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결 불구 불법체류 확인되면 강제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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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인사노무 대법 판결 불구 불법체류 확인되면 강제출국 불법체류 외국인에게 노동3권 보장…권리 인정, 차별개선 계기

기사입력2015-09-04 00:00

박현진 객원 기자 (kpla123@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노무법인 ‘사람과 사람’ 박현진 대표노무사

대법원은 최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을 상대로 낸 ‘노동조합 설립신고서 반려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확정했다(2015. 6.25. 선고 2007두4995). 법률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이번 판결에 따라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도 노조 설립·가입 및 단체교섭·단체행동 등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른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서울행법 “노조법상 근로자 아니다” vs 서울고법 “노조법상 근로자”

서울·경기·인천지역 외국인근로자 91명은 2005년 5월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제출했다. 이에 서울노동청은 “조합원들의 취업자격을 확인해야 한다”며 이주노조에 대해 외국인등록번호나 여권번호가 포함된 조합원명부를 요구했다. 이주노조가 이에 응하지 않자 2005년 6월 서울노동청은 “노조 가입자격이 없는 불법체류 외국인을 주된 구성원으로 하고 있어 노조법상 노조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노조 설립신고 반려처분에 대해 이주노조는 2005년 6월 서울행정법원에 노조 설립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서울행정법원은 2006년 2월 “불법체류 외국인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이 엄격히 금지돼 있기 때문에 장차 적법한 근로관계가 계속될 것을 전제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및 지위향상을 도모할 법률상 지위에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서울노동청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인 2007년 2월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불법체류 외국인이라도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면서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이상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 “불법체류가 근로자성 인정에 장애가 되지 않아”

대법원 판결의 핵심 내용은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가 타인과 사용종속 관계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았다면 노조법상 근로자이고, 노조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한 외국인인지 여부나 불법체류(취업자격 유무)란 사실관계는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자료=비자트>

불법체류 외국인의 노조법상 근로자성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던 이 사건은 이주노조가 소송을 제기한지 10년, 2007년 대법원에 계류된 이후 8년을 넘긴 장기 미제사건이었다. 또 이 사건은 불법체류 외국인의 근로자성 여부를 둘러싼 노사간 대립, 근로자성을 인정할 경우 예상되는 사회·경제적 파장 등 심도깊은 심리가 요구되는 사건이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대법관 4인의 심리에 의한 통상 판결이 아닌 대법관 14명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 방식을 선택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핵심 내용은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가 타인과 사용종속 관계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았다면 노조법상 근로자이고, 노조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한 외국인인지 여부나 불법체류(취업자격 유무)란 사실관계는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론은 취업자격이 없는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인 경우에도 실질적으로 근로를 제공했다면 그에 따른 임금청구권 등 근로자로서의 신분에 따른 노동관계법상의 권리를 인정했던 종래 대법원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이 작업도중 부상을 당해 요양급여를 청구한 사건에서 당시 대법원은 “부상 당시 그 외국인은 사용종속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 온 자로서 근로기준법 소정의 근로자였다 할 것이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는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1995. 9.15, 대법 94누 12067).

노조법상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다(노조법 제2조 제1호). 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으며(노조법 제5조), 조합원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종 성별 연령 신체적 조건 고용형태 정당 또는 신분에 의하여 차별대우를 받지 아니한다(노조법 제9조).

근로자성 부정…1.강제퇴거 및 처벌 대상자 보호는 법리적 상호 모순

위와 같이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에게 노동관계법상의 근로자 지위를 부여했던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 있었다는 점△노조법상의 명문규정(제2조 제1호, 제5조, 제9조)을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에게 적용하지 아니할 하등의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이 사건의 결론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는 분석이 많다.(다만 이번 사건을 심리한 14명의 대법관 중에서 민일영 대법관은 이 사건의 결론과 달리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들에 대한 노동3권 보장을 선언함으로써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는 것과 함께 차별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한 판결이다.<자료=비자트>

그럼에도 소 제기 이후 10년 가까이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에게 노조법상의 근로자 신분을부여하는 데 발목을 잡았던 것은 출입국관리 관련 법령이었다. 출입국관리 관련 규정에 의하면, 외국인이 대한민국에서 취업하고자 할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취업자격)을 받아야 하고, 취업자격 없이 취업한 외국인은 강제퇴거 및 처벌의 대상이 된다.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첫 번째 논거는 강제퇴거 및 처벌의 대상이 되는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에게 노조법상 근로자 신분을 부여해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상호 모순된다는 것이다.

대법 ‘출입국법령과 노조법은 입법취지 달라 상호 모순되지 않아’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이번 대법원은 “출입국관리 법령에서 외국인고용 제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은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의 고용이라는 사실적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자 하는 것뿐이지, 나아가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이 사실상 제공한 근로에 따른 권리나 이미 형성된 근로관계에 있어서 근로자로서의 신분에 따른 노동관계법상의 제반권리 등의 법률효과까지 금지하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전제하고 “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한, 그러한 근로자가 외국인인지 여부나 취업자격의 유무에 따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출입국관리 관련 법령과 노조법은 입법목적이나 취지 그리고 의도하는 입법효과 등이 다르다는 점에서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근로자성 부정…2.노조법상 근로자 신분을 부여해도 보호실익 없어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두 번째 논거는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경우 보호실익과 관련된 것이다. 이 사건 2심(서울고등법원)과 이 사건 대법원의 결론에 반대 입장을 제출한 민일영 대법관의 주장이다.

민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은 애당초 정상적으로 취업하려는 근로자에 해당할 수 없고 이미 취업한 사람조차도 근로계약의 존속을 보장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 개념에 포함된다 하여 취업자격을 자동으로 취득하거나 그의 국내 체류가 합법화되는 것도 아니다”고 전제하고 “장차 근로관계가 성립 혹은 계속될 것을 전제로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이나 단체협약의 체결을 통하여 근로조건을 유지·개선하려 하는 것 자체가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민 대법관 주장에 따르면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에 대해 노조법상 근로자 신분을 부여하는 경우에도 그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이 밝혀지는 순간 출입국관리 관련 법령에 따라 강제출국 및 처벌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에게 공개적인 노조활동은 그 위험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민 대법관의 반대의견 논거 등에 대해 대법원은 판결문 이외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의 취업이나 고용을 제한하고 강제퇴거 등의 행정적 조치를 취하면서도, 노조활동을 포함한 근로자의 권리는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국제적 기준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인 문제제기에 대해 ‘국제적 기준’이란 답은 충분하지 못하다. 충분하지 못한 부분은 향후 입법 또는 법 집행 과정에서 이 사건 대법원 결론의 취지에 맞춰 보완해야 하는 과제가 던져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들에 대한 노동3권 보장을 선언함으로써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는 것과 함께 차별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한 판결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