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게 많은 나라…언어장벽 넘으면 기회 무궁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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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팔게 많은 나라…언어장벽 넘으면 기회 무궁무진” 러시아 비즈니스 정보 제공 (사)한러비즈니스協 박종호 대표

기사입력2015-08-22 00:00

윤주희 기자 (jooheey15@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러시아는 천연가스·석유·석탄 등이 전체 수출의 75%, 재정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산업구조가 에너지·자원 생산에 치중돼 있다보니 다른 산업재나 소비재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죠. 뒤집어 말하면, 러시아는 우리가 팔 수 있는 물건이 많은 나라란 뜻입니다. 그러나 이때까지 우리는 자동차 등을 파는 몇몇 대기업 외엔 러시아에 진출하려는 업체가 없었습니다. 전체 교역규모도 미국이나 일본, 중국과 비교해 작은 편이었고요”

한국과 러시아의 교역 상황에 대해 (사)한러비즈니스협의회(KRBC) 박종호 대표는 이같이 진단했다. 실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992년 1억9000만달러로 시작한 한국과 러시아의 교역량은 20년 동안 약 100배가 늘어나 2012년 224억달러 규모로 확대됐다. 그러나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대외무역량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2.1% 수준으로, 수출에서는 2.0%밖에 되지 않았다. 특히 수출 상품의 약 50%가 승용차와 상용차, 건설기계 등 일부 품목에 치우쳐 있다.

(사)한러비즈니스협의회(KRBC) 박종호 대표

러시아어 극복 못하는 기업들, CU인증에서 주저 앉아

이처럼 한국이 러시아에 다양한 상품을 수출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박 대표는 “언어적 장벽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전히 미국을 적국으로 보는 인식이 남아 있는 러시아에선 영어 사용이 일반적이지 않고,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러시아 진출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국내 기업들이 특히 애를 먹는 부분은 CU인증”이라고 덧붙였다.

CU(Technical Regulation of Customs Union)인증은 러시아 연방 기술표준청(www.gost.ru)이 부여하는데, 러시아에 제품을 유통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 마크다. 이 마크를 취득하기 위해선 상품을 소개하는 카탈로그와 매뉴얼 등 각종 기술자료를 준비해야 하고, 러시아정부는 이 모든 문서를 러시아어로 작성해 제출토록 하고 있다.

“일단 시장에 진입할 수 있으면 다른 어떤 나라보다 장사하기 쉬운 국가가 러시아입니다. 실제 러시아어 번역이 원활한 대기업의 경우,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어요. 지난달 현대·기아차가 러시아에서 자동차 판매 1~2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도 있었잖습니까. 문제는 중소기업들이에요. 러시아 수출 준비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제품 인증부터 막혀버리니 아예 진출 시도조차 꺼리게 됩니다”

러시아 진출 기업 돕는 게 KRBC의 목표

이는 박 대표가 KRBC를 설립한 이유이기도 하다. 2011년 2월 출범한 KRBC는 한국과 러시아 간 경제협력, 통상,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민간차원에서 장려·지원하는 비영리법인이다. 한러 양국에 진출하는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무역, 투자, 금융 등 산업 전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KRBC는 그동안 러시아 지방정부 투자세미나, 해양수산부 주최 한러물류협력포럼, 러시아연방 극동개발부 장관 초청 간담회 등 국내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주관했다. 지난해에는 한국전력의 러시아 전력망 연계사업에 대한 전략 컨설팅을 수행하기도 했다.

“대기업들은 전경련이나 무역협회 등 다양한 지원 기관들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기댈 데가 별로 없잖아요. 러시아 진출에 있어서 중소기업에 유용한 플랫폼을 만들어보자는 게 KRBC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박 대표는 KRBC를 운영하면서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비영리단체 특성상 상업적인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박 대표는 지난 4월 KRBC의 협력사 형태로 러시아 시장진출 자문 및 수출 에이전트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셀던코리아를 설립했다.

