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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슬픈 역사적 장면들을 반영한 표현들

Crime Metaphor ②bootleg, branded as, whistleblower, crack down on 

기사입력2020-08-24 17:42
이창봉 객원 기자 (cblee@catholic.ac.kr) 다른기사보기

이창봉 교수(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미국 영어의 범죄(crime) 관련 은유 확대 표현들을 들여다보면, 미국 역사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영어로 불법 복제해서 만든 제품을 가리킬 때 ‘bootleg’라는 형용사를 쓴다. 구체적인 예로 불법 복제한 CD‘bootleg CD’라고 한다. 미국 역사 상 1919년에서 1933년까지의 기간을 금주법시대(Prohibition Era)라고 부른다. 엄격한 청교도주의(Puritanism)의 영향 아래 이 시기에 미국 사회에서는 모든 주류의 양조와 판매 그리고 소유와 소비가 불법이었다. 무릇 어느 사회나 그렇듯 어떤 것을 불법으로 규제해 하지 못하게 하면, 더욱 그것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기듯이 이 시기 동안 밀주 제조와 판매가 더 성행했었다고 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긴 장화를 신고 그 윗부분에 납작하게 생긴 술병(flask)에 밀주를 담아서 숨겨 다니곤 했는데, 이 은밀한 관습의 상황적 뜻이 은유 확대돼 ‘bootleg’불법으로 제조한의 뜻을 갖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의 습관이 그대로 이어져서 미국의 애주가들은 요즘에도 바지 뒤 엉덩이 주머니에 납작하게 생긴 병에 담긴 위스키(flask whiskey)를 가지고 다니며 마신다는 점이다. 사실 불법으로 제조한 제품을 유통하고 판매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인데, 요즘 뉴스를 보면 경찰이 단속에 나서서 많은 불법 복제물을 압수(confisticate)했다는 머리기사를 종종 접하게 된다.

 

Police confisticate 8000 bootleg DVDs.

 

영어에서 어느 제조회사의 특정 상품 혹은 상표를 ‘brand’라고 한다. 본래 가축을 기르는 주인들이 자기 소유의 가축 표시를 하기 위해서 동물의 표피에 인두(hot iron)로 표시를 한 것이, ‘brand’가 이런 뜻을 가지게 된 역사적 배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옛날에는 특정 죄를 지은 죄인들에게도 그 죄를 표시하기 위해 낙인을 찍었다고 한다. 특히 미국 역사에서 흑인들을 노예화해 주인들이 마치 집안에 기르는 가축처럼 사적으로 소유하고 다스리던 부끄러운 시대가 있었다. 이 때 주인들은 노예가 도망을 쳤을 때 자기 소유의 노예임을 주장(claim)하기 위해서 노예의 어깨나 허벅지 등에 인두로 낙인 표시를 하는 잔인한 짓도 했다고 한다. 이 역사적 배경을 뒤로해 미국 영어에서 ‘branded as ~’ 는 한국어의 ‘~로 낙인찍히다와 비슷한 매우 부정적인 은유 확대의 뜻으로 잘 쓰인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친구들 사이에서 신의를 저버리는 일을 하고 난 후, 배반자로 낙인찍히게 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할 수 있다.

 

Ever since the incident, I have been branded as a traitor among my friends.

 

미국 역사에서 흑인 노예의 어깨나 허벅지 등에 인두로 낙인 표시를 하는 잔인한 짓도 있었다. 이 역사적 배경을 뒤로해 미국 영어에서 ‘branded as ~’ 는 한국어의 ‘~로 낙인찍히다’와 비슷한 매우 부정적인 은유 확대의 뜻으로 잘 쓰인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사실 어느 조직이나 사회에서 낙인이 찍히듯 집단 따돌림(이른바 왕따)을 당하는 일은 너무도 괴로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정의 구현을 위해서 이런 괴로움을 무릅쓰고 스스로 이런 고초를 겪게 되기도 하는데, 바로 자신이 소속된 회사나 단체 등에서 내부 비리가 있을 때 이것을 공익을 위해서 외부에 폭로했을 때다. 영어로 내부 고발자를 ‘whistle blower’라고 한다.

