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이사제 하면 “투명경영 vs 해외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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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근로자 이사제 하면 “투명경영 vs 해외도피” 법률 아닌 서울시 조례, 근로자 이사의 노조탈퇴, 수적 한계 등 쟁점

기사입력2016-07-14 14:00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공장 문 앞에까지 온 민주주의를 공장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 근로자 이사제다. 정치적 약자를 정치적 의사 결정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정치적 민주주의라면, 경제적 약자를 경제적 의사 결정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경제적 민주주의다”(전북대 이호근 교수)

“독일에서도 기업들이 무조건 근로자 이사제를 도입하고 있지 않다. 근로자 이사제 도입에 따른 운영비용 발생, 의사결정 지체, 외국기업 투자 기피 등의 문제로 독일기업이 페이퍼 컴퍼니 등을 통해 해외로 도피하는 사례가 있다”(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형준 실장)

공기업 개혁방안의 일환으로 서울시가 산하 15개기관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사상 초유의 실험, ‘근로자 이사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강병원 의원이 13일 공동으로 주최한 ‘근로자 이사제 도입 쟁점과 전망’ 국회토론회에서 전북대학교 이호근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서 근로자 이사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했다. 반면 기업의 불편, 산업경제에 미치는 파장 등을 이유로 근로자 이사제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형준 노동법제연구실장은 맞섰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강병원 의원이 13일 공동으로 주최한 ‘근로자 이사제 도입 쟁점과 전망’ 국회토론회 ©중기이코노미

사외이사제도는 최고경영자, 대주주와 관련 없는 사람을 이사회에 참여시킴으로써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됐다. 존재목적의 제1순위는 경영에 대한 감시와 견제다. 그런데 현실에서 사외이사의 위상은 최고경영자 또는 대주주의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는 것이 다수의 지적이다. 사외이사제도 그 자체의 개선방안이 필요한 이유이고, 그 대안으로 근로자 이사제가 부상했다.

◇법적 구속력 약한 근로자 이사제=서울시는 근로자 이사제를 조례형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법률규정이 아니어서 구속력이 떨어진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임기가 끝나면 무산될 것이란 발언도 나왔다.

전북대 이호근 교수는 “법률도 아닌 조례형식이 공공부문이 아닌 일반부문에까지 영향력을 미칠지는 의문이다. 조례안을 뛰어넘어 입법안까지 갈 수 있느냐가 쟁점”이라고 말했다.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 박태주 위원장 역시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근로자 이사제를 추진할 수 있지만, 뒷받침할 구체적 법안이 없다. 법적 뒷받침이 없이 지속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근로자 이사의 노조탈퇴 여부=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 따르면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해 행동하는 자’에 대해서는 노동조합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사회에 근로자가 노동조합 조합원 자격을 유지한 상태에서 ‘근로자 이사’로 참여하는 것은 법상 어렵다.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 박 위원장은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근로자 이사는 노동조합을 탈퇴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의 입장은 다르다. 한국노총 이정식 사무처장은 “근로자 이사가 이사회에 들어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기반이 필요하고, 노조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조직을 가지고 조직의 보호를 받아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민주노총 이창근 정책실장도 “노조탈퇴가 아닌 노조 조합원 자격 중지 등 다른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근로자 이사제를 도입하면, 경제적 약자를 의사 결정과정에 참여시키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독일기업 사례처럼 페이퍼 컴퍼니 등을 통해 해외로 도피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자료=비자트>

◇근로자 이사 1명이 할 수 있는 역할은=근로자 이사 1명의 이사회 참여로 경영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민주노총 이 정책실장은 “비상임 이사의 1/3이 아닌 전체 이사 정원의 1/3까지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구대 이승협 사회학과 교수도 “사외이사 제도가 실패한 것은 조직적 배경없이 개인이 참여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반면 근로자 이사 1명이 일당백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 박 위원장은 “근로자 이사는 직접적 이해관계자로 내부정보를 가지고 있어 노조와 협력한다면 기존 사외이사와는 분명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근로자 이사 수를 점진적으로 확대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한국노총 이 사무처장은 “지금은 근로자 이사제 도입 그 자체에 의미를 둘 필요가 있다. 도입 먼저 하고 향후 숫자를 늘려가는 방향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독일모델이 한국 기업구조에서 적합한가=고용노동부 김성호 노사협력정책과장은 “유럽의 근로자 이사제가 우리 입법체계 그리고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에서 효과적일 것이란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전북대 이호근 교수는 “독일은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의 이원적 구조다. 서울시의 경우 이원적 원칙(감독과 경영)이 일원적 구조(하나의 이사회)로 혼합돼 있다. 간단치 않은 문제”라고 전제하고 “오히려 그래서 근로자 이사의 권한과 역할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구대 이승협 교수도 “독일에서의 논란은 1/3이냐 1/2이냐 하는 숫자의 논란이지, 근로자 이사제 도입 자체에 대한 논란은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의 주장이 일치한 부분도 있었다. 근로자 이사제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근로자 이사제 도입을 위해 갈 길이 평탄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근로자 이사제 도입 찬성론자인 대구대 이 교수는 “서울시에서 근로자 이사제를 추진하고는 있지만, ‘왜 해야 하느냐’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며 서울시의 분발을 촉구했다. 반면 경총 이형준 노동법제연구실장은 “기업체계에 변화를 주는 제도인 만큼 좀 더 고민하고 검증된 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 서울시의 자제를 요구했다.