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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터무니없이 고요했지만 이상하리만치 풍요로운 그곳

아이슬란드 ‘하이마(HEIMA)’ 레지던시…펄럭이는 안감 ‘LINERS’ 

기사입력2019-08-09 13:48

두 달 가까이 헌옷의 안감을 떼어내고 손바느질로 엮어 길이 3m, 지름 1m의 바람자루를 만들었다.<사진=김윤아 작가>
아이슬란드 동쪽 끝, 세이디스피요두르(Seyðisfjörður)에 위치한 하이마(HEIMA)’ 레지던시 기간이 끝났다. 41일부터 630일까지 지난 세 달 캐나다, 덴마크, 체코, 스위스, 터키 출신의 작가들과 한 공간에서 동고동락하며 지내는 동안 한 두 차례의 우박과, 한 주간의 비 그리고 수차례의 눈이 내렸다.

 

4월초 도착한 아이슬란드에서 국내선을 갈아타고 세이디스피요두르에 도착했다. 작은 비행기가 흔들리며 이륙하는 동안 긴장감과 피로함이 동시에 찰랑거렸다. 버스를 타고 잘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달리, 동네 작은 슈퍼마켓 크기의 공항 앞에는 단 하나의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밴 크기의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심했고 추웠지만, 긴 비행시간과 세 달간 작업할 물품과 각종 무거운 짐들로 인해 이마에서는 미열이 일고 있었다. 비탈진 산길을 올라가는 동안 버스 창문 밖으로 마치 미세한 가루처럼 날리던 눈가루가 밀도가 심해져서는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창밖은 온통 하얗게 변해 아무 것도 분간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 거친 길 위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밖을 보며 도대체 저 버스운전사는 어떻게 달릴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고, 사뭇 불안해하길 몇 차례 약 한 시간 정도 걸려 드디어 레지던시가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나보다 하루 이틀 먼저 도착한 작가들이 정류장에 마중 나와 있었고, 정류장에서(팻말도 없다) 걸어서 3분 정도 거리의 하이마에 들어 설 수 있었다.

 

세달 동안 함께 지낼 먼저 도착한 몇몇 작가들과 간단하게 통성명을 하고 차를 나눠 마신 후, 2층 제일 끝에 비워져 있는 방을 선택해 짐을 풀었다. 작은 침대에 몸을 뉘이고 창 밖에 시선을 돌리는데 그제서야 감탄이 쏟아졌다.

 

아이슬란드 동쪽 끝 해안가에 영구 설치된 김윤아 작가의 작품 ‘LINERS’.<사진=김윤아 작가>
눈 덮인 산으로 둘러싸인 지평선은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그림 같았고, 그 밑 야트막한 파스텔톤의 집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잡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창틀에 턱을 괴어두고 밤늦도록 그 풍경에 매료돼 촘촘히 보고, 다시 보고 했던 첫 날밤이 그렇게 지났다.

 

나를 포함해 6명의 작가들이 모두 도착하고 간단한 생활수칙을 함께 정하고(설거지, 스튜디오 청소, 화장실 청소, 공동생필품 등등), 저마다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 작은 마을은 터무니없이 고요한 나머지 그 멋진 자연경관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지루해져갔고, 저마다 작업시간 외의 생활을 위해 조금씩 무언가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일주일에 한번 영화를 추천해서 함께 본다든가 하는 것들.

 

가진 게 서로밖에 없는 우리들은 서로의 이야기와 작업세계를 면밀히 들여다 보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백야가 시작될 때 즈음엔 새벽산책을 하고, 밤새 스튜디오에서 작업에 열을 올리기도 했고, 동네에 어선이 들어올 때면 생선을 얻어와 제법 근사한 저녁식사를 해먹기도 했다.

