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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구멍 뚫어 몰래 보면서 상상했던 ‘창호지’의 경험

세상을 보는 방법…정창섭의 미술㊤ 

기사입력2020-10-14 17:52
김태현 미술평론가 (elizabeth0711@gmail.com) 다른기사보기

‘백의 집결’, 130.5×162.5cm, 1961.<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늘날 컴퓨터 앞에서 시작 버튼을 누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우를 만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창문의 개념을 가지고 와, 새로운 창이 열리면 다른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직관적이고 편리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창문에 대하여=이러한 창문의 개념은 이전부터 공간의 연속성을 차단하고 분리시키지만, 완벽하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각과 현존하고 있는 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창문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건물이 있어야 하는데, 건물 안은 외부 환경과 상관없는 실내의 공간이다. 실내의 공간에서 창밖을 바라본다면 같은 시간이지만 체험하는 것은 다른, 현존의 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자연의 빛과 바람, 공기와 같은 움직임은 원시인들의 동굴 벽화부터 인간에게 창조의 원천이 되어왔다.

 

한국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 이전까지 창문에 한지를 덧대어 썼다. 이러한 창문의 기술은 투명한 유리 창문과는 다른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한지는 완벽한 차폐가 불가능하기에 내·외부의 공기를 공유하게 해 주었고, 완벽하게 바깥을 볼 수 없었으며 그림자로 창밖의 형상을 짐작하게 했다.

 

오늘날에는 영화나 소설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창호지의 경험은 구멍을 뚫어 몰래 관찰하는 관음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밤에는 안팎이 바뀌어 실내의 불빛으로 창호지에 생기는 그림자로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을 유발하기도 했으며, 크게 구멍 난 종이는 가난의 상징처럼 표출되는 등 다양한 은유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

 

정창섭의 창문=1927년 태어난 정창섭은 한지로 된 창문을 온전히 경험한 마지막 세대다. 정창섭이 경험한 창문의 변화에 대한 문화적 흔적은 그림의 소재로 활용돼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표현했으며, 재료적 도구로써 한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정창섭은 대학교 4학년에 한국전쟁을 경험하며 인간에 대한 끔찍한 만상을 목격했다. 이러한 전쟁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고, 정창섭 역시 당시 젊은 세대가 주도하던 추상미술로 자신의 화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유행하던 어떠한 단체에 소속되어 미술활동을 이어간 것이 아닌, 자신의 기법을 연구하는데 치중했다. 이러한 흔적은 그의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유화물감의 질감과 붓자국과 같은 흔적에 집중해 표현하는 것이 아닌, 물감에 테라핀유를 많이 섞어 묽게 활용했다. 한국화의 발묵 효과도 마찬가지 기법인 물의 농담을 달리해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창섭의 그림에서 점차 구체적인 형상은 사라지고 아예 추상적인 도형들이 등장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태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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