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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는 ‘활쏘기 지혜’ 통해 자신 돌아보라

잘되고 못되는 책임을 스스로 묻고, 국정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기사입력2021-08-07 00:00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올림픽 경기가 열릴 때마다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딸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편안하게 관전하는 종목이 양궁이다. 이번에도 우리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양궁의 5종목 가운데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 뿐만 아니라 여자 단체전의 경우, 올림픽에 양궁 종목이 생긴 지난 1988년 이래 33년 동안 9차례 벌어진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독차지했다는 것이 참으로 대견하면서 신기할 따름이다.

 

그때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어째서 이처럼 활쏘기를 잘하느냐는 것에 대해 분석할 때, 우리 민족이 주몽(朱蒙)의 후예이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활쏘기 유전자라는 것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거나, 2011년도 영화 최종병기 활에 나온 주인공의 활솜씨가 괜히 허투루 전해오는 이야기인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몽은 고구려를 세운 첫 번째 왕인데, 활을 참으로 잘 쏘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本紀)동명성왕(東明聖王)’조에 주몽은 겨우 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부터 총명함이 남달랐다.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쏘는 대로 모두 명중하였다. 부여에서는 활 잘 쏘는 이를 주몽이라 하여서 그렇게 불렀다(年甫七歲, 嶷然異常. 自作弓矢射之, 百發百中. 扶餘俗語, 善射爲朱蒙, 故以名云)”라고 돼 있다.

 

주몽이 고구려를 처음 세웠을 때 이웃 비류국(沸流國) 왕인 송양(松讓)이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주몽이라는 젊은이가 곁에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자, 주몽이 활쏘기 시합으로 송양 왕을 제압했고 나중에 고구려가 비류국을 복속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이처럼 당시에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세력 다툼을 할 때 활쏘기를 통해서 힘을 겨루는 풍습이 있었을 만큼 활쏘기가 매우 일반적인 기예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고구려 벽화 유물 가운데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모습이다. 말 고삐를 잡지 않고 말을 달리며 활을 쏠 만큼 당시 고구려 젊은이들의 뛰어난 활솜씨를 알 수 있는 벽화의 한 장면이다.<자료=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태조실록(太祖實錄)’에서는 이성계가 신궁의 실력이었다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온다. 이성계가 하늘에 나는 비둘기 두 마리를 한 번에 쏘아 맞히고, 달리는 노루 7마리를 단번에 쏘아 다 잡았다거나, 지름이 2(6~7)인 과녁을 50(80m) 밖에서 명중시키자 모두 놀랐다는 기록도 있다.

 

주몽이나 이성계 이외에도 역사기록에 올라 있지 않은 신궁들이 수두룩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이 활쏘기에 능했던 이유를 여러 방면에서 추정해 보자면, 본디 우리 민족이 말 달니며 활을 쏘는 것에 능한 유목민족의 후예로서 이후 한반도에 와서 농경민족으로 정착해 농사를 지으면서 손끝의 감각이 다른 민족보다 유난히 발달하게 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제스포츠에서 잘한다고 손꼽을 만한 경기종목을 들어 보면, 축구나 육상과 같이 발로 뛰어다니는 것보다는 양궁을 비롯한 골프, 야구, 사격, 펜싱, 배드민턴 등 손으로 하는 종목에 좋은 성적을 내는 점만 보더라도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활쏘기는 예로부터 젊은이들이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주요 운동 가운데 하나였다. 고대 중국의 이상사회라고 할 수 있는 주()나라 때부터 육예(六藝)라 해 예법(음악(활쏘기(수레 몰기(글쓰기(셈하기()를 젊은이들에게 가르쳤는데, 이들 여섯 가지 교육과목이 당시 나라를 맡아 다스릴 관리들을 선발하는 기준이었다.

 

육예 가운데 말을 달리고 수레 모는 것과 활쏘기는 관리로서 무인의 자질을 살펴보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현대화된 무기체계를 갖춘 오늘날 전투에서는 활쏘기가 그다지 큰 매력이 없어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직접 맞상대해 적을 제압하는 검술보다는 멀리서 안전하게 쏘아 맞히기 때문에 훨씬 유용한 전투기술로 평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갑골문(甲骨文)에서는 화살이 활시위에서 막 발사되는 모양을 본떠 그린 것이었데, 금문(金文)에서는 손 모양인 又(우)자가 보태졌다. 이후에는 ‘몸 신(身)’자와 ‘마디 촌(寸)’이 결합해 본래의 의미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해 버렸다.<자료제공=문승용 박사, 출처=漢字演變五百例 참조>
, 활쏘기는 전투력 향상을 위한 육체적인 훈련뿐만 아니라 당시 지식 교양인들이 자기 수양을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논어 팔일(八佾)편에서 공자는 군자는 다투는 일이 없으나, 오직 활쏘기에서만은 다툰다. 서로 인사하고 사양하며 활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는 술을 마신다. 그러한 다툼이 군자다운 것이다(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라고 했듯이, 활쏘기는 상대방과 직접 몸을 부대끼거나 치고받아 상처를 내며 힘을 겨루는 것이 아니다.

 

예기(禮記) 경해(經解)편에서는 겨눈 화살의 아주 미세한 차이가 천리만큼의 차이를 만든다(矢之毫厘, 差之千里)”라고 해, 모름지기 군자는 모든 일의 그 시작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듯이 화살을 쏘아 과녁에 맞추거나 빗나가는 것이 오로지 자신의 잘잘못에 기인한다는 점인데, 모든 일의 성공과 실패가 자기 안으로부터 스스로 살펴야 한다는 공자의 유가에서 강조하는 내자성(內自省)’의 논리와도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또 역시 팔일(八佾)편에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활 쏘는 도리에 대해 말하기를, “활을 쏠 때 가죽 과녁 뚫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은 사람마다 힘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射不主皮, 爲力不同科)”라고 한 것이나, 술이(述而)편에서 잠자고 있는 새는 쏘지 않는다(弋不射宿)”라고도 했다. 이 역시 활쏘기에서 힘을 강압적으로 사용해 남을 제압해서는 안 되며, 겨루기를 할 때는 공정한 조건 아래에서 치러야 한다는 점을 거듭 밝히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서 막판 경쟁이 후끈 달아올라 있다. 대통령 후보라면 누구든 자신의 정책에 대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유권자들의 표를 호소해야 할 것인데,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자들은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깎아내려 그만큼이라도 자신이 돋보이려는 이른바 네가티브 전략이 난무하면서 정치판이 시끄럽다.

 

아무쪼록 어려운 시국에 나라 경영의 막중한 짐을 지고자 나선 대통령 후보자들은 공자가 말한 활쏘기의 이치를 통해서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고 깎아내려 남보다 위에 올라서기보다는, 일이 잘되고 못 되는 책임을 스스로 묻고 돌아보며 국민들에게 국정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려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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