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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용서·화해에 앞서 철저한 진상규명 먼저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왜곡, 모욕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돼선 안된다 

기사입력2019-05-20 12:42
김영규 객원 기자 (hjlee1000@gmail.com) 다른기사보기
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우리에게는 잔인한 4월을 5월까지 연장시킨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1980년 前 대통령 전두환이 주도한 쿠데타가, 폭력과 살인으로 민주화운동을 압살하고 권력을 장악했던 불행한 역사다. 광주민주화운동은 그 해 5월17일 전국적으로 확산된 민주화 요구를 거부한 군부가, 비상계엄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함과 동시에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가한 날부터 시작된다. 5월18일은 광주에서 학생·시민들이 대대적으로 ‘군사독재 타도, 민주주의 회복’을 주장하며 궐기한 날이다. 그러나 5월27일 공수부대가 옛 전남도청을 무력으로 유혈진압하고, 시민군을 강제 해산시킴으로써 광주민주화투쟁은 사실상 종결된다. 그리고 나흘 뒤 5월31일, 전두환씨가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상임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그의 군사쿠데타는 성공했다.

올해 들어 광주민주화운동이 새롭게 조명된 계기는, 무엇보다 2017년 발간된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광주시민의 거센 반발이었다. 회고록을 통해 전두환씨는 광주투쟁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하고 증언했던 조비오 신부를 ‘사탄’·‘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고, 이에 분노한 광주 시민단체·유족이 그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 하면서부터다. 이로 인해 전두환씨는 광주지방법원에 출두했고, 자연스럽게 당시 그의 행적이 다시 부각되는 등 여론의 관심이 뜨거워졌다. 이런 와중에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종명 의원)’, ‘5·18 유가족은 괴물집단(김순례 의원)’이라는 등의 망언도 터져 나왔다. 잇따른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망발을 비난여론에도 들끓면서, 39년 전의 광주투쟁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됐다. 

5·18 민주화운동 39주년인 18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5·18민중항쟁 범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다.<사진=뉴시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육군 501 정보여단 정보관으로 근무했던 김용장씨가 전두환씨를 사실상 ‘사살명령권자’로 지목함으로써 광주투쟁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 그는 지난 5월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前 전대통령이 5월21일 정오쯤 광주의 K57(제1전투비행단) 비행장에 와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 보안대장 등 74명이 회의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이 회의에서 前 전대통령의 사살명령이 있었다는 게 저의 합리적 추정”이라고 폭로했다. 또한 이날 기자회견에는 1980년 당시 계엄군의 실질적 지휘소 역할을 했던 505 보안대 정보요원이던 허장환씨도 참석했다. 그 역시 광주역이나 전남도청 앞에서 발생한 특전부대의 발포는 전두환의 지시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두환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방문과 헬기사격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전두환씨는 회고록에서 “1980년 5월18일부터 5월27일 사이의 그 어느 시간에도 전남 광주의 그 어느 공간에도 나는 실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1995∼1996년 검찰 수사기록, 신군부 핵심 관련자 진술, 1982년 편찬된 <제5공화국 전사> 등을 종합해 전두환씨의 5월 행적을 집중 추적한 경향신문에 따르면, 그는 ‘광주사태’를 직간접으로 진두지휘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세력이 주도한 쿠데타에 대항해 선도적으로 극렬하게 저항한 ‘광주민중항쟁’으로 기억돼야한다. 그런데 ‘13년간의 신군부 민주압살 독재통치’가 종료된 이후 들어선 역대 정권들은 광주민중항쟁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었는가? 김영삼 민간정권은 1996년 쿠데타를 주도했던 신군부 세력을 내란 및 반란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재판결과 이들 대부분은 처벌을 받았고, 쿠데타 지휘자 전두환씨는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1심판결 8개월만인 1997년 12월 ‘국민대통합’을 명분으로 전두환씨 등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로써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지켜야했던 역대 정권 모두 5·18 쿠데타세력에 대한 특별사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이 지난 18일 광주민주화묘역에서 거행됐다. 전두환씨에 대한 특별사면 조치가 내렸던 당시에도, 광주항쟁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나 반성이 없었다는 등의 이유로 광주시민은 물론 국민 모두가 전두환씨 사면석방을 반대했다. 지난달 재판 참석으로 광주를 찾았던 전두환씨는 지금까지도 어떤 반성이나 사과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회고록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폄하하고, 자신을 “5·18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했다. 또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발포명령’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촛불정부’라는 문재인 정권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될까? 지금까지 국민여론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미 답을 제시했다. 하나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지키고 기리기 위해서, 이를 부정하거나 왜곡하고 심지어 모욕까지 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나 극우보수세력의 5.18 역사에 대한 부정과 왜곡이 도를 넘었기에, 이들 행위에 대한 법적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문 대통령은 올해 5·18기념식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해서는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협력해서 용서와 화해에 임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누가 감히 용서와 화해를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용서를 말하고, 행할 수 있는 당사자는 민주화라는 바른 행위를 하다가 군사쿠데타에 의해 희생당한 광주시민들이다. 그래서 화해는 폭력행위를 저지른 가해자 전두환씨가 처벌받았을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비판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새로이 가칭 ‘광주민주수호법’을 제정하고 공포해야한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촛불정부가 가져야 할 다른 하나의 자세는 진상규명 노력이다. 지금도 여전히 감춰진 5.18 관련 反헌법 내란범죄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그에 상응한 ‘처벌’이 이뤄져야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전두환씨에 대한 법적 처리가 완결된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해 국민적 합의로 마무리된 것처럼 발언했다. 김영삼 정권 하에서 진행된 신군부에 대한 처벌과 특히 전두환씨 특별사면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미군 정보원의 폭로와 함께 당시 민간인 희생자 시신을 무단으로 화장하거나 바다에 버렸다는 증언이 새로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5.18특별조사단을 발족해 1980.5.18 당시 모든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합당한 조치를 내놔야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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