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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에 최선 다해야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기사입력2020-07-23 14:19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젊은 운동선수, 유력 정치인 그리고 원로 군인이 각각 세상을 떠나면서, 그들이 어째서 죽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나이 스물을 갓 넘긴 젊은 운동선수나, 앞으로도 우리 사회를 위해서 더 많은 활동을 할 것이라고 여겨지던 유력 정치인이나, 100세의 나이로 천수를 다하고 죽은 원로 군인이나,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논란을 보고 있자니 누구든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단 한 마디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인간의 먼 조상이 어디에서 와서 오늘날 우리 인간이 지구에 살게 됐는지 아직까지는 과학적으로 밝히기 어려워 신비하기만 할 따름이지만, 인간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합을 통해서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는 것은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그 과정이 그다지 의심스럽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이 이 세상을 다 살고 죽게 되면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많은 이들이 궁금해 했고 여러 방면에서 논의해온 문제다. 공자(孔子)가 살았던 시대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운 것인지와 같은 여러 문제에 관해서 탐구하던 때였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때 비로소 인문시대가 도래했다고 본다.

 

공자의 어록집인 논어(論語)에도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한 몇 구절이 있다. ‘선진(先進)’ 편에서 공자의 제자인 계로(季路)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묻자, 공자는 인간의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서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고 대답했다. 이 대화에 앞서 계로는 공자에게 귀신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때에도 공자는 사람도 제대로 섬길 수 없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未能事人, 焉能事鬼)”고 대답했다.

 

술이(述而)’편에서 공자가 괴력난신(怪力亂神) 즉 괴이하고, 억지로 힘을 쓰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과 ()’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것을 들어서 공자의 유가(儒家) 사상에서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세상이 있다고 여기는 내세관(來世觀)이나 세상 만물을 창조하고 그 이치를 주재한다는 조물주로서 신()을 부정했다는 식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공자의 묘다. 공자가 죽은 이후 오늘날까지 2500년 동안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한 평가 역시 각 시대마다 큰 변화가 있었다. 지난 1960년대 문화혁명 시기에는 홍위병들에 의해서 묘지가 파헤쳐지는 수난을 겪었는데, 오늘날 중국 정부에서는 공자 사상을 다시 평가하는 작업이 한창이다.<사진제공=문승용 박사>
그렇지만 공자와 계로가 주고받은 대화를 가만히 보자면, 인간이 죽은 다음에 가는 세계인 내세가 없다고 공자가 분명하게 부정했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공자는 사람이 죽은 다음의 세계가 어떠하냐는 것에 대해서 알 수 없다고 대답한 것이지, 죽은 다음의 세상이 없다라고 단정해 말한 것이 아니다. 다만 현실 세상에서 인간을 받드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지, 조물주로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無神論)의 입장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공자가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 괴력난신(怪力亂神)’에서 신()이란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주가 아니라 신비해 검증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로서 귀신의 조화와 같이 현실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현상들을 말하는 것이다.

 

공자는 창조주 혹은 조물주가 우주 만물을 창조했다는 식의 종교적인 입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현실사회에서 바람직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의 도리 즉 천도(天道)를 성실하게 따라야 한다고 보았을 뿐이다. 왜냐하면 죽은 다음에 가는 세상이나 조물주와 같은 것은 현실에서 검증할 수 없으니 실재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공자는 우주에 변하지 않는 천지만물의 정연한 운행 원리가 있으며, 인간 역시 그러한 도리를 깨닫고 실천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유가를 인간중심의 사상체계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죽음과 관련해 이인(里仁)’ 편에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 可矣)”라고 했다. 이것은 마치 천지만물의 이치인 도를 깨우치고 나면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한 만큼 죽음을 초탈하고자 하는 비장한 의지를 밝힌 것이다.

 

태백(泰伯)’ 편에서 독실하게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목숨을 걸고 도를 온전하게 지키고자 한다(篤信好學, 守死善道)”라고 했고, ‘안연(顏淵)’ 편에서는 예로부터 누구나 죽는 것이로되 백성들에게 신의를 얻지 못하면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라고도 했다.

 

공자와 그의 자손들의 묘역으로서, 지극히 뛰어난 성인의 묘역이라는 뜻으로 ‘지성림(至聖林)’ 또는 ‘공림(孔林)’이라고 부른다. 이때의 림(林)은 ‘수풀’이라는 뜻 이외에 묘역(墓域)이라는 의미다.<사진제공=문승용 박사>

 

이처럼 공자는 세상 만물의 이치인 도를 깨우치고 그 도를 바르게 세우며, 백성들과의 신의를 지키는 것을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공자가 인간의 생명을 가벼이 여겨 자신의 목숨을 쉽사리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던 것도 아니다.

 

공자는 술이(述而)’ 편에서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황하를 그냥 건너다가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과는 내가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라고 한 것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겨야지 세상일에 무모하게 나서다가 죽음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어서 공자는 반드시 어떤 일에 임할 때 조심하고 신중하게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할 것이다(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라고 했던 것이다.

 

불교(佛敎)에서 전생에 지은 선악(善惡)에 의해서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 지은 선과 악에 따라 내세에서의 행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말하는 인과응보(因果應報) 역시 인간이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로 전생의 업보(業報)를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행복한 다음 세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도 석가모니도 인간이란 모름지기 죽은 다음의 저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고 한 것이다. 이번 몇몇 유력 인사의 죽음을 계기로 현세에서 최선의 삶을 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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