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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겉으로만 빨리 보여주려는 우리의 뒤틀린 자화상

Life is pain.ting #46. 2002가 2021에게④ 

기사입력2021-10-13 10:26

아직 오후는 무더위의 늑장이 남아있지만 새벽 밤공기는 이불을 끌어 올려도 한기가 살짝 느껴질 만큼 가을이 완연하다두 번의 개인전을 마치고, 10월 전시와 다음 작업을 위해 작업실에서 이런저런 메모와 드로잉을 해보곤 있지만하나의 이야기가 전시라는 매체를 통해 공개되고 나면 특유의 공허함에 붕붕 뜨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시대는 스마트폰 전과 후로 크게 변했다고 하고이제는 NFT와 메타버스 같은 이야기들이 어딜 가나 쏟아져 나온다얼마 전 만난 모 기획자는 작가들이 NFT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미술판이라고는 손바닥만한 인사동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던 2000년 전후스승과 주고받던 편지에는 이러한 고민들이 가득하다아래에 첨부하는 편지는 인사동에 나가면 브랜드화시킨 작품들만이 난무하던 때 그러니까사과만 그리는 작가라든가자동차만 그리는 작가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작가로서의 태도와 선택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읽어도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스승의 대답은 아직도 유효하다.


[20022021에게]어려운 질문을 던지네.

 

네 글을 읽으면서 해주고 싶은 말들이 두서없이 마구 떠오르더니, 막상 쓰려고 하니까 무슨 말부터 적어야 할지 도통 손이 안 간다. 사실 이런 질문은 너만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이를 먹어도 계속 되는 질문들이거든. 또 모르지. 일찌감치 답을 내리고 예술은 이런 거다 하고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있는지.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뭔가 보여주고 성공을 하는지도 모르지. 쓸데없이(?) 계속 질문만 하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그러다 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내 생각에 분명한 것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이 진정한 작가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것을 배우고 실천해 나가더라도 비슷하겠지만, 어떤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깨달음과 질문은 계단처럼 있는 것 같다. 한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 수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 하고 답이 나오지. 그럼 한 단계 오르고, 그게 다인 줄 알고 죽 가다보면 또다시 벽을 만나고, 그래서 또 질문하고 고뇌하고 그렇게 매달리다 보면 !’ 하고 또 답을 얻지. 그래서 다시 마치 뭔가 다 깨달은 것 같아서 즐거워 하다보면 또다시 벽을 만나고. 보통은 그러다 멈추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주변을 돌아보면 제 스스로가 제법 높은 곳까지 올라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주변에서 추켜 주는 것에 취해서 자만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안주하고.

 

어찌 보면 결국 예술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훌륭한 것인가? 등등의 답들을 찾아 떠난 길에서 최종 목적지란 없는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가다가 멈춰 서버린 곳을 자신이 찾아 나선 최종 목적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답이 딱히 정해져 있다기보다 그것을 찾아가는 길이 예술의 길 아닐까? 그래서 기존 미술시장에서 예술은 이런 것이라고 통용되는 것이 있다면 어떤 작가는 그것을 열심히 추구해서 쉽게 인정받는 길을 택할 수도 있고, 반대로 어떤 이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기준과 가치관을 찾아 힘든 길을 걸을 수도 있겠지. 현재 나타나는 것들에 대해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바로 흡수하고 따라서 하는 사람들도 있겠고, 그렇지 못하고 계속해서 반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고.

 

이걸 조금 그럴듯하게 말하자면 새로운 것을 찾아 끊임없이 더듬이를 더듬거리는 경우를 아방가르드(전위, avant-garde)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면, 반대의 경우는 아리에가르드(후위, rearguard)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것이 가치 있고 그래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확대시킬 생각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두 가지 태도가 있다고 말하려는가 보다 정도로 듣길. 안 그럼 얘기가 얽히고설켜서 진행이 안 되니까. 참 그리고 이도저도 아닌 입장, 예를 들면 실제로 후위인데 자칭 아방가르드라고 우기면서 실상은 꿩도 먹고 알도 다 먹으려는 태도는 논외로 하자. 혼자 멋있는 척은 다 하려는 인간들이 훨씬 더 많지만 일단은 원론적인 얘길 하는 게 순서일 테니까.