“러시아가 수입해서 쓰는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로 산업용 마스크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이 시장에 한국 제품은 하나도 진출하지 못했어요. 우리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CU인증이나 입찰정보 등에 밝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셀던코리아를 차렸어요. KRBC가 가진 네트워크를 이용해 러시아에 국내 중소기업들을 많이 내보내는 게 목표죠”

셀던코리아로 국내 기업의 에이전트 역할도 수행

셀던코리아는 CU인증 등에 필요한 자료를 러시아어로 제작해 주거나 러시아 진출과 관련해 컨설팅을 해준다. 이를 위해 러시아 연방정부 산하기관인 전자입찰시장협회(AETP)와 파트너십 계약도 체결했다. 국내 기업이 러시아 진출 가능성을 의뢰해 오면 AETP가 가진 러시아 내 900만개 기업정보를 분석, 관련 산업규모와 소비자 특성, 경쟁관계 브랜드 등을 조사해 준다. 필요시 법률자문이나 수출도 대행한다. 현재 2D 스캐너, 산업용 마스크 등 5개 중소기업 제품의 러시아 진출을 돕고 있다.

“우리나라의 히든 챔피언(기술력과 성장잠재력이 큰 강소기업)이 600개가 넘는데, 러시아에 소개된 것은 60개가 채 안 됩니다. 최근 서방의 경제제재로 러시아가 유럽산 물건을 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이 기회를 잘 파고들면 우리 중소기업들이 러시아에 많이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이것이 꼭 기업의 힘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CU인증만 해도 적게는 1000만원에서 많게는 2000만원까지 비용이 들어갑니다. 중소기업에겐 부담스런 금액이지요. 정부에선 우리 중소·중견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러시아에 진출해야 된다고 말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러시아 진출 절차와 비용을 줄여줄 수 있는 지원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박 대표는 인터뷰 내내 러시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펼쳐 놓은 노트 속에는 한글 대신 러시아어가 빼곡했다. 어느 모로 보나 러시아를 연구한 세월이 짧지 않아 보였다.

사진 가운데가 KRBC 박종호 대표<사진=(사)한러비즈니스협의회>

27살 우연히 접한 러시아어가 평생 동반자로

“러시아와의 인연은 1993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에 입학하면서 시작됐어요. 그때 제 나이가 27살이었는데, 집안이 어려워서 군대 제대하고 사회생활 좀 하다가 뒤늦게 대학에 갔습니다. 러시아어를 선택한 이유는 뭐 특별한 게 있었던 건 아니고요, 영문학과를 나온 형님이 추천하길래 얼떨결에 갔습니다”

그러나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 것은 박 대표 자신이었다. 뒤늦게 시작한 대학공부에 흥미가 붙으면서 1999년 노어노문학과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된 것이다. 이후 전공을 살려 러시아어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던 박 대표는 러시아 과학자들과 사귀게 되면서 러시아 관련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

“당시 제가 통역을 맡았던 러시아인들이 카이스트, 삼성전자 등에서 일했어요. 그들과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러시아 첨단기술을 한국에 팔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대학원 입학한지 1년 만에 포기하고 2000년부터 국내 기업에 러시아 신기술을 파는 개인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후 박 대표는 러시아 신기술에 대한 사업 컨설팅, 투자 자문 등을 하면서 주한 러시아대사관, 러시아 극동항만해양기술연구소(FEMRI) 등 다양한 기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는 박 대표가 지난 15년간 러시아 비즈니스에 몸담으면서 일궈낸 가장 큰 자산이기도 하다.

올해 한국 비즈니스맨 위한 러시아 강좌 열 것

“러시아에 한 번 가면 며칠씩 머물면서 현지인들이랑 밤새 보드카 마시고, 사우나하고 그랬어요. 러시아에서 사업을 잘 하려면 인간적으로 친해져야 되거든요. 러시아 사람들 특성이 그래요, 공산주의 겪으면서 상대방을 잘 신뢰하지 않게 됐고, 그래서 마음을 열지 않으면 한없이 까다롭습니다. 대신 일보다는 사람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어서 일단 친구가 되면 무슨 일이든 조건없이 도와주죠”

러시아에서 사업할 때 공식적인 관계보다 비공식적인 관계에서 진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러시아인들은 ‘친구끼리는 속이지 않는다’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 관계보다는 친구관계로서 사업을 해야 안정적인 것이다. 박 대표는 이같은 정서를 이해하지 않고는 러시아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올해 안에 우리나라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러시아 강좌를 열 생각이에요. 언어뿐만 아니라 러시아인의 삶과 문화, 마인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수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보고 듣고 겪었던 러시아의 모든 것을 쏟아내야죠. 우리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 그게 제 목표이자 미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