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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사회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미술 그리고 화가

Life is pain.ting #44. 2002가 2021에게② 

기사입력2021-08-05 11:30

지난 글에 이어 두 번째로이 글은 이십대 중반의 내가 그림 작업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을 때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나를 가르치던 스승이 보낸 답장이다.
[20022021에게] 암튼 이렇게 불붙은 변화가 후기 인상주의와 그 뒤로 무수히 많은 미술을 등장하게 만드는데,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제3세계 식민지화다. 그동안 보도듣도 못한 미술들이 마구 들어오니깐 화가들에겐 그림 그릴게 무지 많아진 거지.

 

요기서 잠깐. 우리가 그림을 배우고 하는 전통은 어디에서 기초하는 것일까? 그림에 내용이 없어진 것을 보면 인상주의 미술의 전통에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 처음부터 그림은 내용을 담았던 적이 훨씬 더 많았다. 우리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는 판단의 기준이 되는 실력이란 것의 배경은 의외로 짧다.

 

세계 제2차 대전이 지나고 세계가 온통 추상미술판이 되는데는 실존철학과 당시 사회상의 일치가 한 몫한다. 물론 철학의 흐름도 미술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시대의 요구에 따라 등장한 거고, 다시 그 이후 미술의 변화도 그렇고.

 

미술은 세계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화가라는 존재도 역시 마찬가지고, 시대의 요구와 그에 따른 비전을 가진 작가들이 무언가 만들어 내는 것 아닐까. 그러려면 시대를 알아야겠지.

 

이전에 세계가 냉전 구도였을 때는 거시담론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 거창한 명제를 쫓아서 미술을 위한 미술, 예술의 끝은 무엇인가? 같은 문제가 대부분 예술가들의 주된 관심이었다면 이후로 탈냉전이 되고 제3세계 국가들이 독립을 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게 되면서 미술판도 커다란 주제에서 작은 주제 그러니깐 개인의 사소한 일상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로 전환하게 된다. 마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로 인해 미국과 소련의 거대 국가가 대립했던 냉전이 종식되면서 전쟁도 국지전의 양상으로 바뀌어 가듯.

 

세계를 보는 개인의 시각도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알기 위해 주변을 탐색해 나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 안으로 오히려 몰입해 들어가면서 스스로를 관찰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을 통해서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거든.

 

앤디워홀의 작품이 걸린 거리.<이미지 출처=셔터스톡>

 

자신이라는 존재가 외부로부터 습득하거나 보이는 반응들을 보면, 반대로 세계가 한 개인에게 투영한 것들을 볼 수 있으니깐 자신이라고 하는 대상을 사회를 비쳐내는 거울처럼 이용하는 거지. 혹은 일상이라는 주제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작은 세계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이전에 떠들던 막막한 세계가 아니라 자신이 만나고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세계를 표현하겠단 의지지. 왜냐면 이게 훨씬 자신에겐 중요한 것들이고 현실감이 있는 것들이니깐.

 

동시에 과거 미술에 대한 회귀나 복귀를 주장하는 부류들이 등장한다. 다시 그림 안에 이야기를 담기 시작하는 거지. 그래서 그동안 커다란 문제에 억눌려 있던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 등장하기도 한다. 거기에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한 몫 또 한다.

 

인상주의의 예를 다시 생각해 보면 테크놀로지 미술을 따라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해될 거다. 이러면서 미술은 더 이상 경계가 없어져 버렸다. 이전의 눈으로 보면 미술이 아닌 것이 더 많지. 이렇게 되니깐 회화로 복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시 나오고 있다. 손으로 그리는 미술로 가서 대상을 재현하는 그 재미를 다시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아니지! 벌써 십년이 넘어가니까 등장이 아닌가?

 

얘길 하다 보니까 점점 정신없어지지? 복잡해서도 그렇지만 얘기를 너무 정신없이 해서 그런 것 같다. 네가 잘 이해해서 읽어라(ㅎㅎ). 많은 얘길 해 주고 싶어서 한꺼번에 하다 보니깐 더 풀어서 설명해야 할 것들이 마구 건너 뛰어서리.

 

오늘 얘길 마무리하자면, 미술이란 게 시대나 사회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화가에게 요구되어지는 사명이-마치 척후병에게 임무가 주어지듯이-결과적으론 자기 혼자만의 것들이 되지 않는다. 물론 자신만을 위해서 철저히 행해 나가겠지만, 궁극적으로 인류라는 생물은 그 중에 쓸 만한 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든단 의미다.

 

네가 힘들어하는 데는 그동안 네가 자신 있어 했고 믿어 왔던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소용없어진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동시에 이제는 그것으로 남들의 주목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작용하는 거 같다. 나부터도 사실은 그랬다. 지금도 다 떨쳐버릴 수 없고, 조금은 매달리고 있는 부분이 있다.

 

결부시켜서 성공에 대한 욕구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빨리 성공해서 뜨고 싶은데 주변 상황이 생각과는 영 딴판으로 가는 것에 대한 불안함. 한번 생각해 봐라.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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