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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장르를 넘어서 한국화의 신기원을 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힘…박래현의 미술 

기사입력2020-06-23 10:44
김태현 미술평론가 (elizabeth0711@gmail.com) 다른기사보기

미술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영향을 받아 어떻게 양식이 변화했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미술사를 기술하며 매우 중요한 점이다. 한국미술의 경우 화선지와 먹을 주요 재료로 한 채색화가 주를 이루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학을 하러 가는 이들에 의해 미술의 경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박래현은 한국미술의 중요한 과도기에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 미술을 선보이며, 그 과정을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위치의 미술가다.

 

박래현은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일본화과를 졸업한 후 일본에서 활동을 하다가, 태평양 전쟁을 경험하며 한국에 귀국해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으며, 1969년 미국으로 건너가 판화를 배워 새로운 경향의 미술을 선보였다. 박래현은 새로운 미술을 수용하는데 있어 거리낌이 없었으며, 이후 체화된 한국성을 더한 새로운 미술을 선보이며 미술세계를 개진시켜 나갔다. 박래현은 특유의 조형감각으로 무장해, 국가와 장르를 넘어선 무한한 도전을 통해 한국화의 신기원을 열어간 것이다.

 

‘노점’, 종이에 수묵담채, 267×210cm, 1956.<출처=국립현대미술관>

 

한국화의 새로운 시도=박래현의 대표작 중 하나인 노점을 살펴보면, 이전의 사실적으로 묘사하던 서화와는 다르게 감각적으로 형태를 표현했다. 또한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여인들의 모습은 기존 남성 미술가들과는 다르게, 도시적인 이미지가 부각돼 있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관념적인 여성관을 강요받은 과거의 남성 미술가들은 여성이라는 대상을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나 젖먹이는 모습, 빨래하는 모습 등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박래현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혹은 의지하는 존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서구인들의 체형을 닮았으며, 머리 모양과 옷차림에서 표현된 날카로운 직선의 느낌과 배경에 표현된 구축적인 선의 모습과 색감은 도시를 연상하게 하며 그 당시의 현대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화면 뒤쪽에 쪽 찐 머리를 하고 흰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과 대비되며 당시 변화하고 있는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인 하얀 비둘기역시 마찬가지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신체 비율을 왜곡해 손가락과 팔, 다리를 늘려 서구적인 느낌을 전해주고 있으며, 화려한 색감의 옷과 머리 모양 그리고 간결히 표현된 얼굴에서 박래현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유추할 수 있다.

 

‘하얀 비둘기’, 종이에 채색, 186×96cm, 1962.<출처=국립현대미술관>
박래현은 그 당시 여성들에게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표현하며, 그것을 당시 현대여성들의 모습으로 해석했다. 박래현은 서정적이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작품을 선보이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한국미술이 전통 서화에서 유화로 흐름이 바뀌고, 또 사실화에서 추상화로 변모하는 과도기적인 위치에서 많은 의미가 있다.

 

다양한 매체로의 확장=박래현은 1967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남미와 멕시코 등지를 여행하며 새로운 미술을 목도했다. 이후 1969년 미국으로 이주해 밥 블랙번 연구소와 프랫 그래픽 센터에서 판화와 태피스트리를 배웠다.

 

도미 이후 박래현은 추상미술로 전환해 장르를 오가는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작품의 형상 역시 세포의 분열을 연상케 하거나 자연의 형상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추상미술로 변화했다. 유기적인 형상들이 자유로이 함께하는 모습은 또 다른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1970년대까지도 우리나라는 장르에 대한 구분을 엄격하게 규정지었다.

 

그러나 박래현은 회화에서 도자기까지 다양한 미술의 장르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판화 역시 한 가지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석판화, 동판화, 메조틴트 등 다양한 판화의 기법을 활용했으며, 작품에 실이나 단추와 같은 오브제를 부착하고 종이를 넘어선 목판과 석판까지 활용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넓혔다.

 

미국 체류 시 인디언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던 박래현은 체화된 한국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흥미로운 작품들을 선보였다. 도미 이전 모던한 형식으로 구상화를 그리던 그는 다양한 패턴을 작품에 도입해 자신만의 형식을 창조한 것이다. 박래현의 도전은 한국화를 넘어 표현의 자유를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미술가 박래현 다시보기=박래현은 김기창의 부인이자 네 아이의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창작활동을 선보인 미술가 중 한 명이다. 결혼과 출산은 여성 미술가들에게 활동을 지속하는데 큰 장애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까지도 훌륭한 기량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이후에는 창작활동이 드물어지는 여성 미술가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영광’, 종이에 채색, 134×168cm, 1967.<출처=국립현대미술관>

 

박래현은 꾸준히 부부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부부가 함께 전시하는 2인전은 관람객에게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미술가가 어떠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그림을 그렸는지 비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 존재했으나, 대부분의 사람이 당시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들 때문에 박래현의 작품은 평가 절하되곤 했었다.

 

그래서 박래현이라는 이름 옆에는 늘 김기창의 부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김기창의 부인이 아닌 박래현으로서 미국 체류 이후 단독 개인전을 선보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간암 투병을 하다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박래현의 미술은 화선지에서 도자기까지 끊임없이 도구에 대한 도전을 했고, 대상화되지 않은,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여성의 모습을 당당하게 표현한 선지자였으며, 미술의 폭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 것을 인정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태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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