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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국민에게 허탈감 준 공직자의 범법 행위

땅은 본래 누구의 것인데…LH사태 보면서 땅의 의미 되새겼으면 

기사입력2021-03-23 09:30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요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이야깃거리는 단연 공직자들의 땅투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땅을 취급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이 비공개 정보를 이용해, 큰돈을 벌까 해서 해당 지역의 땅을 마구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신문·방송은 물론 여기저기에서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며 깊은 한탄과 비난을 쏟아내고 있고, 당사자들은 이미 다 알려진 정보를 가지고 투자를 했을 뿐이라며 발뺌을 하고 있다.

 

공직자들의 땅투기는 다음 달에 있을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전에서 최대 관건으로 떠오를 만큼 국민 모두의 관심이 쏠려 있다 보니, 진작에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관련 부서 장관은 사의를 표명했을 만큼 예민한 문제인 것은 틀림없다.

 

도대체 이 지구상에 펼쳐져 있는 땅은 본래 누구의 것인데, 오늘날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줄을 긋고 내 땅 네 땅이라며 아웅다웅 다투고 있는 것인가 싶은 의문이 든다.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돈을 벌어 주는 땅이야말로 진정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도 있지만, 땅이 부정한 방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수단이 된다면 그야말로 땅은 자본주의의 독과 같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고고인류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137억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고, 46억년 전 우주의 먼지와 돌멩이들이 뭉쳐서 지구라는 별이 생겼고, 38억년 전 우주로부터 아미노산이 지구의 바다로 떨어져 진화를 거듭하면서 물고기가 됐고, 이들이 뭍으로 올라와 양서류로 살다가 약 600만년 전쯤 인류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후 석기시대를 거쳐 5000년 전쯤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땅을 근거로 해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이른바 문명이라는 것을 일구어 이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땅을 빼앗고 잃는 과정에서 흥망성쇠를 이어왔다고도 할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약 4000년 전쯤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며 국가를 이루고 살기 시작했다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즈음에 단군이 나라를 처음 세웠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특정한 땅에 모여 살면서 자기 민족과 국가라는 인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국가를 구성하는 3요소로 영토, 국민, 주권을 들어 정의한다. 실제로 나라 국()’자를 풀어보면, 영토를 의미하는 에워쌀 위()’, 국민을 의미하는 입 구()’, 무력을 의미하는 창 과()’자가 어우러져 있는 것처럼 국가라는 것은 예로부터 일정한 영토에 국민이 안전하게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國)자는 영토의 경계를 의미하는 ‘에워쌀 위(囗)’자, 사람을 의미하는 ‘입 구(口)’자, 무력을 의미하는 ‘창 과(戈)’자가 조합된 글자다. 본래에는 ‘에워쌀 위(囗)’자가 없는 ‘역(或)’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였다가 진시황제가 문자를 통일한 이래 영역이라는 뜻이 보태어져서 국(國)자로 자리 잡았다.<자료제공=문승용 박사, 참조=漢字演變五百例, 北京語言文化大學出版社>
그런데 애당초 역사가 시작될 때에는 땅에 줄을 그어 경계로 삼는 것은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 그림에서 보듯이, 기원전 1300년대 이후 쓰이던 갑골문자(甲骨文字)나 서주(西周: B.C.1046~B.C.771) 시기의 금문자(金文字)에는 나라 국()’자에 영토를 의미하는 에워쌀 위()’자가 없었다. 그런데, 서주 이후 진시황제가 전서(篆書)로 문자를 통일한 다음에야 오늘날과 같은 모양의 국()자가 탄생한 것을 보더라도 본디 나라라는 개념에 있어서 영역은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

 

이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먹고 살 만한 땅이 점점 줄어들자 이곳저곳에 경계를 긋기 시작하면서 서로 다툼이 잦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자 도덕경(道德經) 25장에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한 이치를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라고 했다. 노자는 사람이 땅을, 땅이 하늘을, 하늘이 도를, 도가 자연(自然)을 본받는다고 했으니, 결국 사람은 자연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자연이라는 말을 오늘날 우리가 흔히 명사로 쓰지만, 본디 자연은 명사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의 형용사였다.

 

자연이란, 이 땅에 태어난 사람 역시 만물 가운데 하나로서 스스로 그러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한 노자 가르침의 중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다가 없을 무()’자와 할 위()’를 덧붙여서 흔히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한다. 무위자연은 하는 것[]이 없이[]’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인데, 이때 하는 것이 없다라고 한 것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고 잠자고 숨 쉬는 것 역시 모두 하는 것으로서 이런 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니, 노자가 말하는 무위의 참뜻은 사람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억지로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土)자는 ‘흙’이나 ‘땅’이라는 뜻의 상형문자로서, 평평한 땅 위로 둥근 것이 올라온 모습으로 지면 위로 흙덩어리가 뭉쳐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자료제공=문승용 박사, 참조=漢字演變五百例, 北京語言文化大學出版社>
이처럼 노자가 무위자연을 주장한 것은 당시 공자의 유가 사상에서 공부든 일이든 무엇이나 열심히 노력하는 유위(有爲)를 통해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장에 반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사람이 하고자 하는 대로 열심히 노력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것보다는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것이 더 많다고 보았기 때문에 노자는 그렇듯 역설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마치 불가(佛家)에서 말하듯이, 인간의 삶이 괴로운 것은 무엇인가 억지로 되려고 집착하기 때문이며, 이것에서 벗어나야만 진정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는데, 안 되는 것이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되게 하려는 인위적인 집착이야말로 인간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부처의 가르침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땅은 스스로 그러한 이치대로 봄이면 싹을 틔우고 가을이면 곡물을 수확해 사람들을 먹고 살게 할 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땅에 집을 짓고 길을 내어 가격을 매겨 부자가 됐다고 생각한다.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돈을 벌어 주는 땅이야말로 진정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도 있지만, 땅이 부정한 방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수단이 된다면 그야말로 땅은 자본주의의 독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공정해야 할 공직자들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저지르는 범법행위야말로 평생 제힘으로 애써 노력해도 변변한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깊은 허탈감과 멍에를 씌운다는 점을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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