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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닻 내려야 할’ 앵커기관의 돈은 어디로

지역내 조달과 고용에 적극적이고 사회적 기여 중시한 英 버밍엄 

기사입력2021-04-06 00:00
양준호 객원 기자 (junho@inu.ac.kr) 다른기사보기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으로 나라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 사건은 서울 및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초래한 매우 중대한 사건이다. 필자는 이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와 같은 정치적인 측면의 파장을 넘어 이른바 공기업, 특히 지역에 닻을 내리고활동하며 공공성을 발휘해야 하는 조직인 만큼 해당 지역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을 책무로 여겨야 하는 이른바 앵커(Anchor) 기관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됐다.

 

얼핏 보면, LH는 전국 차원의 공기업이기 때문에 특정 지역보다는 나라 전체의 공공성에 기여해야 하는 조직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본사나 지역본부가 위치한 경남 진주시 등에 대해서는 지역의 앵커기관으로서도 충분히 기여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은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특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적인 조직들, 즉 앵커기관들의 사회적역할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논의가 다시 시작돼야 하는 시점이다.

 

앵커기관, 지역에 닻을 내려지역경제 기여해야

 

최근 외국에서는 지자체, 지자체 산하 공기업, 정부 공기업, 대학, 대형병원 등 특정 지역에 닻을 내려활동하고 있는 이른바 앵커기관들의 지역경제에 대한 기여에 관해 지역정책 영역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지역의 앵커기관들이 해당 지역의 경제주체들에게 자금, 인재, 설비, 정보, 지식, 그리고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의 앵커기관들이 갖는 조달력, 즉 재화 및 서비스 구매능력을 지역 내 사업체에게 매칭시키는 노력들이 유럽과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이 지역 앵커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조달력 또는 자산력을 지역 시민들 모두를 위한 공동체 부(Community Wealth)’로 간주해, 이에 대해 지역의 경제주체들이 민주적으로 접근하고 또 민주적으로 활용·소유하며, 나아가 민주적으로 의사결정하는 이른바 지역 공동체 부의 구축(Community Wealth Building, 이하 CWB)’에 적극적인 도시들의 지역경제 성과가 타 도시에 비해 훨씬 양호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 사례로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시, 영국 랭커셔주의 프레스턴과 웨스트미들랜드주의 버밍엄시가 대표적이다.

 

도시 또는 지역의 경제가 피폐화되고 또 핍진되고 있는 현상은 우리나라나 외국에서나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위의 해외도시들이 지역 앵커기관들의 지역경제에 대한 적극적인 기여를 강조하며 그 구체적인 정책 대응을 조례 등을 통해 제도화하며 지역경제 회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눈여겨볼 사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여러 매체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 공동체 부의 구축(CWB)’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는데, 이 글에서는 영국 버밍엄 사례를 다뤄 지역 내 앵커기관들의 해당 지역 고용에 대한 기여 방식에 초점을 맞춰 논의하고자 한다.

 

지역내 구매와 고용 적극적사회적·공공적 기여 중시

 

영국의 유력 정당인 노동당 소속 시의원들이 의회의 다수를 점하는 도시들의 공통점은, 바로 해당 지역의 앵커기관들이 그들의 조달력 또는 고용력을 발휘해 지역 내 사업체들로부터의 구매와 지역 시민 고용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점에 있다또 그런 도시들의 지역 앵커기관들은 상호 간의 촘촘한 소통과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집단적 차원에서 의식적으로해당 지역 사업체들로부터 건설물, 사무용품, 용역 등을 조달하며, 나아가 해당 지역의 인재들만을 고용한다

 

즉 지역 앵커기관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이와 같은 지역주의적인 조달과 고용을 효과적으로 이뤄내고 있는데, 그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늘 상호 소통하고 또 정보를 공유하며 나아가 지역 사업체들과 지역 인재들의 현황 및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공동조사를 수행하는 등 지역경제를 위해 매우 집단적으로 대응한다.

 

당연한 것일 수 있겠으나, 이 네트워크에 속한 지역 앵커기관들은 시의회의 통제에 따라 그 경영에 있어서 효율성, 합리성, 수익성을 중시하기보다는 앵커기관 자체가 지역에 닻을 내려활동하는 조직인만큼 그 지역에 대한 사회적·공공적 기여를 더 중시한다

 

따라서, 지역 내 여타 앵커기관들 간의 네트워킹에는 매우 적극적이다. 왜냐하면 특정 앵커기관 단독으로 대응하는 것보다 여타 기관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대응하게 되면 보다 해당 지역 또는 그 지역경제에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역 앵커기관들이 적극적으로 CWB에 참여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한 곳인 버밍엄(Birmingham)의 경우, 의회에서 다수를 점하게 된 노동당 소속 시의원들이 주도해 그 지역 앵커기관들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지역 앵커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조달력 또는 자산력을 지역시민 모두를 위한 ‘공동체 부’로 간주해, 지역의 경제주체들이 민주적으로 활용·소유하며, 민주적으로 의사결정하는 이른바 지역 ‘공동체 부의 구축(Community Wealth Building, CWB)’에 적극적인 도시들의 지역경제 성과가 타 도시에 비해 훨씬 양호하게 나타나고 있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경영상의 이유로 지역을 만나게 된 버밍엄 앵커기관

 

그런데 버밍엄의 유력 앵커기관 중 하나인 국민건강보험 신탁 대학병원(The University Hospitals Birmingham NHS Trust)’은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심각한 의료인력 부족의 위기에 직면했고, 공공주택 공급 및 운영을 주관하는 파이오니어 주택 그룹(Pioneer Housing Group)’은 코로나 19에 의해 공공주택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세입자들이 직장에서 해고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들로부터 임대료를 받지 못하게 될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문제는, 인력 부족에 허덕이던 국민건강보험 신탁 대학병원의 인사팀은 지역 내 의료인력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고, 반면에 실업위기에 빠진 세입자들을 다른 사업체로 재취직을 시켜야 할 파이오니어 주택 그룹의 인사팀은 국민건강보험 신탁 대학병원으로 재취업하는데 필요한 언어, 소양, 의료지식 등의 자격과 구직자가 밟아야 할 절차 및 경로 등에 관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입자들의 여타 사업체로의 전직을 돕는 일 그 자체에도 익숙하지도 않았다.

