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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것들의 미적인 공존과 평화를 모색하다

자유와 평화를 꿈꾸며…이성자의 미술 

기사입력2020-03-15 10:00
김태현 미술평론가 (elizabeth0711@gmail.com) 다른기사보기

한국전쟁으로 남과 북이 갈라지던 때에 많은 이들은 국가의 분단과 더불어 가족 간의 이별을 경험했다. 이성자라는 미술가 역시 1951년 아들과 이별을 경험하고, 피난길에 슬픔을 극복하고자 프랑스로 이주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파리 6구의 미술가들이 모여 자유로운 분위기로 그림을 배우는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Académie de la grande chaumiere)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접했다.

 

그곳에서는 구상미술과 추상미술을 나눠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성자는 한국에서는 생소한 추상미술에 관심을 갖고,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앙리 고에츠(Henri Goetz)에게서 수학했다. 이성자는 그의 조수로 일하며 추상미술에 열심히 매진했으나 앙리 고에츠가 추구하는 낭만적인 추상미술에 한계를 느껴,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독자적인 미술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신만의 추상미술을 전개시켰다.

 

‘내가 아는 어머니 Une Mère Que Je Connais N.2’,1962, 캔버스에 유채, 130×195cm.<출처=이성자기념사업회>

 

1950년대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경험한 후, 추상미술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였으며, 세계 미술계의 중심은 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에 있었다. 그러나 20세기로 넘어가며 세계 미술계의 중심은 미국으로 변화했는데, 이 변화의 과정에서 미국의 미술 역시 전후 유럽의 미술계 인사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며 추상미술의 개념이 함께 이동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친 후 1950년대 후반부터 일본을 한번 거친 미술이 아닌 서구의 미술을 직접 접하고자 하는 열망에, 미술가들의 서구 이주가 감행되던 시점이었다. 이성자의 미술은 한국 미술계에서 선구자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다.

 

조형 언어의 탄생=이성자는 1965년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가 재개되며 한국에 다시 방문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원활한 연락조차 하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 그리움을 키워갔다. 그러나 그 그리움은 격정적인 감정이 아닌 평온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짧은 붓으로 점을 찍듯 캔버스에 가득하게 층을 이루며 메우고, 그의 기억 속 한국 건축에 등장하는 패턴들을 조형화한 상형문자와 같은 요소들이 등장한다. 이 요소들은 기왓장이 겹쳐진 것을 표현한 듯 하기도 하고, 돌담이나 단청에 새겨진 문양이 연상되기도 한다. 또한 마치 씨실과 날실이 엮여 있듯 붓질을 해 화면을 구성했기에 동시대에 활동한 미술평론가 유준상은 이성자의 그림을 화문석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한국적인 패턴들은 이성자의 음과 양이라는 조형기호가 등장하는 단초들을 보인다. 마치 도장을 연상하게 하는 그의 기호는 이때부터 등장해, 지속적으로 변주를 거치며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또한 이 시기는 이성자가 작품에서 독창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목판화를 시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초월 9월 N.2 76 Intemporel sept N.2 76’, 1976, 캔버스에 아크릴, 나무, 73×60cm.<출처=이성자기념사업회>
이런 시간 속에서 이성자는 한국에 남겨진 자식들에게 밥을 떠먹이는 듯 하는 애상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마음이 표현된 작품들로 프랑스 화단에 등단해 당시 프랑스의 주요 갤러리였던 샤르팡티에 화랑(Galerie Charpentier)의 전속 미술가로 활동하게 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샤르팡티에 화랑은 몽파르나스에서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중심을 이루었던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 화파를 이끄는 곳이었다. 파리에는 각 국가에서 이주한 미술가들이 많이 활동했는데, 에콜 드 파리는 피카소나 모딜리아니, 샤갈과 같은 유명 미술가들이 이 화파에 속해 활동했던 만큼 저명한 그룹이었다.

 

이성자의 유토피아=이성자는 서로 다른 것들을 한 화면에 조화롭게 표현했다. 이성자의 여러 작품에서 독창성이 돋보이는 목판화 방식은 이러한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이성자는 판화용으로 제작된 나무가 아닌 그냥 주변의 나뭇가지들을 수집해, 이를 작품에 활용했다. 작품 제작용 나무의 수집을 위해 원정을 가기도 하고, 무거운 나무들을 직접 운반했으며, 그 나무들을 그대로 작품에 부착해 조형요소로 직접 활용했다.

 

보통 판화는 찍고 난 판넬을 강조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이성자의 판화는 이러한 과거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창작물이다. 이러한 나무는 평면성이 강조되던 과거 자신의 화풍에서 벗어나 입체적으로 변화하게 되기도 했다. 이성자의 나무는 조명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자와 더불어 화면의 여러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품 내 나무의 직접적인 활용을 비롯해 후기 작품으로 접어들며 작품 내에 스프레이 기법이 도입됐는데, 이 분출된 점들은 나무와 더불어 화면에 더욱 신비로운 느낌으로 연출된다. 드리핑 된 점들 역시 마찬가지 효과를 주고 있다. 이성자는 치밀하게 그렸던 과거에서 나아가 우연적인 효과를 함께 연출하며, 지속적으로 서로 다른 다양한 것들의 미적인 공존과 평화를 모색했다.

 

이성자는 동양인이면서 서양에 살고 있으며, 생활방식부터 학습방식까지 모든 것들이 그가 동양에서 삼십 년간 살아온 세월과 다른 모습이기에 서양의 삶 속에서 무한한 충돌을 경험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을 자신의 화폭 위에, 자신이 꿈꾸는 모두가 평화로운 세상을 표현했다.

 

이성자는 자신의 작품에서 미술의 기법과 추상이나 구상과 같은 장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글이든 나무든 그 성질에 관계없이 화폭 내에서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이성자 미술의 특징이다.

 

이성자는 프랑스의 문인 미셸 뷔토르(Michel Butor)와 협업을 통해 시화나 설치미술과 같은 다양한 예술적 도전을 시도하는 것에도 서슴지 않았다. 그 어떤 것이든 이성자의 마음과 손을 거치면 조화로운 세상,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이성자의 선구자적이고 자유로운 미술적 시도는 동서양의 많은 이들에게 귀감을 주었으며, 이것은 그는 없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의 미술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태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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