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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작업 ‘모피’로 감싼 낯선 아침식사

미묘한 아침…메레 오펜하임(Méret Oppenheim)㊤ 

기사입력2019-12-22 14: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뭐든지 털로 덮으면 좋죠. 털을 덧댄 건 무엇이든 보기 좋으니까요.”

 

1936년 어느 날 점심시간, 파리에 있는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에서 느긋하게 의자를 뒤로 기대고 있던 파블로 피카소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여인을 향해 이렇게 털에 대한 농담조의 말을 던졌다. 피카소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맞은편에 앉은 여인이 모피로 감싼 팔찌를 피카소에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말을 들은 여인은 전혀 당황한 기색도 없이 자기 앞에 있는 찻잔을 들며 심지어 이 찻잔과 차받침까지도 털로 덮을 수 있겠군요라며 농담을 맞받아쳤다.

 

그리고 그녀는 더 익살스럽게 웨이터를 향해 웨이터, 모피 한 잔 더 주세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이 농담은 농담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브제, 모피로 된 아침식사(Object, Fur Breakfast, 이하 모피 아침식사’)라는 놀라운 초현실주의 작업을 탄생시킨 주요한 아이디어가 됐다.

 

1936년 파리의 카페 드 플로르에서 피카소가 농담을 던진 여인은 당시 파리생활 4년 차에 접어든 23세 신진 여성작가 메레 오펜하임(Méret Oppenheim, 1913~1985)이었다. 그녀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스위스에서 자랐고,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19세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와 있었다. 오펜하임은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장신구 디자인을 했는데, 그 디자인에도 그 당시 자신의 예술적 개념을 드러내고자 했다. 피카소와 만났던 그 날 오펜하임은 자신이 디자인한 모피로 테두리를 두른 팔찌를 차고 왔고, 그 팔찌를 피카소에게 자랑삼아 보여줬던 것이다. 이에 털을 덧댄 건 무엇이든 보기 좋다라는 피카소의 농담을 듣게 된다.

 

메레 오펜하임, ‘오브제, 모피로 된 아침식사’, 1936, 모피 털로 감싼 컵, 받침 접시, 그리고 스푼. MoMA 소장<출처=moma.org>

 

당시 오펜하임은 20세기 프랑스 초현실주의 대표 시인이자 미술이론가인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에게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해 달라고 요청을 받은 상태였다. 출품작을 고민하던 오펜하임은 피카소의 농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찻잔 세트를 중국산 영양의 얼룩덜룩한 황갈색 모피로 감싼 작품을 이 전시에 출품했다.

 

파리의 갤러리 찰스 래튼(Galerie Charles Ratton)에서 열린 이 전시회에서, 모피로 감싼 찻잔 세트를 본 앙드레 브르통은 오펜하임의 발상을 극찬했다. 그는 차를 마시는데 사용하는 찻잔 세트가 지닌 본질적인 기능을 빼앗아, 전혀 다른 대상물로 바꿔버린 그녀의 발상을 놀라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 직접 모피 속의 점심식사(Déjeuner enfourrure, Luncheon in Fur)’라는 제목까지 지어줬다. 오펜하임이 이 작품의 제목을 오브제, 모피로 된 아침식사로 짓게 된 것은 브르통이 지어준 제목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피카소와 오펜하임이 털에 관한 농담을 했던 그 테이블에는 그 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한 여인이 피카소의 옆에 앉아 있었다. 바로 도라 마르(Dora Maar). 피카소의 명작 중 하나인 게르니카(Guernica, 1937)’ 속의 우는 여인으로 잘 알려진 피카소의 다섯 번째 연인이다. 피카소가 네 번째 연인이었던 마리 테레즈(Marie-Therese Walter)와 사귀고 있을 때, 초현실주의 시인 폴 엘뤼아르(Paul Éluard)의 소개로 도라 마르를 만났고 연인으로 발전했다.

 

도라마르가 유명한 까닭은 단순히 게르니카에 등장해서가 아니다. 피카소가 파리의 작업실에서 게르니카를 그리는 작업과정이 사진으로 남아있는데, 그 제작과정을 촬영한 사람이 바로 그녀다. 그녀는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로, 이 때문에 이러한 촬영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피카소의 연인보다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녀는 오펜하임과도 인연이 깊다. 그녀가 바로 오펜하임의 모피 아침식사를 사진으로 담은 최초의 작가이기도 하다. 피카소가 오펜하임에게 털에 관한 농담을 던질 때 함께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이 작품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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