 

이와 같은 위기 상황에 빠진 두 기관은 위에서 언급한 버밍엄 앵커기관 네트워크에 참여해 서로의 인력 수급정보를 구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또 네트워크 차원의 멘토링과 컨설팅을 받았다. ‘파이오니어 주택 그룹은 실직 직전의 세입자들이 국민건강보험 신탁 대학병원으로 재취업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 등을 파악했고, 또 재취업에 유리한 경력과 경험들을 그룹 내 특화된 프로젝트 수행 등을 통해 체득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세입자들을 특화된 주제’, 그러니까 시민건강과 공공주택 간의 관계 등에 관한 풍부한 지식을 습득시켜 재취업을 성공적으로 유도한 사례는 매우 흥미롭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파이오니어 주택 그룹이 세입자들을 타 앵커기관으로 재취업시키기 위해 위와 같은 방법을 취함으로써 얻을 수 있게 된 성과가 몇 가지 놀라운 변화로 이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국민건강보험 신탁 대학병원은 인력 부족 시에 적극적인 고용으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버밍엄 전체 시민 개개인의 경력에 관한 DB를 갖췄고, 또 시민들의 이전 직업에 맞는 병원 내 직무를 지역사회에 공개하는 등 조직 전체의 고용 프로세스를 보다 지역주의적으로재편했다. 파이오니어 주택 그룹은 그 공공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들이 취업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 또 동시에 임대료 지불 불능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나서 지역 내 여러 앵커기관들과 소통하고 협력해서 위에서 소개한 세입자들의 재취업을 위해 취한 대응 경험을 바탕으로 그 기관들로의 재취업을 위한 복수의 경력개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또 다면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경위를 거쳐, 이 두 앵커기관은 경영상의 이유로 지역을 만나게 된다.

 

앵커기관의 지역 고용·조달민간 영리기업으로 확산

 

이와 같은 단편적인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영국 버밍엄 지역의 앵커기관들은 자기 직원 또는 세입자의 고용문제를 왜 우리가 해결해주어야 하나하며 푸념이나 내뱉던 이전의 입장을 접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해결할 수 있을까하는 보다 지역주의적인문제의식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듯, 앵커기관들의 고용문제에 대한 지역주의적인 사고와 자세가 정착되면서 버밍엄의 앵커기관 네트워크는 보다 많은 기관들의 참여에 의해 더욱 탄탄해졌다. 또 이를 바탕으로 앵커기관들의 지역 고용문제에 대한 해결력과 기여도는 현저히 커지게 됐다.

 

그 결과, 버밍엄의 앵커기관 네트워크는 위와 같은 노동력 수급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 도시에서 가장 빈곤한 시민들에게 노동자 최저생활비를 보장하는 이른바 생활임금(Living wage)’을 지급하며 그들을 고용하기 시작하면서 버밍엄 경제의 회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와 같이 버밍엄에서 나타난 변화의 물결로 인해 지역 내 민간 영리기업들에게도 지역 내 고용과 지역 내 조달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버밍엄 앵커기관들의 사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지역의 고용과 지역경제 전체에 기여하는 앵커기관의 지역주의적인활동은 지자체 수장이나 시의회를 리더하는 인물들의 역량 및 의지의 소산이기도 하겠지만, 지역 앵커기관들의 조달력 또는 구매력과 자금, 인프라, 설비, 인재, 지식, 정보 등과 같은 유무형의 자산을 지역의 공동체 부(Community Wealth)’로 여기며, 이를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민주적으로 소유·활용해야 지역경제가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학습하고 확신한 그 지역 시민들이 그곳의 시의회에 대해 밑에서부터의통제력을 발휘해왔기 때문에야말로 담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지자체,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 대학, 대형병원 등의 지역 앵커기관은 말 그대로 지역에 닻을 내려야 하는주체들이다. 그들에게는 본질적으로 지역을 위해야 할 책무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화두가 되기 시작한 공공부문 민영화, 공기업 또는 병원 경영의 합리화, 그리고 대학 법인화의 거센 파도를 마주하면서, 지역의 앵커기관이 이러한 유행에 구속되지 않고 그 본질적인 책무를 다하며 그 조직의 존재 이유를 다시 찾아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지역 앵커기관은 지역경제 회복이라는 과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들이 지역의 공동체 부의 구축(Community Wealth Building)’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지자체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역 앵커기관들의 지역경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기여를 제도화해야 한다.

 

지자체 공공조달 중 물품조달 및 용역조달의 지역 밖으로의 유출 수준이 매우 높은, 앵커기관들이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는커녕 외려 비윤리적인 부동산 투기에 앞장서버린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버밍엄 앵커기관의 사례는 그 의미가 매우 깊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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