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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법 실행’ 믿음있어야 나라가 굳건하다

유전무죄(有錢無罪)·유권무죄(有權無罪) 씁쓸…위정자는 약속 지켜야 

기사입력2020-11-03 16:58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자에서 물 수()’평등의 의미이고, ’갈 거()’는 처벌한다는 의미다. 예로부터 법이란, 죄를 지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처벌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다. 이와 같은 인식은 서양에서 정의의 여신인 디케(Dike)가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동서양에서 똑같이 사회의 정의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는, 죄를 저지르면 누구나 고르게 법을 적용해 공정하게 처벌하는 것이 정의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정의(正義)를 참된 이치 또는 올바른 도리라고 풀이하는데, 본디 정의에서 바를 정()’자는 고르다라는 뜻의 한 일()’자와 흔들이지 않고 멈춰있다는 의미의 그칠 지()’자가 합해 이뤄진 글자다. 그리고 의로울 의()’자는 양()자와 도끼를 의미하는 나 아()’자가 결합된 것으로, 도끼로 양을 잡아서 사회 구성원들끼리 고기를 고르게 나누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는 인식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역대 어느 왕조 가운데 법이 공정하게 적용되던 때가 있기는 했던 것일까?

 

중국 고대의 변혁시대였던 B.C. 8세기에서 B.C. 3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에 합리적이며 성문화된 법을 통해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학설을 편 학파가 한비자(韓非子)의 법가(法家)이다.

 

한비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당시 약소국이었던 한()나라의 공자(公子) 출신으로서 실력에 비해서 정치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그랬기 때문에 한비자는 오히려 일찍이 젊은 나이에 저술에 힘써서 그때까지 내려오던 법가사상에 관련된 여러 이론을 집대성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비자는 끝내 친구인 이사(李斯)의 모략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던 비운의 사상가이기도 하다.

 

‘의로울 의(義)’자는 양(羊)자와 도끼를 의미하는 ‘나 아(我)’자가 결합된 것으로, 도끼로 양을 잡아서 사회 구성원들끼리 고기를 고르게 나누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는 인식에서 만들어진 글자다. <제공=문승용 박사>
당시 중국은 7개의 나라로 쪼개져서 치열하게 서로 치고받던 시대였다. 너른 농토를 가져 경제적으로 풍요했던 남쪽의 초()나라나 공자(孔子)가 이상적인 인물로 가장 흠모했던 주공(周公) ()이나 강태공(姜太公)이 땅을 하사받아 다스려 문화적으로 크게 융성했던 제()나라와는 달리 중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진()나라는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비교적 척박한 지역이었다.

 

이처럼 다른 지역에 비해 낙후해 있었던 진나라에 위()나라 출신인 상앙(商鞅:?~B.C. 338)이 재상으로 등용돼 법치체계를 세워 나라를 다스리려고 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진나라 사람들은 법으로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긴 그때에는 나라의 지배계급이라고 하는 이들이 가을 수확철이 되면 세금을 거둬가고, 이웃 나라와 전쟁이 벌어지면 백성들을 강제로 징발해서 전쟁터로 내몰아 죽게 했던 것 말고, 나라가 백성들을 편하게 먹고 살게 하기 위해서 베푸는 정책이 뭐 하나 제대로 없던 때였으니, 나라에서 무언가 정책을 실시한다고 하면 일단 백성들은 나라에서 자신들을 괴롭히기 위한 꼼수를 펴는 것이려니 여기던 때였다.

 

상앙은 그러한 진나라에서 재상이 되어 법률체계를 세워야겠다고 고민을 하던 끝에, 도성 남쪽 문에 커다란 나무 기둥 하나를 세우고는 누구든지 이 기둥을 북쪽 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10()을 주겠다고 포고문을 붙였다. 처음에는 이런 하찮은 일을 한 대가로 나라에서 이처럼 많은 상금을 주리라는 것을 믿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무도 선뜻 나서서 나무 기둥을 옮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무 기둥을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50()을 주겠다고 다시 포고했고, 어떤 사내가 그 기둥을 북문까지 옮겼다. 상앙은 약속대로 그에게 50금을 내렸고, 그런 다음에 상앙은 드디어 법령을 공포해 나라에서 정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보였다. 이것을 가리켜서 나무 옮기는 것으로 백성들을 믿게 했다고 해 이목지신(移木之信)이라고 한다.

 

진시황제가 죽은 다음에까지 호위하고자 했던 무사들이 하나 같이 머리에 투구를 쓰고 있지 않은 이유는 목숨을 바쳐 진시황제를 지켜야겠다는 굳센 의지를 보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처럼 목숨을 걸고 황제를 지키면 법에 의해 자신의 가족에게라도 반드시 보상이 주어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공=문승용 박사>

 

이것은 바로 나라에서 정한 법령을 지키면 누구에게나 상이 주어지지만, 거꾸로 법을 어기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인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나라에 법이 집행되자 진나라에는 도적들 자취가 사라지고 백성들의 삶이 한결 윤택해졌고, 이때로부터 진나라는 이후 통일왕조의 기틀을 다지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안에서 발굴된 병마용갱에는 진시황제가 죽은 다음에까지 호위하고자 했던 무사들이 하나 같이 머리에 투구를 쓰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목숨을 바쳐 진시황제를 지켜야겠다는 굳센 의지를 보인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 백성들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다해 싸우면 법에 의해 보상이 주어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진시황제가 왕조국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됐던 것이다.

 

이처럼 나라의 법이 공정하게 실행된다는 믿음이야말로 나라를 굳건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인데,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돈이 있으면 죄가 없다는 뜻의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말이 우리 모두를 씁쓸하게 하더니, 요즘에는 권력이 있으면 법을 어기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유권무죄(有權無罪)라는 말까지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다.

 

믿을 신()’자가 사람 인()’자와 말씀 언()’자가 합해져 있는 것에서 보듯이, 믿음이란 사람의 말로부터 비롯된다는 의미다. 특히 나라의 위정자들이 자신에게는 물론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이러저러한 논리를 대며 약속을 뒤집는 일이 잦으면 국민의 신뢰를 잃고 나라의 근간도 흔들리게 될 것이니, 나라 정치를 맡은 위정자는 국민과의 약속을 미덥게 잘 지키는 것에서부터 나라의 건강한 내일이 보장된다는 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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