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북적’ 청년몰…사람 뜸한 곳에 생기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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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소상공인 ‘북적북적’ 청년몰…사람 뜸한 곳에 생기돌다 동네 주민 “재밌는 공간 생겨 좋고” 기존 상인 “시끌벅적…예쁘다”

기사입력2016-07-12 14:1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대형마트는 편리하다. 주차장과 쇼핑시설이 깨끗하고 쾌적하다. 한 곳에서 필요한 물품을 모두 구매할 수 있고, 정해진 가격에 판매하기 때문에 물건값을 흥정할 필요도 없다.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SSM(기업형슈퍼마켓)이 골목 구석구석을 차지하면서 전통시장의 쇠락은 예견됐다. 시설은 노후하고 주차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구입하려면 쇼핑카트도 필요한데, 전통시장에서는 이 또한 이용이 불편하다. 일부 상인은 시설을 새롭게 단장하는데도 소극적이고,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왜 전통시장으로 가라고 하는가.

영프라쟈 메인골목. 젊은층 소비자가 많이 모이는 곳이다. ©중기이코노미

구로시장에 조성된 청년몰 ‘영프라쟈’ ©중기이코노미

소비자가 전통시장에 바라는 것은 특유의 활기와 사람냄새다. 시장은 한번 물건 사고 끝나는 일회성 공간이 아니다. 사람이 모이고 얘기를 나누고, 서로의 아픈 곳을 보듬어주는 공간이었다. 시장이 살아난다는 것은 그래서 지역공동체가 살아난다는 의미다. 나이 많은 시장이 청춘에 길을 묻는다. 유통시장의 급속한 변화속에 전통시장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청춘은 사람이 모이는 곳을 다시 함께 만들어 보자고 답하고 있다.

슬럼화된 시장 후미지역에 생기를 불어넣다

남구로역 앞에서 주택가 골목을 지나 올라가면 구로시장 간판이 보인다. 한산한 평일 오후 시장안도 고즈넉하다. 예전엔 순대국 골목이었지만 지금은 두세 상점만 남았다는 시장안 골목에선 낮부터 막걸리 한상이 차려졌다. 평소에도 가까운 사이인 듯 모여앉아 반주를 겸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전통시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는 ‘청년몰’을 찾아가기 위해 한켠에서 잡화를 판매하는 상인에게 길을 물었다. 말이 채 끝나기 전, 그 상인이 가리킨 곳에서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씽씽이’를 타고 한 처자가 나온다. 그곳에 ‘영프라쟈’가 있다.

구로시장 영프라쟈 안내도. 이제 사용하지 않는 가스배관을 활용해 만들었다. ©중기이코노미

구로시장 내 ‘영프라쟈’ 조성 전(위)과 조성 후(아래) 모습<사진=구로시장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단>

구로시장은 1960년대부터 호황을 누리던 재래시장이다. 인근 구로공단 근로자들이 주요 고객이었으며, 구로구의 재래시장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시장이었다. 이곳도 인근 지역 재정비와 대형마트들이 들어서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비단길이라 불렸던 골목이 있을 만큼 포목점포가 성황을 이뤘지만 하나 둘 떠났고,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시장골목은 슬럼화되면서 사람들은 이곳을 피해 지나다녔다. 이곳에 변화가 필요했다.

구로구청은 전통시장 활성화와 청년 일자리창출 대책을 구로시장 안에 함께 담았다. 구로구청 지역경제과 지수용 주무관은 “영프라쟈가 들어선 구역은 구로시장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으로 빈 점포들이 밀집해 있고, 낮에도 빛이 들지 않아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지 주무관은 “죽어있던 공간을 되살리는 것만으로도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며 “슬레이트 지붕을 철거하고 상하수도, 전기, 인터넷 등을 보수해 공간을 정비했다”고 중기이코노미에 설명했다.

“소통공간” “부담 적어”…청년들의 이유있는 시장창업

영프라쟈 내 의류수선점인 ‘패션연구원’에서 시장 상인들의 수다가 한창이다. ©중기이코노미

이렇게 정비한 영프라쟈에서는 39세 이하 청년상인들이 지난해 처음 상점 4곳의 문을 열었다. 현재까지 모두 12개 상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 3개 상점이 더 문을 열 예정이다. 영프라쟈에는 꽃초상화를 그려주는 이색 카페 ‘아트플랏츠’, 소규모 생산자들의 식재료 등을 판매하는 ‘쾌슈퍼’, 일러스트디자인 소품점인 ‘땅별상점’, 전국 전통시장의 명품 참기름을 파는 ‘청춘주유소’, 추억의 과자와 장난감을 판매하는 ‘추억점빵’, 오징어를 주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 ‘브라더오징어’, 마카롱·케이크 등을 파는 ‘삼봉-빠’ 등 발랄하고 이색적인 점포들이 알록달록 채워져 갔다.

