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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 역사의 교훈 되새겨 위기를 극복하자

일본의 어이없는 행태(수출규제)를 ‘복(국산화)’으로 바꿀 기회 

기사입력2019-07-21 09:30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일본이 우리나라에 반도체 핵심부품 몇 가지의 수출을 규제하자, 정부와 사회단체는 물론 여기저기서 그와 관련한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일본상품을 사지 말자는 시민운동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어이없는 경제도발에 더욱 강력하게 맞대응해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그리하면 경제적 약소국인 한국이 더 큰 피해가 있을 수 있으니 차분하게 대처하자는 의견도 있다. 
 
재작년 중국이 사드문제로 한국을 압박한 이후 對중국수출 및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감소해 여러 분야에서 고통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이번에는 한국의 주력상품인 반도체에 없어서는 안되는 주요부품 공급을 일본정부가 막겠다 하니, 우리산업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참으로 고약스러운 이웃을 두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중국 고전에서 외교정책을 논할 때 원교근공(遠交近攻)을 원칙으로 삼으라는 가르침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원교근공은 멀리 떨어진 나라와는 동맹을 맺고, 가까이 이웃한 나라를 공격하라는 외교정책으로 ‘전국책(戰國策)’에 나온 말이다.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戰國時代) 큰 혼란기 때, 중국의 서쪽 외곽에 있던 진(秦)나라의 생존을 위해 범저(范雎)가 소양왕(昭襄王)에게 올린 계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정당 대표 초청 대화’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런데 2000년이 훨씬 더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웃 나라들에게 이처럼 휘둘리다 보니, 멀리 있는 나라와는 관계를 잘 다지되 오히려 가까운 이웃나라와는 각을 세우고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원교근공이란 외교정책에 더욱 공감이 간다. 

원교근공의 정책은 이웃 나라와는 영토문제를 비롯해 여러모로 이익을 다투다 보니, 서로 견제할 일도 많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속담에 멀리 사는 친척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좋다는 말이 있다. 이 역시 이웃과 서로 다툴 일이 없으니까 그저 좋다는 것이지, 이웃과 사이가 나빠지기라도 하면 종종 이웃과 문 앞에서 마주치는 것조차 불편할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와 일본은 대체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할 수도 있다. 유럽에서 서로 인접한 독일과 프랑스 혹은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20세기 들어 인류에게 가장 큰 인명피해를 주었던 두 차례 세계대전의 핵심 당사자가 이들 국가다. 이외 중세시대 이전부터 이들 국가를 포함, 유럽의 여러 이웃나라들은 허구한 날 치고받고 싸우느라 세월을 다 보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 두 나라 사이에도 크게 갈등을 빚었던 적이 없지 않다. 13세기 고려가 몽골에 떠밀려 여몽연합군을 구성하고 두 차례 일본정벌을 시도했다. 주로 해안가에서 행해지는 왜구들의 노략질을 근절하기 위해 고려와 조선은 세 차례 쓰시마섬을 정벌한 사건도 있었다. 거꾸로 16세기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이 중국을 치러간다며 조선에게 길을 내달라며 침략전쟁을 벌였다. 근대 개항시기 조선이 일본에게 30여년동안 식민통치를 당한 것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보자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혼천의(渾天儀), 세종대왕 때 천문을 관측하던 기구다. 조선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천문·수학·인쇄·도자기·제지 등 당시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사진=문승용 박사>
하지만 일본에게 식민통치를 당하면서 겪었던 뼈아픈 경험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 오늘날 이웃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이처럼 거북스럽게 된 이유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와 일본 간 국력·과학기술이 차이가 나게 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왜란의 국난을 조선이 어쨌든 물리쳤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러한 고난을 새로운 역사 전환의 계기로 삼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조선침략을 통해 당시로서는 첨단 과학기술 분야인 인쇄·종이·도자기 기술자들을 잡아가 산업을 발전시켰고, 이후 유럽국가와의 교역을 통해 근대산업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 조선왕실은 임진왜란 당시 잡혀갔던 백성들과 기술자들을 데려오려 했지만, 많은 이들이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고 기술자를 우대하는 일본에 남기를 원했다고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당시 조선은 과학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보다, 관념적인 도의(道義)를 닦는 것에 더욱 열중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임란 이후 40년만에 병자호란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또다시 겪어야했고, 결국 20세기 들어 일본에게 침략을 당해 나라가 망하는 치욕을 당했다.  

고려시대 말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유학을 가르치던 성균관(成均館) 명륜당(明倫堂)의 편액이다. 과거 왕조시대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기술보다 인륜(人倫)을 함양하는 관념적인 도덕교육에 치중했기 때문에 과학기술 발전이 늦어져 근대산업국가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사진=문승용 박사>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제58장에는 ‘재앙이라고 하는 것에는 복된 것이 깃들어 있고, 복된 것에는 재앙이 숨어 있는 것이니, 누가 그 끝이 어찌 될 줄 알겠는가? 세상에는 늘 그러한 것이 없으며, 늘 그러할 것 같은 것이 기이하게 되기도 하고, 지금은 훌륭해 보였던 것도 때로는 요괴처럼 되기도 한다(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라는 대목이 있다. 

세상 일에는 언제나 복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며, 거꾸로 늘 재앙이 되는 것도 아니라서, 어느 일이든 늘 그러한 채로 고정돼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그것에 실망해 좌절하고만 있지 말고 살길을 찾으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개인은 물론 국가마다 각자의 이익추구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전화위복(轉禍爲福), 즉 어려운 상황을 전환시켜 복으로 만들 줄 알아야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통해 오늘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아가는 기회로 삼아야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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