집안에 금은보화가 가득한 부자가 되거나 높은 벼슬아치에 오른 자식이 집안에 한가득 있으면, 참으로 행복할 것이라는 보통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풀이는 다분히 공자의 유가(儒家)적인 이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가에서 군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이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여겼다. 열심히 배우고 익혀 세상에 나아가 높은 벼슬아치가 되고 집안을 잘 건사해,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 정치를 올바르게 이끄는 게 군자의 도리란 말이다. 

그렇지만 금옥만당은 유가의 경전에 나오는 말이 아니라, 그와 상반되는 사상을 내세운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제9장에 나오는 글귀의 일부이다.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득 채우려는 것은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 칼을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들면 오래 가지 못한다. 금과 옥이 집안에 가득하다면 그것을 지킬 수 없다. 부귀하여 교만해지면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공을 이루었으면 그만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金玉萬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也.)”

노자는 재물을 가질 만큼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고 더욱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했다. 그릇 안에 무엇인가 가득 차 있다면, 거기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담을 수 없으니 이제는 더 이상 그릇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칼을 벼리기 위해 숫돌에 계속 갈아 더욱 날카롭게만 하려 한다면, 날이 다 닳아 결국에는 그 칼을 쓸 수 없게 된다. 이렇듯 재물도 필요한 것보다 지나치게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탈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안에 금이나 옥 같은 보물을 가득 채워 두고 있으면 집안에 도둑이 들어 훔쳐갈까 염려해 외출도 하지 못할 수 있다. 때로는 누가 집의 재물을 훔쳐갈까 싶어 걱정 끝에 병이 날 수도 있다. 집에 몰래 들어온 도둑에게 몸을 다칠 수도 있으니, 이때 금옥과 같은 보물은 오히려 사람에게 화를 불러오는 근원이란 말이다.   

호남성 장사(長沙)역 안에 세운 캐릭터. 지게에 보물을 잔뜩 지고 부자가 되었다는 것에 한껏 기분이 좋아 활짝 웃는 모습이다. 오늘날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의 공공장소에서 이처럼 부자가 되기를 기원하는 상징물을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사진=문승용박사>
어느 날 거지 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가는데, 어느 부잣집에 불이 크게 나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게 됐다. 이때 거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미소를 띤 얼굴로 말하기를 “얘야 우리는 집이 없으니, 저 사람들처럼 불이 나서 다칠 일도 없고 손해 볼 재산도 없으니 얼마나 행복하냐? 너는 저렇게 허둥댈 일도 없으니 좋은 아비를 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라 했다고 한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을 이 우스갯소리는 노자의 도가사상에 나타난 경제관을 비유한 이야기다. 여기에서 노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 재산도 없는 거지가 되라는 게 아니라, 거짓과 무리한 방법을 통해서 부자가 되느니 아예 가난한 채로 사는 게 오히려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물질만능의 자본주의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노자의 이러한 경제관은 가난을 희화적으로 말한 것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노자는 『도덕경』의 마무리 부분인 80장에서 이상적인 사회의 조건이 영토가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들이 사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이라 했다. 이런 나라에서 갑옷이나 무기와 같이 남들을 해치는 물건은 아예 만들지도 않고, 문명사회의 이로운 기구라고 할 수 있는 배와 수레 같은 탈것도 이용하지 않고, 평소에 먹는 음식을 그저 맛나게 먹을 줄 알고, 자신들이 지금 살고 있는 거처를 편안히 여기며 소박한 삶을 즐거워하면서 평생토록 멀리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서 늙어 죽을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세상이라 했다. 

이쯤 되면 노자의 이상사회는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냐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제 노자가 말하는 그런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문명화된 사회를 이루고 살고 있으니, 노자가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냐며 귓등으로 흘려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물질적인 풍요로움이나 경제적인 효율성에 집착하는 오늘날과 같은 물신주의 사회에서 재물이 사람들에게 많은 이로움과 편리함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수준이 일정 정도를 벗어나면 어느 순간 그것이 거꾸로 해로운 독소로 변해 인간이 타고나는 착한 심성을 해치고 사회를 온통 어지럽게 하고 말 것이란 점을, 약 2500년 전에 살았던 노자가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일깨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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