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이코노미

중견·중소기업 소상공인 매체
2019/06/19(수) 10:41 편집

주요메뉴

중기비즈니스지원단
메일 페이스북 트위터 프린트
라운지중국을 읽다

사회를 좀먹는 적폐세력 없애려는 정의로운 가치

군자는 정의를 세우고, 선비는 선한 마음 지켜야…공직자 깊이 새기길 

기사입력2019-05-20 10:36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공자(孔子)의 행적이나 논어에서 언급한 말들을 살펴보면, 공자는 사사로이 이익을 추구하는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학이(學而)’편에서 군자는 밥을 먹을 때 배부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君子食無求飽)”라고 했다. ‘위령공(衛靈公)’편에서는 공자와 제자들의 생활이 너무 궁핍해지자 자로(子路)가 화를 내며 군자도 이처럼 곤궁한 것인지 따지듯 묻자, 공자는 군자는 곤궁해도 잘 버텨내지만, 소인은 곤궁하면 방탕해진다(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라고 했고, “군자는 도를 도모하지 먹는 것을 도모하지 않으며,군자는 도를 걱정하지 가난해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君子謀道不謀食.君子憂道不憂貧)”라고 했다.

 

, ‘안연(顏淵)’편에서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자, 공자는 먹을 것을 풍족히 하여 주고, 병사를 튼튼히 하고,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도록 한다(足食, 足兵, 民信之矣)”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자공이 만약에 부득이하게 꼭 버려야 한다면 셋 가운데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하겠습니까?(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라고 묻자, 공자는 병사를 튼튼히 하는 것을 버려야 할 것이다(去兵.)”라고 했다. 자공이 만약에 부득이하게 꼭 버려야 한다면 둘 가운데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하겠습니까?(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라고 다시 묻자, 공자는 먹을 것을 버려야 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모두 죽기 마련이다. 백성들에게 신의를 잃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라고 대답했다.

 

공자는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먹는 것을 풍족하게 하는 것과 병사를 튼튼히 하는 것보다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서안(西安) 대안탑 앞에 조성된 중국 역대 인물석상의 일부다. 중국의 관리들은 과거시험을 통해 임용됐던 당시 최고의 학자들이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공자와 맹자를 종주로 삼는 유학(儒學)의 명분과 이상을 매우 중시했다.<사진=문승용 박사>

 

이와 같은 취지에서 선비의 덕목으로 먹는 문제보다 바른 마음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맹자에도 나온다. 맹자는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고정된 일자리로서 항산(恒産)을 만들어 줘야 백성들이 하늘로부터 타고난 착한 마음씨인 항심(恒心)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맹자는 보통 백성들에게는 고정된 일자리가 있어야만 인간이 본디 타고나는 착한 마음을 지킬 수 있다고 했지만, 학문에 전념하는 선비들은 고정된 일자리가 없이도 언제나 착한 마음을 지켜낼 수 있다고 해 선비와 일반 백성들의 자질이 본디 다르다고 했다. 이것은 맹자의 시대에는 지배계층으로서 군자나 선비가 있고 피지배계층으로서 보통의 백성이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그렇듯 차별적인 인식을 가지고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나 맹자가 군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체로 예로부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사사로이 이익을 추구하며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남에게 굽신거리는 삶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공자나 맹자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학문과 신념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삶을 살지 않았다.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고 했던 것도 바른 도리에 대한 그의 굳은 신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는 열다섯 살에 지학(志學)’이라 해 배움에 뜻을 뒀고, 서른 살이 돼서는 이립(而立)’이라 해 세상에 이름이 나기 시작했고, 쉰 세 살이 돼서 노()나라에서 대사구(大司寇)라는 벼슬에 올랐다.

 

중국 서안 당대(唐代) 궁전이었던 대명궁(大明宮) 박물관에 전시된 당태종(唐太宗)과 신하들이 조회하는 모습을 형상한 미니어처다. 중국의 황제가 절대 권력자라고 하지만, 조회를 통해서 신하들과 나라의 행정업무를 협의해 결정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사진=문승용 박사>

 

대사구는 당시 법률을 담당하는 최고 관리로서 이후 시대의 형조판서(刑曹判書)나 오늘날의 법무부 장관과 같은 직위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대사구에 취임해 7일 만에 당시 노나라의 정치를 어지럽히고 있던 소정묘(少正卯)라는 자를 처형하고 3일 동안 궁궐 마당에 시신을 걸어두어, 관리들에게 본보기로 삼게 하자 노나라의 정치가 안정됐다.

 

이것을 지켜본 이웃인 제()나라는 노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것을 보고 두려워해 노나라 군주가 정사에 소홀하게 하려고 미녀들과 값나가는 재물을 보내주었다. 노나라 군주는 미녀들에 휘둘려서 조회를 열지도 않았다. 이를 본 공자는 노나라 군주에게 실망해 바로 사직하고 자신의 이상정치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야 했다. 이것을 이른바 주유천하(周遊天下)라고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이제껏 우리 사회를 좀먹던 적폐세력을 없애자는 기치를 내걸고 검경수사권에 관한 법안이 국회에서 겨우 상정됐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의 지위와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되는 가운데 검찰총장은 이 법안이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것이며 헌법에도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는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든 물러날 각오라는 점도 내비쳤다.

 

그런데 그 어느 정부기관보다도 공정하고 정의롭게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검찰이 자신들의 권한이 축소되는 점을 우려해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조직 이기주의 때문에 민주주의와 헌법을 들먹이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백성들의 모범이 돼야 할 군자는 정의를 내세워야 한다고 했던 공자나, 먹을거리가 없어도 인간의 선한 마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는 것이 선비라고 했던 맹자의 말을 오늘의 우리 공직자들은 가슴 깊이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것이다.(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top

객원전문 기자칼럼

 
  • 기업법률
  • 프랜차이즈
  • 공정경제
  • 법률산책
  • 생활세무
  • 세금이야기
  • 인사급여
  • 4대보험
  • 노동정책
  • 판례리뷰
  • 이제IP
  • 무역실무
  • 알쓸신법
  • 부동산
  • 금융경제
  • 세상이야기
  • 가족여행
  • 예술만세
  • 작가노트
  • 현대미술
  • 시민경제
  • 무역물류
  • 이웃사람
  • 가맹거래
  • 미국문화
  • 중국상인
  • 블록체인
  • 신경제
  • 다른 세상
  • 상가법
  • 중국비즈
  • 민생희망
  • 지적재산권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