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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제작기술 뛰어난 조선, 왜 자기를 팔지 못했나

도자기와 중국을 차이나(China)로 부르게 된 사연 그리고 사농공상 

기사입력2020-05-22 10:16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요즘 한창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라는 문자가 각 카드사로부터 속속 들어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 재난지원금을 전체 국민 가운데 몇 퍼센트까지 줘야 하느냐는 문제 때문에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재난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으면 스스로 기부하는 것으로 보자는 전제를 달고 일단 전체 국민에게 주기로 했다.

 

그런데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했던 소득수준 70%의 언저리에 있는 국민들 가운데 재산이 좀 있다 보니까, 이번에는 내가 재난지원금을 신청해도 되는지 아니면 그대로 기부해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에 빠진 이들도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략 70% 이상의 소득수준인 사람을 중산층 이상의 부자(富者)라고 본다. 그렇다면 부자는 어떤 사람일까? 사전적인 의미로 보자면, 부자는 돈이나 그 밖의 값나가는 부동산 같은 재물(財物)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이라고 한다.

 

부자의 ()’자를 보면, 집이라는 뜻의 ()’자 밑에 그릇이라는 뜻의 ()’자가 그려져 있다. 보배라는 뜻의 ()’자에도 집안에 구슬[]과 화폐를 의미하는 조개 패()자와 그릇을 의미하는 ()’자가 있다. 이것으로 보아 옛날 중국인들은 집에 구슬이나 화폐 이외에도 그릇을 많아 가지고 있어야 부자라고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어디를 가나 그릇이 널려 있다 보니 그깟 그릇을 좀 가지고 있는 이가 부자라는 것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지금 사람들은 그릇이 귀한 줄 모르고 산다고도 할 수 있다.

 

18세기까지 세계시장의 주요한 교역품이었던 중국의 청화백자(靑畫白磁)다. 중국은 오랫동안 유럽과의 청화백자 교역을 통해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지만, 이것을 산업화해 더욱 발전시키지 못했다. 결국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반식민지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거꾸로 일본은 조선을 통해서 자기 만드는 기술을 받아들여 더욱 세련되게 발전시켜서 일본 근대화의 기틀로 삼았다.<사진=문승용 박사>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상편에는, 중국 상고시대 이상적인 임금으로 추앙을 받는 순()이 임금으로 즉위하던 시절을 묘사해 직접 밭을 갈고 곡식을 심으며 질그릇을 굽고 물고기를 잡고 나서 임금이 되기에 이르렀다(自耕稼陶漁, 以至爲帝)”라고 했다. 이처럼 맹자는 원시 인류가 돌을 깨고 갈아서 농사를 짓고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어서 물건을 담아 보관할 수 있는 토기(土器)를 만들면서 인류문명이 비롯된 것이라고 여겼다.

 

이어서 맹자는 고자(告子)’ 하편에서 백규(白圭)라는 이와 세금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면서 질그릇이 모자라도 역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陶以寡, 且不可以爲國)”라는 말을 할 정도로 그릇은 나라 살림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주요한 물품이었다고 보았다.

 

실제로 그릇은 인류문명과 함께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중국은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서 그릇과 깊은 인연을 맺으면서 역사와 문화가 발전해 온 나라다. 중국이라는 나라 이름과 도자기를 차이나(China)라고 표기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 사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은 도자기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색깔이 그윽하게 가미된 신석기 시대의 채색토기로부터 당()나라의 화려한 당삼채(唐三彩)를 거쳐서 송()나라 때 완성한 자기(瓷器)는 최고의 예술품으로 동서양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자기는 도기(陶器)와 자기(瓷器)를 아울러서 부르는 명칭이다. 도기는 약 800도에서 1000도가량의 온도에서 구워지는 것이고, 자기는 고령토로 빚어 약 1300도 이상의 온도로 끌어 올린 가마에서 굽는 것이다. ,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항아리 같은 질그릇은 도기이고, 경매장에서 수백억의 가격에 팔리거나 국보나 보물로 지정돼 박물관의 전시실 안에 모셔져 있는 것이 자기다.

 

고려시대에 우리가 개발한 상감청자(象嵌靑瓷)다. 중국의 청화백자와 달리 고려의 도공은 상감기법이라는 기술을 개발해 독특한 예술적 정취를 이뤘다. 조선과 중국, 일본이 각기 자기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근대의 길목에서 각기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출처=국립중앙박물관>
일찍이 도자기는 중국과 서역을 잇는 실크로드를 통해서 유럽으로 전해졌고, 15세기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항해한 이후 스페인이 약탈했던 많은 금과 은이 중국의 자기를 사는 데에 쓰였을 만큼 유럽 사람들이 자기를 갖고 싶었던 열정은 대단했다. 중국의 자기는 인도의 후추와 더불어서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열게 했고, 유럽이 근대 산업국가로 발전해 가는 길목에서 중요한 교역 물품이었다.

 

실제로 17~18세기에 유럽에서 자기를 중심으로 중국 문화에 대한 열풍이 불었는데, 이것을 시누 아주(Chinoiserie)라고 한다. 이후에는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 일본풍(Japonium)이라는 일본 문화가 크게 유행했는데, 이때에도 역시 일본 자기와 미술품 등이 유럽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후 일본이 근대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틀도 이때 다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근대국가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까지 할 수 있는 자기의 제작기술은 임진왜란 때 잡아간 우리 조선의 도공들로부터 전수받은 것인데, 어째서 더 뛰어난 자기 제작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은 자기를 만들어서 유럽의 여러 나라에 가져다가 팔아 이후 일본처럼 근대국가로 발전해 나아가는 계기로 삼지 못했던 것일까?

 

물론 자기 하나 때문에 조선이 근대국가로 발전해 나아가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잡혀간 도공이나 인쇄공 같은 기술자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사신으로 갔을 때, 많은 도공들이 기술자들을 천시하는 조선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자신들을 우대해 주는 일본에 그대로 남았고, 결국 이들이 일본에서 자기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오늘날 우리 대학에는 이공계 학과나 인문계 학과를 막론하고 졸업 후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 준다고 해, 많은 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마치 관직에 오르는 것을 중시하고 기술자를 천시하던 조선시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풍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오늘날 우리의 젊은이들은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편안함만을 따지지 말고, 자신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곰곰이 잘 따져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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