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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수많은 말이 넘쳐나는 세상…소중한 자산 ‘말하기’를 값지게 누려야 

기사입력2021-03-05 11:19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지난번 글에서, 공자가 말을 꾸며서 하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고 했는데, 몇몇 독자는 수긍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주었다. 하긴 인간이 무엇을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머릿속으로 어찌 말해야 상대방이 잘 알아들을 수 있을지 궁리하기 마련이니, 이 역시 말을 꾸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가 전쟁이 난무하던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또는 자신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교묘한 말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꽤 오래전에 유행했던 솔개라는 대중가요를 좋아해서 한동안 읊조리고 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 노래 가사에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어라는 구절이 있는 것처럼, 지구상의 다른 동물들에 비해 오로지 인간만이 생각을 하고 그 생각한 것은 말로 표현하고, 여기에다가 그 생각하고 말로 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문자로 표기할 줄 안다고 할 수 있다. 문자로 적은 것이 역사를 통해서 줄곧 이어져서 오늘날 인간의 문화와 문명이 이처럼 발전한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역시 여러 동물 가운데 하나인데, 어째서 인간만이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쓸 줄 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약 200만년 전에 나타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두 발로 걸어 다니게 되면서 가능했을 것이라고 한다. ‘똑바로 서다라는 뜻의 영어 에렉트(erect)가 라틴어인 에렉투스에서 나온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이 두 발로 서게 되고 또 불을 사용하면서부터 말하기가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약 70만년 전 북경원인(北京猿人)의 유골이 발견된 북경 부근 주구점(周口店)이다. 이들은 중국에서 말하기를 처음 했던 원시인류라고 알려져 있다.<사진=문승용 박사>

 

호모 에렉투스가 일어나 두 발로 걸으면서부터 기어 다닐 때보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 많아지니까 생각도 많아지고 그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커진 것이며, 두 발로 걷게 되니까 나머지 두 발이 두 손이 되어 도구도 만들 수 있게 됐고, 목을 쳐들고 다니게 되니까 눌려 있던 목구멍의 성대가 펴지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신체구조로 변하게 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때부터 인류가 도구와 불을 사용해 사냥한 짐승의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고급 단백질을 많이 섭취할 수 있게 돼, 두뇌가 급속히 발달해 생각도 한층 많아지고 그 생각을 말로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인류가 다른 동물에 비해 신체적으로 강인하지도 않으면서 커다란 동물들을 사냥해서 잡아먹을 수 있고, 혹독한 자연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도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서로 말로 의사와 정보를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약 70만년 전 북경 근처 주구점(周口店)이라는 곳에 구석기 시대 인류가 살았었는데, 이들을 흔히 북경원인(北京猿人)이라 부른다. 이처럼 인류가 도구와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구석기 시대에 이어서 신석기, 청동기 시대를 거쳐 철기 시대에 들어서 철기를 사용하면서부터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중국의 황하를 중심으로 인류 문명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 기원전 500년대 노자나 공자와 같은 사상가들이 나타나, 인간이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를 궁리해 도가(道家)와 유가(儒家) 등의 학술사상이 탄생했다. 이들 사상가를 일컬어 여러[] 선생님[]들의 많은[] 학파[]라고 해서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하는데, 이들이 내세운 여러 학설이 인간의 삶과 문화에 관한 것이었던 만큼 중국에서는 이때 비로소 인문의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역시 자신들만의 말씨와 글투를 갈고 닦아서 자신의 사상 주장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장과 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인 수사학도 발흥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많은 사상가가 그들의 학생들을 데리고 이 나라 저 나라로 돌아다니면서, 그 나라의 왕이나 제후들에게 자신들의 사상 주장을 펼치기 위해 온갖 수사 기교를 다 동원해 정치적인 계책을 설파했지만, 공자는 말을 꾸며 상대방을 현혹하기보다는 믿음직스러운 실천이 우선이라고 여겼다.

 

북경원인들은 도구와 불을 사용하며 서로 모여 살면서 사회를 이루고 살았는데, 이들이 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맹수를 물리치고 정보를 교환하였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었다.<사진=문승용 박사>

 

그래서 공자는 논어 이인(里仁) 편에서 말은 어눌하게 하되 실천하는 것에는 민첩하게 하고자 한다(訥於言而敏於行)”라고 말했던 것인데, 이 때문에 공자가 세상의 제후들에게 자신의 정치 소견을 펴기 위해서 13년 동안 세상을 떠돌아다니던 주유천하(周遊天下) 시절 공자의 정치사상을 인정해 채택한 이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언어 편에서도 입과 혀는 재난이 비롯되는 문과 같고, 몸을 망치는 도끼와 같다(口舌者, 禍患之門, 滅身之斧也)”라고 한 것이나, “한마디 말이 무겁기가 천금과 같다(一言半句, 重値千金)”라고 한 것처럼, 말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구절이 여러 번 나온다.

 

사람이 아예 말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실언이나 거짓말조차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과 같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는 함께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많은 말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때로는 남들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할 만한 말솜씨를 부릴 줄 알아야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아 출세라는 것을 하기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 다만 공자나 명심보감의 격언처럼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신중하게 하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만 인간만의 소중한 자산인 말하기를 값지게 누리는 것이라는 점을 잘 되새겨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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