 

모든 게 멈춘 동네에도 어김없이 시간은 흘렀고 전시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곳에서 무슨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오래 골몰하던 나는 헌옷의 안감을 떼어내고 손바느질로 엮어 길이 3m, 지름 1m의 바람자루를 만들었다. 기관에서는 작업을 영구 설치하기로 했고, 그렇게 두 달 가까이 걸쳐 제작된 작업 ‘LINERS’는 아이슬란드 동쪽 끝 해안가에 영구 설치됐다. 바람이 잦은 이곳에서 한 때 사람의 피부와 가장 가까웠던 안감은 속살을 드러낸 채 쉬지 않고 펄럭이다 그 또한 헤지고 낡아가게 될 것이다.

 

바람이 잦은 이곳에서 한 때 사람의 피부와 가장 가까웠던 안감은 속살을 드러낸 채 쉬지 않고 펄럭이다 그 또한 헤지고 낡아가게 될 것이다.<사진=김윤아 작가>

 

작업과 산책, 저녁식사와 사는 이야기, 어떤 슬픔이나 자연에 관한 이야기 외에는 아무 것도 할 게 없던 이곳에서 나는 애초에 준비해온 단 세벌의 티셔츠와 두 벌의 바지, 세 개의 점퍼를 돌려 입었고, 동네에 새로 생긴 음식점에서 두 번의 외식을 했고, 식사는 주로 직접 구운 빵과 버터·커피였다. 동네 산책 길 땅에 내려앉은 작은 올빼미를 만났고, 스튜디오 앞 물가에 위치한 검은 바위에는 간혹 물개 한 마리가 올라와 앉아 한동안 조각처럼 멈춰 있었으며, 선명한 초록빛을 드러내는 한 번의 오로라를 만났다. 시간은 피부를 휘감고 지나듯 밀도 있었고, 단순한 반복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풍요로웠다.

 

돌아가서 마주하게 될 일이라는 게 공포스러울 것까지는 없었지만, 이 단순한 풍요의 감정이 사라지게 될까봐 두려웠다. 마지막 주에는 모두가 그랬다. 그 중 몇몇은 바로 돌아가지 않고 혼자만의 여행을 일주일 정도 갖기 위해 계획을 짜기도 했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부천에 위치한 레지던시로 돌아가 8월 아트페어 준비를 위해 드로잉 작업을 세팅해 놓고 정산을 위해 그동안의 영수증을 줄줄이 꺼내 놓았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일은 숫자들과 머리 아픈 일들뿐이다. 익숙한 두통에 타이레놀 두 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물 잔을 준비하는 동안 피식 웃음이 났다

 

뭐 괜찮다. 나와 한 때 가장 가까웠던 제2의 피부가 저기 지구의 땅 끝에서 펄럭이고 있을 테니.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

 

하이마 아트 레지던시(Heima Art Residency)

하이마 아트 레지던시(Heima Art Residency)는 비영리재단으로 2013년에 설립됐다하이마는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배경으로 한 아티스트 6명을 선발해 봄가을 두 번에 나눠서 각각 90일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Andreas Lemche, Lasse Høgenhof, Jonatan Spejlborg, Simon Bergkjær, Björt Sigfinnsdóttir가 창립멤버로젊은 아티스트를 위한 레지던시로 시작됐다. Lasse Høgenhof는 현재 아이슬란드에서 LUNDA School이라는 예술학교에 교장으로 있으며, Andreas Lemche는 뮤직 매니지먼트를 운영하고 있다.

 

세이디스피요두르(Seyðisfjörður)는 인구 700명의 소도시다극적인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의 유명한 롱 보드 촬영장소이기도 하다이 도시는 스위스 작가 Dieter Roth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고그 작가의 이름을 딴 미술학교가 있다그곳에서 레지던시에 참가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그룹전시회가 개최된다.

 

하이마는 아이슬란드뿐만 아니라덴마크에서 각광받는 레지던시다덴마크의 디자인회사 Made by hand가 하이마 레지던시 프로그램 후원사로 있다최근에 덴마크에서 주목받는 Jonas Bang은 하이마와 공동합작으로 cr Seyðisfjörður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영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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