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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그림은 미술관에 전시될 수 없는 것일까

“MAY BE, MAY BE NOT”…미술계서 천대 밥 로스, 스미소니안 소장 

기사입력2019-09-15 00:00

레지던시와 작업실 문제로 이사를 많이 다니는 나는 지난해 작업실 이사 준비를 하다, 골목에 버려진 그림 하나를 보고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대단한 그림도 아닌, 어찌 보면 참 유치하고 조악스럽기 짝이 없는 풍경화였다. 문화예술이라고는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이는 복덕방이나 이발소에 달력처럼 놓여있는 이발소 그림이었다.

 

골목 전봇대 앞에 반쯤 부서진 채 버려진 그림은 아마도 근처 업소가 내부 인테리어를 다시 하면서 가져다 버렸을 게다. 누군가 사물을 똑같이 그려보고 멋지게완성하기 위해 몇 가지, 그나마 설익은 테크닉으로 쪼잔하게 붓질되어진 그림 앞에서 나는 왜, 자리를 뜨지 못했나.

 

요즘에도 유뷰트에 밥 로스(Bob Ross)의 풍경화 그리는 교실 영상이 엄청 인기를 끈다. 한국에서는 90년도 중반에 EBS를 통해서 본 기억이 있다. 그의 회화 강의는 30분 정도였으며, 그 시간 안에 속칭 이발소 그림한 작품을 완성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밥 로스는 미국 공영방송국(PBS)을 통해 풍경화 교실을 1983년부터 1994까지 방영했다.

 

그는 림프종을 앓다가 1995년 향년 52세로 생을 마감했다. 항아리를 뒤집어 쓴 것 같은 곱슬머리와 수염, 헐렁한 셔츠에 팬츠, 어떻게 보아도 참 아우라가 없는 양반이다. 그는 과연 어떤 화가였기에 11년 동안 방송을 통해 강의하고 아직도 그의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을까?

 

밥 로스는 1942년 미국 인디언 목수인 아버지와 웨이트리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 3때 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와 함께 목수일 하다가 손가락 하나를 잃었다. 그래서 학력은 그게 전부다. 18살에 미국 공군을 지원해 20년 동안 복무하다 상사로 전역한다. 플로리다(열대날씨와 평지인 곳)에서 태어난 밥 로스는 알래스카 공군기지에서 일할 때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산과 눈을 보았다 한다. 눈 덮인 산은 그의 그림의 소재로 많이 그려졌다.

 

미술교육 아니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밥 로스는 그림에 관심이 많아 군대에서 제공하는 미술취미반에 들어가게 된다. 그의 선생님들은 추상화에만 관심있는 화가라서, 밥 로스와 마찰이 생긴다.

 

나는 나무를 그리고 싶은데 나무 그리는 테크닉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밥 로스는 바텐더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유화의 마술이라는 프로그램을 발견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독일인 빌 알렉산더라는 화가가 16세기 테크닉인 wet-on-wet(유화물감이 마를 때까지 한 번도 기다리지 않고 계속 젖은 물감으로 그리는 것)을 가르쳤다. 그는 이 방법으로 30분 만에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밥 로스는 이 방법을 독학해 그릇 위에 풍경화를 그려 팔았고, 꽤 잘 팔아서 그림 판 돈이 군대 월급보다 많아 20년간의 군대생활을 접는다.

 

Bob Ross paint.<출처=셔터스톡>

 

제대 후 그는 알렉산더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고, 알렉산더가 하는 미술용구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돌아다니며 그림을 가르쳤다.

 

로스의 수업에 참가했던 아넷 코왈스키라는 아줌마는 로스한테 비즈니스 찬스가 있다고 믿고 전 재산을 투자해 회사를 만든다. 로스도 저축한 돈을 회사에 투자한다. 로스는 군대식 헤어스타일에 익숙해서 이발을 자주했는데, 아넷 아줌마는 이발비를 절약하기 위해 파마를 하도록 하게 했고, 그 항아리 머리가 그가 사망할 때까지 로스의 트레이드 마크로 대중에게 남게 됐다.

 

얼마 후 1983년 로스의 티비 쇼는 방송을 타게 됐고, 죽기 얼마 전 1994년까지 이어졌으며 아직까지도 계속 방영되고 있다. 로스는 자기를 해피 페인터라고 칭했다. 아넷 아줌마와 만든 회사에서는 미술용품과 책자를 팔았고, 로스 테크닉으로 가르치는 수업을 열어 수입을 올렸다.

 

로스의 기법은 그림을 비싼 도구를 안 쓰면서 쉽게 빨리 완성할 수 있어서 일반대중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의 그림의 소재는 나무, , 호수, 눈 등 주로 자연소재였고 사람은 그의 그림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오두막이 있는 그림에서는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아 사람이 살지 않는 오두막으로 간주되었다. 그는 한번 방송이 나갈 때마다 똑같은 그림을 3점 그렸다(방송에 나갈 그림 한번, 방송 중에 한번, 방송 후 다시 한번). 그렇게 해서 그는 죽기 전까지 엄청난 숫자의 작품들을 남긴 걸로 알려져 있다.

 

미술계에서는 그의 그림을 이발소 그림으로 천대했지만, 로스의 사후에도 그의 방송은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특히 지난 몇 년 사이 그에 대한 인기와 관심은 더욱 가열됐다.

 

한 가지 미스터리는 그가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의 작품이 거래되었다는 소리가 없었다. 옥션에도 안 나타나고 갤러리에서도 본적이 없고 인터넷에서 팔리는 그림은 다 짝퉁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구입하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액수일 것이다. 인터넷에는 여러 가지 루머가 돌고, 뉴욕타임즈가 심층 취재에 들어가 과연 로스의 그림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방송을 만들었다.

 

뉴욕타임즈 기자는 버지니아 주에 위치한 밥 로스 회사를 방문했다. 현재 아넷 아줌마 딸이 회사의 대표다. 예전과 같이 회사에서는 미술용구, 책을 팔고 강좌를 제공한다. 또한 밥 로스 기념품도 판다. 보안설비와 온도조절이 완벽하게 설비된 회사 창고에 밥 로스의 작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작품구입에 대한 문의가 들어와 회사는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매하지 않는다고. 왜 그런지에 대해 아넷 아줌마는, “밥은 살아있는 동안도 작품을 팔지 않았다. 판매는 그냥 자기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사후에도 우리는 그의 뜻을 따른다라고 말했다.

 

심층 취재는 로스가 나왔던 토크쇼의 한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사회자는 로스에게 조롱하듯이 그의 이발소 그림은 절대로 미술관에 전시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라고 한다. 로스는 답을 한다.

 

“MAY BE, MAY BE NOT.”

 

그리고 최근에 미국에 하나뿐인 국립박물관 스미소니안에서 밥 로스의 그림을 영구 컬렉션(collection)으로 소장하게 됐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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