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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시장만능 폐기하고 평등한 경제체제 만들어야

부자·대기업에겐 증세, 서민·중산층에겐 소득증대책이 필요하다 

기사입력2019-03-11 12:47
김영규 객원 기자 (hjlee1000@gmail.com) 다른기사보기
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미국이 선도하면서, 당시 선진경제인 영국과 일본이 공조해 만들었다. 이어 세계 중·후진 경제도 자국 정권의 안정을 위해 자의 혹은 초국적 자본의 위력에 눌려 신자유주의 대열에 가담했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는 당시 주류였던 국가주도 정책기조, 케인스주의처럼 모든 경제 분야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신자유주의는 그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세계 곳곳에서 혼란을 불러왔다. 의회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랐고, 거리에서도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집회가 계속됐다. 그리스와 아이슬란드의 경우 시민사회의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이 격렬해지면서 정권까지 교체시켰다. 4개월이 넘게 매주 토요일 파리 등 주요 도시 곳곳에서 진행되는 프랑스 ‘노란조끼’ 투쟁의 본질 역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이다. 마크롱 정권이 ‘작은 정부’와 재정긴축 등 신자유주의 전도사 역할을 자행하는 것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이다.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자유주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됐다. 1999년 11월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예정된 시애틀에서 전세계 80여개국 1300여개 단체에서 참여한 4만여명의 시위대가 집결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포문을 열었다. 1990년 경제학자 존 윌리암슨이 신자유주의를 ‘워싱턴 합의’라고 추켜 세운지 10년도 안된 시점에, ‘시애틀 반란’을 시작으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은 전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당시 시애틀 WTO 각료회의에서는 세계 남북교역관계 의제를 두고 담판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특히 세계의 투자은행과 다국적 자본이 그간 주도해 온 서비스무역의 자유화가 주요 과제였다. 이들 독점자본은 이미 민영화정책을 주도해 부를 축적했으며, 시애틀 회담을 통해 지금까지 정부가 관리해 온 수많은 공공서비스 부문을 사유화하려는 탐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시애틀에 집결한 4만여명의 시위대가 벌인 격렬한 투쟁은 WTO 각료회의를 원천 봉쇄해 좌절시켰다. 이로써 정부의 공공서비스를 사기업에게 넘기려는 다국적 독점자본의 시도는 무산됐다. 공공서비스 사유화에 따른 가계부담 증가와 소비여력 위축으로 귀결되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일정한 제동이 걸렸다. 

시애틀 반란이 WTO 회담을 무산시켰다는 소식이 언론을 타고 세계에 급파됐다. 그간 선진 8개국 정상회담(G8),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APEC) 등 국제기구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자신들의 핵심 업무로 다뤘다. 시애틀 반란 이후 이들 국제기구 회의가 진행된 10여개 국가 주요 도시에서는 신자유주의 반대집회가 연이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은 이제 국제사회의 대세가 아님이 증명되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2000년 10월20일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가 개최됐지만, 국제교역의 공정성 유지 외에 특별히 유의미한 결정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4개월이 넘게 매주 토요일 파리 등 주요 도시 곳곳에서 진행된 프랑스 ‘노란조끼’ 투쟁의 본질 역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이다. 마크롱 정권이 ‘작은 정부’와 재정긴축 등 신자유주의 전도사 역할을 자행하는 것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이다. 사진은 지난해 12월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제리제 거리에서 열린 노란조끼 6차 집회.<사진=뉴시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제동이 걸린 결정적 계기는 그 후 유럽에서 마련됐다. 시애틀 반란 2년 후 2001년 7월 제노바에서 개최됐던 G8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2001년 제노바 정상회담이 특히 세계의 주목을 끈 직접적인 이유는 유혈사태 때문이다. 당시 집회에 소수그룹으로 참가한 무정부주의 단체를 강제로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해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파이낸셜 타임즈 등 세계 언론들이 제노바 사태를 대대적으로 취재한 후, ‘포위당한 자본주의’라는 주제로 자본주의 반대운동의 심각성을 시리즈로 편성해 전세계에 알렸다.

제노바 유혈사태를 계기로 신자유주의 반대는 세계 곳곳에서 자본주의체제 반대로까지 확대됐다. 이후 G8 국가들은 자본주의체제 위기를 방치할 수 없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출발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이 유럽을 거쳐 아시아·중동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번지면서, 21세기 초 자본주의체제는 위기국면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마침내 미국에서 시장만능 신자유주의체제에 종지부를 찍는 커다란 위기가 발생한다. 2008년 미국발 전세계로 확산된 금융위기다. 그 시작은 그 해 9월, 글로벌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파산이다. 이어 유럽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파산하면서, 지난 30년간 금과옥조로 여겼던 금융자유화가 결국 무정부적 방종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로써 신자유주의는 그것의 시작과는 달리 어떤 공식적인 발표나 선언도 없이 침묵으로 종말을 맞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종말을 국제적으로 확인할 일종의 요식행위는 필요했다. 2008년 11월 워싱턴에 이어 12월 런던에서 개최된 선진 20개국 정상회담(G20)은 신자유주의가 세계경제의 주류가 될 수 없음을 확인시켜줬다. 여기에서 세계 금융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무역불균형을 개선하는 등 정부의 간섭을 복원시키는 대책이 논의됐다. 신자유주의 폐해로부터 무너진 세계의 금융과 산업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자는 게 대책의 핵심이다. 전후 금융자본으로 세계를 독점하고 농단해 온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새로운 경제질서가 만들어졌다. 

1980년대 이래 세계경제의 화두였던 신자유주의 종말을 보면서 한국경제의 미래와 관련해 반드시 짚어야 할 교훈이 있다. 우선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경제들이 주도했던 시장만능 자유주의가 다시는 지구상에 나타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종래 자유주의 담론이 강조해 온 성장위주 정책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에 한계가 있음이 역사적으로 분명해졌다.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공평한 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고용·복지 정책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한국경제의 과제로 대두됐다. 

신자유주의 종말 이후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당장 해야 할 일은 국가주도 정책의 쇄신과 적용이다. 시장에서 부자인 ‘있는 자’의 자유를 줄이되, 빈자인 ‘없는 자’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 부자와 대기업에 세금을 더 부과하고, 서민과 중산층의 소득은 늘려줘야 한다. 금융규제는 풀게 아니라 더욱 강화하고, 연금·보험 등 사회보장을 종래보다 더욱 확대하는 조치가 따라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시장만능 자유주의를 페기하고, 평등하고 인간답게 사는 새로운 질서와 체제를 만들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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