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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 사이 모니터로 볼수 있는 세계를 보여주다

현실세계 투영 매개체…한국 미디어아트의 개화, 박현기㊤ 

기사입력2019-05-05 09:00
김태현 미술평론가 (elizabeth0711@gmail.com) 다른기사보기

유튜버가 수많은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이 되었다고 한다. 최근 인기있는 유튜브 채널들의 특징적인 모습은, 일반인 자신들의 일상을 그대로 노출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거나 밥을 먹는, 그저 일상의 순간을 불특정 다수와 공유한다. 과거엔 그저 개인의 일상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콘텐츠로서 유튜브라는 새로운 미디어 수단에 의해 방송되고 있는 것이다.

 

‘무제’, 돌, 모니터 1개, 197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런 유튜버 가운데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얻은 이들은 기성 미디어 스타와 같이 대중들에게 화제가 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미디어 파워가 됐다.

 

이처럼 미디어는 오늘날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유튜브와 같은 개인 미디어의 부상은 유난히 미디어의 발달에 관심이 많은 대중과 그리고 이에 발맞춰 민감하게 반응한 선구자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미디어를 한국미술에 가장 처음 도입한 미술가는 누구일까?

 

새로운 미디어아트의 탄생=한국에서 최초로 미디어를 활용한 작품은 1969년 김구림의 ‘1/24초의 의미이다. 그러나 김구림은 전방위적으로 미술활동을 펼쳤기에 미디어 아티스트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미술가다.

 

미디어를 소재로 해 작품활동을 지속적으로 한 미술가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활동하며 상파울로 비엔날레파리 비엔날레를 비롯해 뉴욕 첼시의 킴 포스터 갤러리(Kim Foster Gallery)’까지 종횡무진했던 박현기가 있다.

 

그는 안타깝게도 지난 200059세의 나이로 미술가로서 원숙한 창작을 이어나갈 시기에 작고했다. 그러나 35년간의 창작활동 결과물은 그의 미술세계를 논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해 건축학과로 졸업을 했고, 대학졸업 후 귀향해 광거당에서 수학하며 한국적인 것에 대해 몰두했다. 이후 인테리어 사무소를 운영하며 이강소, 최병소, 김영진, 황현욱 등의 대구 미술인들과 함께 창작활동을 했으며, 그들과 함께 대구현대미술제를 이끌었던 주역이었다.

 

‘무제’, TV 수상기 3대, 돌, 비디오 테잎, 198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보이는 것과 볼 수 있는 것=유독 우리나라엔 돌을 사용해 표식을 해 놓은 것이 많다. 비석이나 각종 위인들의 돌상들을 비롯해, 공원 앞이나 유적지 앞에 장소의 이름이 적힌 돌 그리고 시골에 가면 성황당이라 불리는 나무 밑에 쌓인 돌탑들, 나아가 고인돌까지 정말 우리 주변에서는 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박현기는 이 돌들을 위로, 위태롭게 탑처럼 쌓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TV 모니터를 끼워 넣었고, 수상기에는 돌 사이에 끼워진 돌의 이미지를 출력해 탑을 완성시켰다.

 

박현기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보았던, 피난길에서 돌을 나르던 사람들의 무리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쌓아둔 돌무더기를 보며 박현기는 그곳이 신들의 무덤 같기도 하고 우리의 넋이 숨어있는 장소같이 보였다고도 했다. 박현기의 기억에서 돌은 신비한 존재였다.

 

그가 쌓은 돌탑 사이의 모니터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모니터 이전에 작업이 됐다고 하는 1978년의 돌탑은 돌들 사이에 투명한 돌을 제작해 끼워 넣었고 이후의 작품에서 모니터가 등장한 것이다. 투명한 돌에서 TV 수상기까지, 이러한 작품의 변화과정은 1974년 미국문화원에서 처음 접한 미디어 아트가 그의 시선으로 변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박현기의 미디어 아트는 서구문화에서 해석되는 미디어의 화려한 외관이 아니라 그저 현실세계를 그대로 투영하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상기에 보이는 모습은 왜곡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상기 바깥의 돌들과 안의 돌들이 함께 보이기에 쌓여있는 탑을 보고, 또 그렇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과정을 거친 박현기의 돌탑은 서구인들은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이라 해, 동양적이라고 불리며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물론 백남준의 작품들과도 또 다른 각도로 미디어를 해석하고 전달하고 있다.(중기이코노미 객원=김태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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