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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능 자본주의…인의(仁義) 회복, 맹자의 뜻 되새겨야

‘사생취의(捨生取義)’, 삶을 버려서라도 바른 삶의 길을 택하겠다 

기사입력2019-11-05 14:29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본디 악할 따름인데, 악하게 되는 이유는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라 했다.  사람은 누구나 맛난 음식을 먹고 싶고, 좋은 옷을 입고 싶어 한다. 그처럼 좋아하는 음식·옷이 세상에 무한정 널려있지 않다보니, 그것을 차지하려고 경쟁한다. 그 경쟁에서 꼭 이기려는 욕심에, 때로는 반칙을 하기 때문에 인간이 악해진다는 논리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악해질 수 있는 가능성과 주변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문과 예를 열심히 닦아 스스로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순자 성악설의 요점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순자의 성악설보다 맹자의 성선설을 따르는 전통을 지켜왔다. 그런 영향 때문에 성선설과 성악설 가운데 어느 것을 따르냐는 질문을 받으면, 성선설을 따른다는 이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허긴 성악설을 따른다하면, 나 스스로 본디 악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꼴이기도 하니, 성선설에 보다 마음이 끌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한 맹자(孟子), 선악의 구분이 없다고 한 고자(告子), 본성이 악하다고 한 순자(荀子)가 한자리에 모여 인간의 본성에 대해 토론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사진=문승용 박사 제공>
오늘날에도 성선설과 성악설은 종종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라, 옳으니 그르니 한참 설왕설래하는 단골 얘깃거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세상일이란 게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를 칼로 무 자르듯 확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본성에 대해 한창 논쟁을 벌이다, 친구끼리 얼굴을 붉히고 때로는 의가 상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맹자와 순자가 만나 인간의 본성이 착한지 악한지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지는 못했다. 맹자가 B.C. 372년에 태어나 B.C. 289년에 죽었고, 순자는 B.C. 298년에 나서 B.C. 238년에 죽었다. 맹자가 74년이나 앞서 태어나 순자 나이 10살 무렵에 죽었으니, 그들이 만나 토론은커녕 서로 마주쳤을 가능성도 없다. 다만 전국시대(戰國時代) 당시 순자는 전국의 학자들이 모여 학술토론을 하던 제(齊)나라의 직하학궁(稷下學宮) 최고책임자인 좨주(祭酒)를 세 번이나 역임했는데, 순자가 이곳에서 연구했던 시기는 훨씬 이후였으니, 그때는 맹자가 이미 세상을 떠났을 때였을 것이다. 
       
맹자가 살던 당시 성설설을 반박한 이는 고자(告子)라는 사람이었다. 『맹자』 「고자상(告子上)」 편에서, 고자는 인간이란 “식욕과 성욕이 본성이다.(食色性也.)”고 전제하고, 인간의 본성을 물의 성질에 빗대어서 설명하기를, 땅에 흥건하게 뿌려진 물을 동쪽으로 이끌어 가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이끌어 가면 서쪽으로 흐르는 것과 같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인간본성에 선하고 선하지 않은 구분이란 본디 없으며, 오히려 후천적인 학습과 환경에 의해 선과 악이 결정될 뿐이라 했다. 

고자의 이러한 인성론은, 인간의 본성이란 타고날 때는 서로 비슷하지만, 후천적인 학습이나 환경에 의해 크게 달라진다는 공자의 주장에 보다 더 가깝다. 순자의 성악설 역시 후천적인 환경이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 했으니, 고자의 생각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순자가 말하는 후천적인 환경이란, 바로 인간이 이익을 따르는 것으로 설명한 대목이 좀 더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오늘날에도 “착한 노래를 높이 읊조리자(善曲高奏)”라는 포스터를 종종 거리에 붙여 인간의 착한 본성을 일깨우고 있다.<사진=문승용 박사 제공>
인간의 본성에 선하고 악함의 구분은 없으며, 다만 먹고 마시며 남녀 간의 관계를 통해 번식할 뿐이라는 고자의 주장을 들은 맹자는 무슨 대답을 했을까? 먹고 마시며 번식을 시키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한 고자의 주장에 대해, 맹자 역시 그르다고 하거나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맹자는 고자가 말한 인간의 본성이란 개나 소를 포함한 동물 전체의 본성이지, 인간만의 고유한 본성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인간이 오로지 먹고 마시고, 번식만을 위해서만 사는 존재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를 보더라도 맹자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특별한 존재임을 말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맹자는 또 「고자상」 편에서 “어진 것이 사람의 타고난 마음이며, 올바르게 사는 것이 사람이 가야 할 길이다.(仁人心也, 義人路也.)”고 말했다.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인 어진 마음을 가지고 정의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인의(仁義)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이 스스로 타고난 착한 마음과 정의로운 삶의 자세를 저버리고도 회복할 줄 모르는 것에 대해 매우 애통해 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하는 것은 세상에 널린 지식을 하나하나 주워 모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에서 잊힌 착한 마음과 바른 삶의 길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자가 『논어』 「이인(里仁)」 편에서 “아침에라도 인간의 진정한 삶의 이치인 도(道)를 깨달으면 그날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朝聞道, 夕死可矣.)”고 말해 인간 삶의 이치를 깨닫고자 했다면, 맹자가 삶을 버려서라도 바른 삶의 길을 택하겠다는 의미에서 ‘사생취의(捨生取義)’라고 말한 것은 모두 같은 취지의 말이라 할 수 있다. 

공자와 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더 너른 땅과 더 많은 백성을 부리고자 하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일삼던 왕들이 즐비하게 군림하고, 자신들의 얕은 재주를 가지고 권력을 꿰차 백성들을 착취하던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 혼란기였다. 혼탁한 세상 한복판에서 인간이 본디 착한 심성을 가지고 바른 삶의 길을 가야한다고 주장했던 이유는, 공자와 맹자가 인간 본성을 신뢰하고 앞날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려했던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상대방을 눌러 이기지 않으면 죽고 마는 물질 만능의 이윤추구를 권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란 본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올바른 길을 가고자 하는 존재라는 맹자의 성선설 역시 되새겨 볼 가치가 충분하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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