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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김구가 ‘문화의 힘’ 강조한 속뜻은

소외당하는 문화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때 

기사입력2020-03-03 15:41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하느님이 거듭 묻더라도 선생은 언제나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굳게 대답할 것이라고 했다.

 

청년시절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를 떠돌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평생을 헌신했던 김구 선생이 우리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루고 말겠다며 하나도 대한 독립, 둘도 대한 독립, 셋도 대한 독립이라고 절규하듯 써 내려간 글에 비장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나의 소원 끄트머리에 김구 선생은 우리 민족이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며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라고 했다.

 

외람되지만, 이글을 처음 접했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선생의 이 말씀이 좀 의아스러웠다. 왜냐하면 나라가 힘이 없어서 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으니, 이제라도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부국과 강병을 통해서 힘을 키워 나라를 되찾고야 말겠다는 굳센 결의가 담긴 얘기를 했어야 당연할 터인데,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문화라는 것은 그저 배불리 밥 먹고 나서 여가로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처참하게 남의 나라 식민지배를 받아 노예의 상태에 빠져 있는 마당에 문화를 어째서 이토록 강조하는 것인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국 가흥(嘉興)의 ‘김구피난처(金九避難處)’라는 기념관에 있는 선생의 흉상이다. 1932년 윤봉길의 상해(上海) 훙커우 공원 의거 이후 선생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서 상해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이곳에서 5년여 동안 숨어 지냈다.<사진 제공=문승용 박사>
오늘날 우리나라는 농업, 제조업, 상업과 금융업을 거쳐 4차 산업인 정보, 의료, 교육, 서비스 산업 등 지식 집약적 산업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제는 취미나 패션, 오락 및 레저 산업의 단계로 산업의 영역을 활발히 넓히고 있다. 요즘 K, K드라마, K뷰티 등 우리나라의 문화사업이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열띤 관심을 받으면서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보니, 100년 전 김구 선생이 사랑과 평화의 문화의 힘을 강조한 속뜻을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그렇다면 과거 전통시대에도 문화와 관련된 사업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실은 지금과 같이 영화, 드라마나 대중가요는 없었지만, 공자(孔子)의 유가 학파에서는 오늘날 흔히 일컫는 인문학과 관련한 문화 교육을 매우 중시했다.

 

오늘날 우리는 공자를 사상가이면서 교육가로 여기는 이들이 많지만, 공자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실현하기 위해서 늘그막까지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유세했던 것을 보더라도 공자의 평생 바람은 정치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각 지방의 제후들은 공자가 주장하는 어질고 정의로운 인의(仁義) 정치가 당시 어지러운 세상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자를 정치 일선에 등용하지 않았다.

 

한편 공자는 인의 정치를 펴기 위한 실천 덕목으로 시()의 학습을 매우 중시했다. 논어 자로(子路)’ 편에서 공자는 300편을 외우면서 정사에는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을 가서 홀로 대처하지 못하면 아무리 시를 많이 외운다고 해도 무엇에 쓰겠는가?(誦詩三百, 授之以政, 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雖多, 亦奚以爲?)”라고 했다.

 

계씨(季氏)’ 편에서는 아들인 리()가 시를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하자, 공자는 시를 배우지 않으면 사람으로서 말을 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라고 해, 아들에게 시를 배워야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할 수 있다고 일깨우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는 오늘날의 시 개념과는 약간 다르다. 공자 시대의 시는 악곡과 가사를 함께 갖춘 것으로 대체로 오늘날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필자가 사서삼경(四書三經)과 같은 고전 공부를 하던 지곡서당(芝谷書堂, 경기도 남양주시 소재)의 전경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재정 형편이 어려워져서 교육이 중단된 상태다.<사진 제공=문승용 박사>

 

공자는 현실 정치에서 사회를 조화롭게 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데에 음악의 작용을 매우 중시했다. 예기(禮器) ‘악기(樂記)’ 편에서도 음악은 하늘과 땅의 조화이다(樂者, 天地之和也)”라고 정의했듯이, 음악은 군주가 세상을 조화롭게 통치하는 데에 있어서 갖춰야 할 주요 덕목의 하나로 보았다. 그래서 공자의 유가 학파에서는 학생들이 익혀야 할 학과목으로 육예(六藝) , (), 음악(), 활쏘기(), 수레 몰기(), 글쓰기(), 셈하기() 가운데 하나로 음악을 지정해 가르쳤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시나 음악 방면의 교육을 강조했던 전통이 우리 민족의 문화적 자산으로 이어오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최근 BTS나 한류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쾌거를 올린 일을 계기로 우리 스스로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한 것 같아 국민 모두에게 자부심을 안겨 주고 있다.

 

그런데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CJ그룹의 이미경 부회장이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기까지 봉준호 감독과 그의 영화에 CJ그룹이 여러모로 많은 후원을 했던 것이 큰 힘이 됐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그래서인지 이웃 일본의 어떤 영화비평가는 이번 수상이 한국 최대 부자 기업의 막대한 자금력이 동원돼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평해, 우리 영화에 대한 시기와 부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긴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이념이 뿌리 깊은 사회에서 오로지 영화 자체만을 내세워 아카데미상을 받는다는 것은 아예 가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영화나 K팝 등 대중문화와 같이 그나마 수익을 당장 낼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분야에는 기업에서 많은 지원과 투자를 하고 있지만, 아예 돈벌이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문화 분야에는 기업이나 일반인들조차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고전이나 철학과 같은 인문학 분야는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꾸준한 지원과 관심이 있어야만 문화 저변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대학에서 인문학 관련 전공학과가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라 안타깝기만 하다. 김구 선생이 말씀하신 문화의 힘을 되새기며 소외당하는 문화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때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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