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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한국의 정서를 그려온 한국 미술계의 버팀목

빛으로 수놓은 자연…이대원㊦ 

기사입력2020-11-23 10:28
김태현 미술평론가 (elizabeth0711@gmail.com) 다른기사보기

경복고교 시절 일본인 미술교사의 권유로 유화 물감을 구해 그림을 시작한 이대원은, 아버지의 반대로 미술대학 입학이 무산되고 졸업 후에는 회사에서 일했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지속돼 1957년 개인전을 개최했고 이후 1959년 김환기, 윤호중, 장우성과 함께 반도화랑의 운영을 맡았다. 이후 미술대학 교수와 대학 총장을 역임하며 든든한 미술계의 버팀목이 됐다.

 

‘뜰’, 캔버스에 유채, 80.5×100cm, 193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한국 미술계의 버팀목=오늘날 갤러리의 원형이 되는 반도화랑은 교통부 소속의 반도호텔’ 1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미술품을 사고파는 작은 화랑들이 생겨났었는데, 모두 운영의 어려움으로 금방 사라졌다.

 

1957년 시작된 반도화랑은 생존 미술가들의 미술품만을 판매해주는 형식으로, 당시 체류하고 있던 외국인들을 중심으로 한 서울 아트 소사이어티가 결성됐는데 이들을 주축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그들이 귀국하며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처하자, 미술가들이 위원회를 구축해 회생 방안을 강구했고 아시아 재단의 후원 하에 운영을 지속할 수 있었다.

 

당시 영어가 가능했고 아시아 재단과 친분이 있던 이대원은 1967년까지 화랑 운영에 참여했으며, 나름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미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힘을 썼다.

 

비록 이러한 시도를 한 반도화랑은 오늘날 사라졌지만, ‘반도화랑에서 1961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박명자는, 이후 오늘날 갤러리 현대로 독립해 한국미술 발전의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호텔 내에 위치하는 갤러리의 개념은 국내에서 지속해서 확대돼, 한국 미술계에 다양한 시도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또한 화랑이 상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미술인들에게도 모임의 장소가 되고, 일반인들의 문화 인식도 고취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화단의 신사=이대원은 미술가로서 작품 창작활동뿐만 아니라 미술품의 유통 그리고 교육까지 다방면으로 미술계에서 활동했다.

 

그의 작품들 속 농원에서 피고 지고 또 꽃피우고 열매 맺는 일상들이 반복되며 발전하는 자연의 모습처럼 한국 미술계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에 기여했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미술을 전개해 나가는 일에 누구보다 매진하며 한국의 정서를 표현했다.

 

이러한 그의 영향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미술가가 그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화풍의 작품을 전개하고 있다. 늘 호주머니에 초콜릿을 넣고 다니며 지인들에게 나눠 주던 생전의 마음 씀씀이처럼 오늘날까지도 많은 미술가가 그의 영향력 아래 활동하고 있으며, 또한 무한히 반복하며 자라는 자연의 일상처럼 그가 세운 토대 아래 한국 미술계도 발전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태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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