 

답이 딱히 정해져 있다기보다 그것을 찾아가는 길이 예술의 길 아닐까? 질문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정답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과정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네 질문의 직접적인 대답에 앞서 이 이야기부터 꺼낸 것은 이게 답을 찾아 나가는데 순서인 것 같아서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부터 찾지 않으면, 그 다음의 답들이란 공허해지고 자칫 중심점을 잃고 부유하는 존재처럼 가벼워질 수 있다. 시대에 따라서 가치관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변해간다. 심지어는 부동의 진리라고 믿는 것들마저 변해간다. 그래서 절대란 어쩌면 우리들의 믿음 속에나 살아있는 환상일지도 모르지. 모든 것들이 변해 가는데 미술이란 이것!’ 이런 답이란 있을 수 없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에 따라서 한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예술로 등장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시대는 계속해서 답을 요구한다. 마치 그런 것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절대라는 이름의 답은 없다. 단지 절대이기를 바라는 답을 계속해서 찾으며 굴러가는 것. 그것이 인류사겠지. 네가 질문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정답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과정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지쳐서 네가 지금 달리고자 하는 경주를 계속 할 수가 없다.

 

예술이란 무엇이다!’라는 만고불변의 답이 있다면, 서점에 수없이 꽂혀 있는 같은 질문에 답하는 책들이 다 무엇이 되겠냐. 저마다 생각하는 게 조금씩 다르니까 가능한 거지. 네가 이게 예술이라고 주장을 하고 마침 당대에서 그 답이 적절하다고 받아들여지면, 그때부터 그게 예술이 되는 거다. 보통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지. 같은 주장이라도 시점과 공간과 그 외의 여러 가지 요소에 따라서 힘을 가질 수도 있고 아니면 지나가던 개가 짖는 소리만도 못한 것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같은 작업도 미국의 뉴욕 중심가에서 선보인다면 바로 세계 예술계의 중심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만약 힘없는 나라에서 나온다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 있지. 반대로 똑같은 작업도 미국에서 전시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저기 어디 변방에서 나타난 작가에 의해 전시된다면 또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웃기지. 힘의 흐름에 따라서 모든 것들이 유기적인 것이 된단 말이다.

 

그러니까 위대한 화가나 위인들이 나타나서 시대가 급변하는 것이 아니고 시대가 선택했을 뿐이다. 시대가 급변하면 그런 작가들이 많이 나타나지. 마치 난세에 영웅이 나타나는 것처럼. 그런 면에서 우리 동네 전파상 주인아저씨도 시대를 잘 만났으면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을 수도 있단 얘기다.

 

네가 추상도 좋고 리얼리티도 좋다면 그것도 너의 취향이거나 색깔이 될 수 있다. 주변에서 그런 게 옳지 않다고 한다고 네가 억지로 무언가를 선택적으로 좋아하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웃기는 일이 될 테니까.

 

우리가 아는 거장들이 개성이 강하다고 그들의 흉내를 낼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거장의 꿈을 품고 거장스러움만을 쫓아다닌다. 그래서 자기만의 색깔을 빨리 가지려고 하고, 일관된 모습을 정치적으로 보이려고 하고, 고뇌하는 모습까지도 연출을 하는 불쌍한 짓들을 하지만 그런 것들에 민감해질 필요가 없다.

 

서둘러 자기 색깔을 만들어 보이려는 노력보다 열심히 자기 내면을 찾고 정직하게 자기의 보폭을 만들어 나가는 편이 정말 가치있는 작업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더 크다.

 

인위적으로 보여주기보다 열심히 무언가를 추구하고 질문하고 고민하다 보면, 천천히 그러나 튼튼한 자기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겉으로만 빨리 그런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모습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뒤틀린 자화상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 단지 수업이란 이유로 맘에 드는 작가의 스타일을 열심히 흉내내던 사람들이 위대한 화가가 된 경우가 더 많다. 한국의 많은 작가와 학생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그것이 마치 부끄러운 일인 양 몰래 훔쳐보며 흉내를 내고도 겉으로는 아닌 척 하는데 이건 정말 바보 같은 일이지. 솔직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다 보면 자기만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오묘한 진리를, 빨리 뭔가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가 없다.

 

진짜가 되려면 헛것들에 좀 둔감해질 필요가 있다. 오직 자기 안으로의 세계에 민감해지고 온 촉각과 감각을 작업에 곤두세우고 그 외엔 조금 바보처럼 둔감하게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로 첨단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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