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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켜켜이 서린 한…당당한 여인들의 모습을 담다

화려한 색채로 부활한 천경자의 여인들 

기사입력2019-11-08 10:09
김태현 미술평론가 (elizabeth0711@gmail.com) 다른기사보기

화려한 색채와 이국적인 풍경은 우리가 첫 번째로 떠올리는 천경자의 그림이다. 세계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기에 세계 각국을 다니며 본 것들을 그려낸 그의 그림과 글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작품세계의 또 다른 키워드옥자 그리고 경()

 

천경자 ‘발리섬의 무희’, 종이에 채색, 40×31.5cm, 1986.<출처=서울특별시,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그의 삶은 마냥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화가가 되기 위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으로 유학을 감행했고, 이로 인해 훗날 그는 유학 중 아버지 사업이 도산하자 자신의 학비 때문이라는 책망을 떠안아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천경자에게 있어, 유학생활을 하며 경험한 고독과 외로움은 치열하게 그의 내면세계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며 당시 유행하던 서양의 야수파와 입체파 같은 거친 느낌의 유화 그림보다, 섬세한 동양 채색화에 매료돼 동양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옥자라는 본래 이름 대신 거울 경()을 쓴 경자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거울은 천경자의 그림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또 다른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키워드이기도 하다.

 

켜켜이 서린 한세계를 돌며 화려한 색채로 부활하다

 

언뜻 보면 화려한 색감을 가지고 있기에 유화인가 하는 착각을 할 수도 있지만, 천경자는 동양화가로 분채와 석채를 주로 활용했다.

 

동양화의 재료는 서양의 물감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동양화의 물감과 같은 채색 재료는 아교가 섞인 물에 고운 안료를 풀어 색감을 표현하기 때문에 여러 번 덧칠하면 할수록 색이 올라온다. 고운 동양화 물감은 이러한 노력의 흔적이 한 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러 번의 붓질을 거쳤기에 은은하고 자연스럽게 종이에 두각이 된다. 또한 이러한 특징 때문에 어두운 색을 채색할 때는 다양한 색을 덧칠할 수 있다. 이것은 한 번에 검은색을 칠한 것과는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빛에 따라 혹은 자세히 살펴보면 다양한 색상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천경자 ‘나의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종이에 채색, 43.5×36cm, 1977.<출처=서울특별시,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천경자의 그림은 동양화의 이러한 재료적 특징을 잘 활용한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지만, 세밀히 살펴보면 단정한 붓질과 여러 색을 그림에 덧칠했기에 깊은 맛을 지니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천경자는 여러 국가를 여행하며 본 다양한 풍물을 그렸다. 베트남에 종군화가로 파병돼 활동하기도 했으며, 지금도 선뜻 가기 힘든 인도와 아프리카 같은 나라도 다녀왔다. 그곳에서 천경자는 원시문화를 경험하며 화려하게 이를 재창조해냈으며, 여기서 그의 동양화 화법은 더욱 빛을 발했다.

 

또한 문학에 조예가 깊어 여러 권의 수필집도 낸 문인이기도 한 천경자는 헤밍웨이나 테네시 윌리엄스 같은 문인들의 생가를 방문해, 그곳의 느낌을 그의 시선으로 재창조했다. 소설 속 장면들을 상상력을 동원해 화면에 펼쳐내기도 했다.

 

여성의 초상시대에 당당한 여인들의 모습을 담다

 

천경자의 화려한 그림 속에 유난히 여럿 등장하는 것은 여인들이다. 천경자 특유의 동공이 열려있는, 텅 비어있는 눈동자를 한 여인들은 썩 즐겁거나 쾌활한 혹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기보다 그저 약간 멍한, 자기만의 생각을 하는 모습이어서 더욱 인상적이다.

 

1970년대에 등장한 길례 언니연작도 그렇고, 자신의 자화상이나 여행지에서 만난 여인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원시적이고 몽환적인 치장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으나, 열려있는 눈동자 덕분에 어딘가 모르게 비어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 비어있는 모습에는 마치 작가의 모습과 감정이 이입돼 있는 듯하다. 미술가의 시선으로 자의적으로 바라보고 그린 여성의 초상에서 천경자는 결국 자신의 모습을 그들에게 투영한 것이다.

 

천경자는 그의 작품을 통해 현실의 자신을 넘어 이국적인 혹은 당당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자신의 모습들을 드러냈다.

 

천경자 ‘브로드웨이 나홀로’, 한국화, 32×41cm, 1997.<출처=서울특별시,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천경자의 여인들은 미술사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과거 미술사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주로 남성들의 시선으로 묘사돼 왔다.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여성은 여신과 같은 이상적인 모습으로 소구되거나, 기생 혹은 귀족여인들의 초상화로 그려지기만 할 뿐이었고, 여성들의 모습과 삶을 주로 그리는 미술가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천경자는 여성의 시선으로 다양한 여성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그렸다. 물론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시대상과 비교했을 때, 천경자 작품 속의 여인들은 어떠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독립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미술은 페미니스트 운동의 선구자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시대의 보편적인 여성상과는 다소 동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천경자의 삶은 자신이 기술했듯, 평탄하게 흐르지만은 않았다. 천경자가 미술가로서 절필을 선언하던 순간, 미인도의 위작 진위 여부로 다친 미술가의 마음은 치유될 수 없음을 선언했고, 마지막 순간조차 그의 미술을 꽃피운 서울에서가 아닌 미국에서 그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그러나 천경자의 손길을 거친 수많은 서정적이고 화려한 그림은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이것은 수많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천경자의 강렬한 인생이 전하는 가치와 그의 그림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지속적으로 소환하게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태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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