 

이 표현은 본래 경찰이 범죄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거나 범죄자의 뒤를 쫓으면서 주위에 위험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호루라기를 부르는 관행에서 파생된 은유 확대 표현이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던 범죄나 불의를 공익을 위해서 밖으로 폭로해 널리 알리는 취지가 같은 맥락의 의미를 전달함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Wikipedia’에 따르면, 미국 역사에서 1989년에 정부 내의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제정되었다는 사실이 다음과 같이 서술돼 있다.

 

The Whistleblower Protection Act of 1989 was enacted to protect federal employees who disclose "Government illegality, waste, and corruption" from adverse consequences related to their employment.(1989년의 내부 고발자 보호법은 정부의 불법, 낭비, 부패를 신고하는 중앙정부 공무원들을 자신의 고용과 관련된 불리한 처분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영어에서 경찰의 단호한 단속을 ‘crackdown’이라고 하는데, 이 표현 자체도 미국의 노예제도 역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crack'벌어진 틈새 혹은 균열이라는 뜻인데, 동사로서는 그런 갑작스런 균열 소리처럼 날카롭게 갈라지는 소리를 내다는 뜻도 있다.

 

미국 역사에서 서부 개척시대는 물론 흑인 노예제도가 한창일 때까지도 말이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본래 말을 빨리 달리게 하기 위해 채찍질을 하면 날카롭게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게 되는데, 노예제 성행 시기 동안 백인 주인들이 흑인 노예들에게도 말을 다루듯 채찍질을 했다고 한다. 일을 게을리 하는 노예를 직접 때리기도 했지만, 땅 주변을 때리면서 겁을 주곤 했다고 한다. 바로 이 모습을 그린 동작이 ‘crack down on ~’ 표현인데, 이 이미지의 의미가 확대돼 현대 미국 영어에서는 경찰 등 권위와 힘을 가진 기관이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대규모 단속이나 소탕 작전에 돌입했을 때 이 표현을 널리 쓴다.

 

예를 들어서 얼마 전 ‘n-번방 사건이 일어난 이후 21대 국회에서 디지털 성범죄를 더 철저히 단속하고 처벌하기 위한 법이 통과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신문 머리기사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예를 발견하게 된다.

 

Laws toughened to crack down on digital sex crimes

 

미국 사람들의 대부분은 ‘crack down on ~’이라는 말을 자주 쓰면서도 말에게 채찍질을 가하거나 흑인 노예를 채찍으로 때리거나 위협하는 잔인한 장면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이것은 마치 우리 한국어에서 죽음을 뜻하는 골로 간다라는 말이 한국 전쟁 중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량살상하기 위해 골로 몰아넣고 총질을 한 뼈아픈 역사의 장면을 반영하고 있음을 모르고도 이 표현을 무의식적으로 자주 쓰는 것과 같다.

 

이렇듯 언어는 말없이 평범한 역사적 사건들은 물론이고 매우 아프고 슬픈 역사적 장면들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언어공동체에서 화자들 사이에 이런 표현들의 역사적 배경이 알려져서, 이 표현들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 역사적 순간에 고통을 당한 사람들의 상처를 건드려서 아픔을 준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는 운동이 일어나곤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영어의 ‘crack down on ~’ 표현도, 한국어의 골로 가다표현도 아직까지는 그 정도로 세심하고 성숙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이번 글을 통해 우리는 한 사회나 국가의 역사 흐름 속에서 있었던 파편적 사건들의 조각이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서, 그것이 현재의 언어와 문화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을 알게 된다. 언어는 역사의 흔적을 담은 기록이자, 사람들의 생각과 그들이 살아 온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이창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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