친구와 함께 배낭여행으로 세계일주를 하며 각국 ‘슈퍼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인연이 ‘쾌슈퍼’ 창업으로 이어졌다는 변은지 대표는 “사랑방처럼 동네사정 다 알고 동네사람들의 소통공간이 되는 우리나라 특유의 슈퍼마켓 문화를 되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상인 어른들이 오가며 조언을 많이 해준다. ‘그리 장사해 언제 벌어 시집가겠냐’고 애정담긴 타박도 해주신다”며 동네 사랑방이 될 준비를 마친 분위기다.

외식업체에서 일하며 취미로 케이크와 쿠키를 만들었던 이선미씨는 “무엇보다 창업자금에 대한 부담이 적어 이곳에 ‘삼봉-빠’를 오픈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구로구청이 이곳에 입점한 청년상인에게 1~2년의 계약기간 내 임대료와 보증금 그리고 마케팅 비용 등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직은 초기라 매출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인근 젊은 부부나 친구·연인단위로 이곳을 많이 찾는다”며 “방문객들은 홍대나 인사동 등 멀리 가지 않아도 동네에 이런 재미있는 공간이 있어 좋아한다”고 했다.

이선미씨는 외식업체에서 일하며 취미로 케이크나 쿠키를 만들다 지난 4월 구로시장에 ‘삼봉-빠’를 오픈했다. ©중기이코노미

시장 상인들도 반기는 분위기다. 40년 넘게 구로시장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한 구로시장 상인회 이종운 회장은 “요즘 부쩍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처음엔 시끄럽고 정신없어 뭔가 싶었는데 음침했던 공간을 저렇게 예쁘게 꾸며놓으니 보기도 좋고 시장에 활력이 생겨 좋다”고 했다.

인근 속옷가게 상인은 “다 자식같은 아이들”이라며 “요즘 취직 못해 어렵다는데 서울시에서 잘하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 “여기 들어온 애들이 다 착해. 항상 웃는 낯이고 귀여워서 애들 때문에 요즘 웃는다”며 편하게 말하는 그의 표정이 여유롭다.

“청년몰, 기존 시장과 별개 아닌 시장의 일부분”

청년상인은 전통시장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들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중소기업청과 전국의 지자체가 앞 다퉈 청년몰 육성사업을 활발히 추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산적해있다. 기존상인들이 지원에서 소외돼 역차별을 받는다는 인식을 불식시켜야 한다. 임차료 등 지원기간이 끝난 후 청년상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생력도 길러야 한다. 또 애써 일군 시장에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이 번성해 거대자본이 들어오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대료를 안정시키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지역사회가 함께 풀어야 하는 숙제다.

‘구로시장 청년상인 창업지원 사업단’ 최현호 단장은 “영프라쟈는 구로시장과 별개의 공간이 아닌 구로시장의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년상인들은 구로시장 상인회 가입을 전제로 한다”며 “단지 나이가 조금 적을 뿐이지 구로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은 기존 상인들과 새로 들어온 청년상인들 공통의 목표”라는 것이다. 최 단장은 “영프라쟈 청년들이 가장 신경써야 할 것은 기존 상인들과의 스킨십”이라고 강조했다. 최 단장에 따르면 사업단은 영프라쟈 1기가 입점하기 1년 전부터 구로시장 상인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했다.

사업단은 자칫 역차별 문제로 갈등이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 상인들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청년몰이 구로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 매월 환경미화의 날을 마련해 시장주변 청소 등을 청년들이 맡아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 단장은 “함께해야하는 시장이기에 기존 상인들의 상권을 침해하는 것을 가장 조심한다. 점포 선정 때도 기존 상인들의 아이템과 겹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프라쟈는 지역사회에 구로시장을 알리고 내방객을 늘리기 위해 매월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벤트가 열리는 날이면 지역축제 날처럼 소란스럽다. 마임·마술공연, 인디밴드공연, 벼룩시장, 각종 체험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시장상인도 지역주민들도 모두 한데 어울리는 자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